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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의 열연으로 빛나는 영화

허드슨의 열연으로 빛나는 영화

명곡의 정의를 내리자고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만 들어보면 된다. 1981년 브로드웨이의 전설이 된 곡이다. 마이클 베넷이 제작한 뮤지컬 ‘드림걸스(Dreamgirls)’에서 제니퍼 할러데이가 정열적으로 불렀었다. 이제 빌 콘던 감독이 그 뮤지컬을 멋진 영화로 만들었다. 문제의 노래는 제니퍼 허드슨이 불렀다. 그를 스타로 만드는 이 장면에서 관객의 살갗에는 소름이 돋는다. 저항과 고통의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그 아리아를 부르는 극중 가수는 에피(허드슨)다. 1960년대 초 뜨기 시작하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여성그룹 ‘드리메츠’(‘슈프림즈’라고 생각하면 된다)의 리드싱어인 에피는 덩치가 큰 데다 성격도 깐깐하고 매우 감정적이다. 드리메츠는 이제 막 밤무대에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는 마당이다. 그러려면 리드싱어를 에피 대신 디나(비욘세 놀스)로 바꿔야 한다. 가창력은 에피에 못 미치지만 날씬하며 피부도 덜 까맣고 성격도 온순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계산 빠르고 야심 만만한 매니저 커티스(제이미 폭스)는 잠자리 상대도 에피에서 디나로 바꾼다. ‘And I Am Telling You’는 그처럼 왕따당한 설움을 표현한 노래다. 허드슨은 우렁찬 성량으로 헨리 크리거와 톰 아이옌이 함께 만든 그 노래를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의 울부짖음으로 바꾼다.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시사회장의 한 관객은 그 장면에서 기립박수를 쳤다. 원래 영화를 볼 때는 그러지 않는 법이다. ‘드림걸스’는 이 노래 한 곡만 들어도 본전이 아깝지 않다. 다른 즐거움도 많다. 에디 머피가 불 같은 성격의 제임스 ‘벼락’ 얼리로 나온다. 거들먹거리는 제임스 브라운 같은 리듬앤블루스 계열의 스타로 대중시장을 생각해 “피부 미백을 하라”는 주문을 거절한다. 샤렌 데이비스의 의상도 볼거리다. 모타운의 반짝이 의상과 디스코 클럽의 요란한 의상을 보여준다. 토비아스 슐리슬러의 촬영도 뛰어나다. 디트로이트의 거친 분위기와 무대의 화려함을 잘 조화시켰다. 간혹 60년대와 70년대 리듬앤블루스·소울·팝의 뒤범벅인 영화음악은 언더독스라는 제작팀이 펑크적 요소를 강화해 새로운 맛을 살렸다. ‘드림걸스’는 그림으로 치면 큰 붓으로 대범하게 휙휙 그렸다. 흑인음악이 백인 전용의 팝 세계에 쳐들어와 혁명을 일으킨 분수령격의 시대를 살려보겠다는 야심이 웅대하다. 가수를 상품화하면서 개개인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도 세밀하게 묘사했다. 콘던은 영화화 과정에서 영상의 재구성을 뛰어나게 잘했다. 마치 줄거리 속의 줄거리처럼 노래 속에 몽타주들을 만들어냈다. 간혹 창의력의 발휘가 도를 넘을 땐 시각적 혼란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그러나 ‘드림걸스’의 재미는 콘던이 쇼의 억지스러운 면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보여준다는 데 있다. 비욘세는 야심을 숨기고 내숭 떠는 디나 역을 연기하느라 타고난 끼를 자제한다. 애니카 노니 로스는 셋째 드림걸 로렐로 나와 자기 몫 이상을 소화한다. 키스 로빈슨은 에피의 오빠인 송라이터로 나와 조용히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주인공은 단연코 자존심 세고 자멸적인 에피로 나온 허드슨이다. 그가 중앙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드림걸스’는 관객을 뮤지컬 영화의 천국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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