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일시적 증가 부작용이 두렵다
[양재찬의 프리즘] 일시적 증가 부작용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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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 저금통이 인기다. 600년 만에 온다는 황금돼지 해를 이용한 마케팅의 산물이다. 황금돼지 해에 태어난 아이는 재물 운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산부인과를 찾는 이가 많아졌다. 그동안 저출산으로 기를 못 펴던 유아용품 업계도 대박 꿈에 부풀어 있다. ‘키즈’가 올해 산업의 키워드라면서…. 체감 출산율은 지난해부터 높아졌다. 지난해 8월까지 신생아가 2005년보다 8000여 명 많았고, 5월에 나올 연간 통계로는 1만3000여 명 늘었으리란 예상이다. 이런 신생아 증가는 2003년 30만4932건으로 사상 최저였던 혼인 건수가 2004년, 2005년 2년 연속 6000여 건씩 늘어난 데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미룬 기혼여성의 출산이 이어져서다. 그 결과 2005년 1.08명으로 뚝 떨어졌던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여성이 낳는 자녀 수)도 1.13으로 반등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지난해 입춘이 두 차례 낀 쌍춘년에 결혼하면 길(吉)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결혼식이 줄을 이었다. 혼인 건수가 늘어난 데다 올해 태어나면 운이 좋다니 신생아는 더욱 늘어나 47만 명을 넘어서고 출산율도 1.15 수준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신생아가 늘고 출산율이 상승세로 반전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게 장기적 추세가 아닌 일시적 반등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문제다. 혼인과 출산은 사람이 하는 일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 건수가 단기적으로 급변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꾸준한 추세를 나타낸다. 무슨 일이 있어 갑자기 증가하면 곧 급격히 감소함으로써 상쇄되는 속성이 있다. 새로운 천년이 열린 2000년, 용의 해에 신생아가 갑자기 많이 태어났다. 이른바 ‘밀레니엄 베이비’(즈믄둥이)가 63만6780명으로 1999년보다 2만400여 명 많았다. 그러나 이듬해 신생아는 55만여 명으로 급감했고, 2002년부턴 4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2000년 1.47로 급반등했던 출산율도 2001년 1.30으로 급락한 데 이어 2002년부턴 1.1대로 낮아졌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올해야 신생아가 지난해보다 2만 명 정도 더 태어나겠지만 내년부턴 다시 줄어들 전망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11월 장래인구 추계에서 신생아가 2010년 43만4000명, 2020년 37만7000명, 2050년 22만6000명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기본적으로 가임여성 수가 계속 줄기 때문이다. 즈믄둥이들이 올해 초등학생이 되는데 서울 시내 유명 초등학교 경쟁률이 20대 1을 넘었다. 저출산의 여파로 취학 아동은 2002년부터 매해 2만∼3만 명씩 줄어왔는데 올해는 62만5000여 명으로 2만3000여 명 늘어난 탓이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높은 파도를 넘은 이들은 고교·대학입시는 물론 취업전선에 이르기까지 더욱 심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를 알아채린 즈믄둥이 부모 사이에선 ‘특별한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경쟁의 고통을 덜어주려 입학 시기를 1년 늦추는 현상을 빚고 있다. 용띠 즈믄둥이의 첫 시련은 속설에 약한 동양권,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모습이다. 쌍춘년 결혼특수로 웨딩·여행 업계, 가구회사가 재미를 봤다. 이번에는 산부인과와 유아용품 업계가 출산 특수를 기대한다. 침체된 내수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올해 태어날 ‘골든 피기’(Golden Piggy=황금 새끼돼지)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 근거 없는 속설에 끌려 특별한 아이낳기 행렬에 합류하다간 아이를 더 깊은 경쟁의 바다에 빠뜨릴 수도 있다. 정부로선 일시적 출산 증가에 만족해 정책 대응을 소홀히 했다간 내년부터 신생아가 급감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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