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친구들 뭉쳤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뭉쳤다
“저기, 소개가 덜 끝났는데요…. ” 행사 관계자가 무대에서 내려서려던 사회자를 조심스럽게 불러세웠다. “아참! 죄송합니다. 깜빡했네요. 여러분, 봉준호 감독입니다. ” 1000만 관객의 신화를 일군 ‘괴물’의 감독을 빼먹다니 영화제 사회자로 너무한다 싶었다. 그런데도 사회자는 귀빈 소개를 잊은 중대과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너스레까지 떤다. “솔직히, 가끔 좀 빼먹으면 어떻습니까?” 지난 1월 18일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2007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라는 상당히 긴 이름의 영화제가 시작됐다. 개막식에는 사회를 맡은 영화배우 권해효와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영화계의 유명인사들이 참가해 관객과 같이 객석의 한 켠을 채웠다. “이곳에 오면 유명감독이든 학생이든 회사원이든 모두 똑같은 영화 관객, 영화 팬일 뿐”이라고 김수정 서울아트시네마 사무국장은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덕분에 미처 보지 못한 옛 영화들을 실컷 본다”며 시네마테크 예찬론을 폈다. 영화교육은 무조건 열심히 많이 보기 말고는 방도가 없다고 했던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감독 중 한 명인 그에게 시네마테크는 평생학교인 셈이다. 흔히 시네마테크(Cinemath뢲ue)를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독립·실험영화 전용관과 혼용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시네마테크는 일종의 도서관이다. 옛 영화, 예술영화, 실험영화, 대중영화 등 모든 장르의 영화필름을 수집하고 보관하며 상영한다. 원래 시네마테크란 프랑스어로 필름 보관소를 뜻한다. 시네마테크 운동은 영화가 보존돼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세계 각지의 영화를 수집하고 보관하며 상영하는 기능을 고루 갖춰야 한다. 운영은 민간이 하더라도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도 민간이 운영하지만 예산의 90% 이상을 정부가 지원한다. 하지만 한국의 시네마테크는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 부산영화제의 성공 덕분에 부산시가 흔쾌히 지원에 나선 ‘시네마테크 부산’을 제외하면 서울의 시네마테크조차 전용관 하나 없다. 국고 지원을 받지만 임대료를 내고 나면 영화 한두 편 구비하기조차 힘들다. 대전, 대구 등지의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이 사재를 털어가며 손실을 메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노릇을 하지만 상영관만 있을 뿐 자료실을 갖추지 못해 절름발이 신세다. 더구나 2년마다 셋집을 전전해야 한다. 현재는 낙원상가 옥상 옛 허리우드극장 터에 자리 잡았지만 언제 내줘야할지 모른다. 2년 전 아트선재센터로부터 계약 갱신 거부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아트시네마 사무국은 여전히 마음을 졸인다. 그래서 감독, 배우, 평론가 등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로 나섰다. 모임의 대표를 맡은 박찬욱 감독과 김홍준, 홍상수, 김지운, 봉준호, 류승완·오승욱 감독, 영화평론가 김영진, 정성일, 배우 유지태와 엄지원 등이다. “여기가 아니면 시네필들이 갈 곳이 없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절박함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수익금은 전부 전용관 건립에 사용된다. 2월 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친구들’이 직접 추천한 10편과 함께 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절규’가 일본보다 먼저 개봉된다. ‘친구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은 만큼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관객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16세기 천재화가 카라바조의 삶을 그린 ‘카라바조’도 상영된다. 지난해 여름 ‘시네바캉스’ 영화제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빌리 와일더의 특별전도 준비된다. ‘7년 만의 외출’에서 나풀대는 메릴린 먼로의 치마를 대형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한국 영화감독의 우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기영 감독의 특별전도 열린다. 대표작 ‘하녀’ ‘육식동물’을 비롯, 새로이 복원돼 처음 소개되는 63년 작품 ‘고려장’도 상영된다. 김기영 하면 왠지 음산하고 기괴한 느낌이라 꺼려졌다면 이번 영화제에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개막식에서 ‘고려장’ 상영 내내 객석을 가득 메웠던 웃음의 비밀을 알게 된다. 블록버스터 영화나 멀티플렉스 문화에 물렸거나, 좀 더 색다른 영화에 목마른 관객에게는 시네마테크가 제격이다.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문화다양성이라면, 그 문화다양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시네마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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