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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살리기 ‘명의’

기업 살리기 ‘명의’

▶1948년 生·대전고·연세대 수학과·삼성화재 상무·서울보증보험 사장·LG카드 사장(2004년 3월~)

서울보증보험에 이어 LG카드를 보란듯이 되살려낸 박해춘 사장. 그는 자신에게 운이 따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운도 실력이 있어야 잡는 것”이 아닐까.
비자인터내셔널은 금융회사들을 회원으로 한 협회 형태의 비영리법인이다. 박해춘(58) LG카드 사장은 지난 6월 한국인으로는 처음 비자인터내셔널 이사에 선임됐다. 비자인터내셔널 이사회는 전 세계 약 2만1,000개 회원사 CEO 가운데 22명만으로 구성된다. 박 사장은 “영어를 잘 못한다며 고사했지만, 비자인터내셔널 측에서 ‘막대한 부실을 단기간에 걷어내고 정상화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고 요청해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이사 선임은 그의 개인적인 영예이자 LG카드로서는 국제적인 위상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LG카드는 누구도 자신있게 희망을 걸지 못하던 위기의 금융회사였다.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떠올리던 박 사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채권단과 주주·고객들의 신뢰를 얻기까지 외로웠다”고 말했다. 2004년은 LG카드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한 해였다. 그 해 1월 6일 범금융회사 신년하례회가 열린 서울 명동 은행회관.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LG카드와 관련해 “눈 앞의 자기 몫에 집착하지 말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마련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서울보증보험 사장으로 하례회에 참석한 박 사장은 “누가 부총리고 누가 행장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고 그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그런 갈등이 빚어질 정도로 LG카드의 미래에 대해 다들 비관적이었다”며 “내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며칠 뒤 박 사장은 유지창 산업은행 총재에게서 LG카드 사장 자리를 제안받는다. 다른 채권 은행장들과 함께 여러 사람을 검토한 결과 박 사장이 LG카드를 회생시킬 적임자라는 것이었다. 파산상태였던 서울보증보험을 살려낸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해달라는 것이었다. 박 사장은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LG카드가 어렵겠다고 봤기 때문에 완강하게 버텼다”고 털어놓았다. 거듭 고사하던 박 사장은 이헌재 부총리의 설득에 결국 3월에 LG카드를 맡게 된다. LG카드는 직전 회계연도에 5조5,988억원의 손실을 입은 데다 연체율은 무려 33%에 이르렀다. 다른 카드회사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부담하면서도 채무 만기연장이 여의치 않았다. 가맹점 300만 개 중에 약 1만7,000곳이 떨어져 나갔다. ‘여기서 실패하면 서울보증보험을 회생시킨 지난 5년여간의 성과도 함께 무너진다.’ 박 사장은 이런 마음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서울보증보험 때보다 더 긴장하고 더 열심히 일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노심초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박 사장은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7시 출근’을 시행하기로 했다. 또 토요일 격주휴무를 반납하고 근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협조가 절실했다. 그는 취임 직후 노조 간부들을 만나 자신의 자리를 걸고 담판을 지었다. LG카드 황원섭 노조위원장은 “노조가 어려운 시기에 취임한 박 사장을 환영했고, 위기를 타개하려면 경영진과의 합심단결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다”고 들려줬다.
하루가 다르게 손실이 불어나고 있었다. 부실의 원인을 파악해 재빨리 처방을 내리고 적용해야 했다. 그는 “업무를 속전속결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보고받는 즉시 결정을 내렸다. 요즘도 그의 집무실 책상에는 결재 서류가 하나도 없다. 박 사장은 부실의 원인을 파악해 하나하나 메워나갔다. 부실을 막은 조치 중 하나가 실시간 현금융통 검색 시스템을 2004년 4월부터 본격 가동한 것이다. 속칭 ‘카드깡’이라고 불리는 현금융통은 대부분 부실로 연결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LG카드는 2004년에 3,012억원의 부실을 막았다. 2005년엔 1,775억원의 부실을 예방했다. LG카드는 박 사장 취임 6개월 만인 9월에 170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선순환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박 사장은 신용카드업을 두고 “덩어리돈을 싸게 빌려서 잘게 쪼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흑자전환 후 덩어리돈을 조달하는 비용이 줄어들었다. 리스크 관리에 공을 들이면서 연체율도 점점 떨어졌다. 2005년 들어서 매달 순이익 규모가 커졌고, 3월에는 1,200억원을 거뒀다. 그러자 LG카드를 보는 눈들이 달라졌다. 채권단은 이자를 깎아줬고, 다른 은행들도 서로 돈을 빌려주겠다며 나섰다. 부실을 걷어내는 데만 치중해서는 흑자전환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익을 키울 수는 없다는 게 박 사장의 판단이었다. LG카드는 동시에 더 편리한 서비스와 큰 부가가치를 제공하며 우량 고객을 늘려나가는 데도 힘썼다. 지난해 초 24일이었던 카드 발급기간을 점차 단축해 지난해 말 7일로 줄였다. 콜센터 서비스를 향상해 지난 8월 한국능률협회에서 카드회사 중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았다. 박 사장 취임 당시 1,320명이던 플래티늄카드 회원 수는 약 78만 명으로 불어났다. 공공카드란 새로운 시장도 개척했다. 지난해 2월 숙명여대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구비카드 발급 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제주시에 보조금집행 전용카드를 발급했고, 대한적십자사와도 제휴했다. 박 사장은 “LG카드가 공공카드 시장의 98%를 석권했다”고 밝혔다. ‘천만인의 카드’란 LG카드 광고 문구는 박 사장의 아이디어다. 박 사장은 “다른 회사는 회원 수가 감소하는데 우리만 늘어서 1,000만 명이 넘었다”며 “많이 쓰는 카드는 뭔가 좋은 점이 있다는 점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광고”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LG카드는 다른 업체들을 압도하는 실적을 과시했다. 2조7,297억원의 영업수익(매출)과 1조3,631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올해도 성적표가 좋다. 3분기까지 매출 2조447억원, 순이익은 9,492억원이었다. 자연히 ‘몸값’이 뛰었다. 2004년 말 1만5,850원이었던 주가가 지난해 말 5만500원으로, 지난 9월 말에는 6만200원으로 상승했다. 2004년 말 마이너스 5,697억원이었던 순자산가치는 지난해 말 1조8,000억원으로, 지난 9월 말에는 2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신한금융지주가 지난 8월 16일 LG카드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신한금융지주는 11월 초 실사를 마치고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과 최종 인수가격을 협상 중이다. 14개 채권 금융회사들이 출자전환한 금액은 약 4조원. 신한금융지주가 인수가로 제시한 주당 6만8,000원대를 기준으로 할 때 채권단은 주당 3만2,000원, 모두 3조2,000억원의 차익을 얻게 된다. 경영 정상화에 이은 뛰어난 실적의 요인으로 박 사장은 “정부의 위기 대응, 채권단의 출자전환, 한 덩어리가 된 CEO와 임직원의 노력”을 들었다. 유지창 은행연합회장은 “박 사장이 부도위기에 처한 금융회사의 ‘구원투수’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유 회장은 “박 사장에겐 강력한 추진력으로 조직을 분발하게 하면서 동시에 구성원들을 챙기는 리더십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박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을 지급했다. 돈을 빌려 매입한 우리사주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LG카드 직원의 98%가 손실을 입게 됐는데 이를 보전해준다는 취지였다. 채권단 대표인 산업은행이 반대했지만 그는 자신의 연봉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특별상여금 지급안을 관철했다. 박 사장은 한국개인신용(KCB) 출범을 또 하나의 보람으로 꼽았다. “신용카드 부실은 길거리 발급이라는 현상적인 원인 탓이 아니라 개인의 신용정보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 신용정보를 제공하는 크레딧 뷰로(CB)를 만들어야만 문제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는 취임한 지 한 달 뒤부터 CB 설립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금융계에서는 “당장 LG카드 손실을 막는 게 중요하지 무슨…”이라며 쑥덕거렸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LG카드 등 19개 금융회사와 한국기업평가가 출자해 지난해 2월에 설립한 KCB는 올해 2월부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LG카드가 신한은행에 인수된 뒤의 거취에 대해 그는 “요즘 마무리를 잘 짓기 위해 이전보다 더 긴장해서 일한다”며 “내 거취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되돌아보면 자신에게 “운이 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실 금융회사를 살린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구조조정과 위기대응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운도 실력이 있어야 잡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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