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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몸짓에 세계가 반했네

그대 몸짓에 세계가 반했네

때로 내 이름보다 ‘누구 아들, 누구 동생’이 먹힐 때가 있다. 그 ‘누구’가 낯선 상대와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일단 연결 고리가 생기면 대화는 쉬워진다. 일본에서는 ‘배용준’이 먹힌다. 한류의 영향이다. 1년 전엔 뉴욕이 떠들썩했다. 가수 ‘비’의 공연 때문이다. 배용준과 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국의 문화사절단이 됐다. 최근 이민 1.5, 2세대들이 세계 대중문화·예술계에서 인정받으며 한국을 알리고 있다. 스타의 자리에 오른 뒤 한국인인 것이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2005년 미국배우조합상, 2006년 골든 글로브 TV시리즈 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산드라 오(오미주)’는 미국 ABC TV에서 방송된 인기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에서 ‘크리스티나 양’으로 나온다.
산드라 오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계 작가 ‘다이애나 손’과 연극 <스톱키스> <새틀라이츠> 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 <사이드 웨이> <프린세스 다이어리> 등에 출연했지만 국내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내뱉은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국내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난 한국 사람이야.” 한국계 배우들이 할리우드나 미국 방송가에서 활동하는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아들 ‘필립 안(안영식)’은 1935년 할리우드에 데뷔해 TV 시리즈 <쿵푸> 등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007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로저 무어’를 돕는 ‘힙 경사’를 연기한 배우는 한국인 ‘오순택’이다. 과거 이런 활동의 뒤편에는 한정된 배역에 대한 서러움이 있었다. 요즘 ‘김윤진’ ‘대니얼 대 킴’이 드라마 <로스트> 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현지 언론의 조명을 받는 일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김윤진과 대니얼 대 킴은 2006년 미국배우조합상 TV드라마 시리즈 부문에서 앙상블상을 받았다. 의 ‘조지 클루니’, <섹스 앤드 시티> 의 ‘세라 제시카 파커’가 받았던 상이다. 둘은 함께 미국 잡지 ‘TV 가이드’의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김윤진은 한국에서 <쉬리> 로 입지를 굳힌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연기를 공부한 덕에 영어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드라마에서 한국말로 연기했다. 대니얼 대 킴은 부산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갔다. <로스트> 에 출연하기 전 영화 <스파이더맨2> <헐크> <자칼> , 드라마 <24> 등에 출연했다. <스파이더맨2> 에서 옥토퍼스 박사의 조수로 나오는 동양인이 그다. 두 배우는 2006년 아시안 엑셀런스 어워즈에서 각각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이번 달 7일부터 미국에서 방영될 <로스트3> 가 기대된다. 이들 외에도 할리우드 곳곳에 한국계 배우들이 숨어 있다. 미국 월가에서 헤지펀드 트레이더를 하던 한 남자는 길에서 모델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베르사체, 폴로 등 유명 브랜드의 모델이 된다. 이 남자가 <007 어나더데이>에서 북한군 테러리스트로 출연해 ‘릭 윤(윤성식)’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일이다. 릭 윤은 ‘스콧 힉스’ 감독의 영화 <삼나무에 내리는 눈> 으로 친숙하다. 릭 윤과 <007 어나더데이>에 함께 출연한 ‘윌윤 리’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신비한 동양적 매력을 발산했다.‘제니퍼 가너’가 출연한 <엘렉트라> 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릭 윤의 친동생인 ‘칼 윤(윤성권)’은 얼마 전 한국 영화 <3인 3색 러브스토리>에서 ‘소유진’의 상대역을 맡아 국내에 얼굴을 알렸다. 미국에서는 <아나콘다2> 로 데뷔해 <게이샤의 추억> 에서 중국 배우 ‘궁리’와 호흡을 맞췄다.

▶(왼쪽부터)김용걸이 <해적> 에서 콘라드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할리우드에서도 맹활약 한국계 배우들의 섹시함도 할리우드의 관심 대상이다. 대니얼 대 킴은 2005년 피플지가 선정한 ‘살아있는 최고의 섹시남’에, 윌윤 리는 2002년 피플지의 ‘올해의 아름다운 50인’에 뽑혔고, 이민 2세 배우인 ‘존 조(조요한)’는 2006년, 역시 피플지가 선정한 ‘올해의 가장 섹시한 남성’에서 ‘브래드 피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국 영화 <왝 더 독> 으로 데뷔해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에서 이름을 알린 존 조는 코미디 영화 <헤럴드와 쿠마> 에서 ‘헤럴드’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존 조는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선보인 힐리오 폰 출시 기념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근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웨스트 32번가> 에서 정준호, 김윤진과 주연을 맡아 할리우드 역진출을 꾀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자체 제작한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현지 제작 영화를 알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정면으로 시장을 노리기보다 영화제에 먼저 출품해 대중들에게 알릴 계획”이라며 할리우드 진출 전략을 설명했다.

▶정명훈이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공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로 악역이나 무술인 등의 고정된 배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계 배우들이 요즘은 오히려 ‘아시아 효과’를 노린 섭외 1순위 대상이 됐다. <웨스트 32번가> 에 함께 출연하는 ‘그레이스 박(박지은)’은 모델 출신으로 미국 드라마 <베틀스타 갤럭티카> 와 영화 <로미오 머스트 다이> 에 출연해 섹시한 이미지를 뽐냈다. 남성 잡지 맥심이 선정한 ‘2006 핫 100’에 뽑히기도 한 그녀는 최근 유명 게임 회사인 EA의 게임 <커맨드 앤 컨커 3> 에 출연이 확정돼 카리스마 넘치는 SF 여전사로 인기를 지속할 계획이다. 지난 11일 한국을 방문한 ‘우르슐라 메이스’는 맥심 표지 모델과 쇼 프로그램 <딜 오어 노 딜> 의 MC로 활약 중이다. 앤절리나 졸리,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피플지의 가장 아름다운 100명에 뽑혔고 드라마 <하우스> 에 출연한 바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배우 ‘문 블러드 굿’은 ABC 방송 프라임 타임에 방송하는 <데이 브레이크> 에서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지난해 4월 국내에서도 개봉한 <에이트 빌로> 는 미국에서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 블러드 굿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아 호평을 받았고 국내 개봉 예정인 영화 <패스파인더> 에도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유럽 무대를 누비는 성악가 전승현.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토미 리 존스’가 출연한 재난 영화 <볼케이노> 를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여의사로 나오는 ‘재클린 킴’ 역시 한국계 배우로 <스타트렉 제너레이션> <브로크다운 팰리스> , 독립 영화 <샬럿테 섬타임스> 등에서 단역, 조연을 맡아 열연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배우뿐만이 아니다. 감독·작가·특수 분장사 등 할리우드의 제작 분야에서도 많은 한국인이 발판을 다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단역부터 시작해 성공한 혹은 성공을 눈앞에 둔 한국계 할리우드 스타들은 국내 활동에도 우호적이다. 이들이 할리우드에 한국 문화를 알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문화·예술인들의 활약은 대중문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연주 신동으로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첼리스트 장한나를 비롯해 ‘천상의 소리’라 불리는 조수미, 소프라노 홍혜경, 지휘자 정명훈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찬사를 받아왔다. 그 뒤를 잇는 연주가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유명 언론들은 “high-class” “테크닉 적으로 완벽한”등의 말로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를 표현한다. 줄리아드 음대 석사 과정에 비올리스트로 최초 입학했고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데뷔했다. 정경화, 에드가 마리어, 길 샤함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연주한 경험이 있는 그는 2006년 에버리 피셔상을 수상해 연주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세종 솔로이스츠, 뉴욕 링컨센터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 단원으로 활동 중이고 2007, 2008년 시즌 남부 캘리포니아의 체임버 그룹 카메라타 파시피카의 수석 비올리스트로 선정됐다.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신성호)’는 아기 때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계 음악가다. 클래식 기타 연주로 유럽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다. 여덟 살에 처음 기타를 잡은 그는 열네 살에 청소년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유럽 콘서트 홀 연맹이 수여하는 ‘라이징 스타’에 선발돼 뉴욕·빈·잘츠부르크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그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기타는 타국에서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였다”며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첼리스트 ‘다니엘 리(이상화)’는 여섯 살 때 첼로를 시작해 세계적 거장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발탁됐다. 런던 위그모드 홀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그는 세계적 음반사인 데카의 전속 연주자로서 1999년 첫 앨범을 냈다. 요요마, 기돈 크레이머, 장영주 등이 수상한 에버리 피셔상을 2001년에 받았다. 한국에서 공연도 여러 차례 가져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왼쪽부터) <엘렉트라> 에 출연한 윌윤 리. 플라시도 도밍고와 홍혜경. 2007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김윤진.



한국 정서 담긴 예술혼 발휘 성악가 ‘사무엘 윤(윤태현)’과 전승현은 독일에서 활동 중이다. 사무엘 윤은 1999년부터 쾰른오페라극장의 주역가수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다. 그는 1996년 제노바 알바네제 국제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적 성악가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30대의 성악가 전승현은 19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벨베데레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며 심사위원이었던 슈투트가르트 국립 오페라 극장장의 눈에 띄었다. 1998년부터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오페라극장 무대에 섰고 2004년에는 한국인 남자 성악가로는 최초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의 베이스 주역을 맡았다. 그 후 유럽에서 주목을 받으며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공연하고 있다. ‘제2의 정명훈’이라 불리는 지휘자 ‘구자범’도 예술계의 월드 스타다. 구자범은 2002년 독일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상임 지휘자를 맡게 됐다. 정명훈 이후 한국인으로는 처음 유럽의 주요 오페라 극장 상임 지휘자로 선임된 셈이다. 3년 후, 독일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의 수석 상임지휘자로 임명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왼쪽부터)2002 월드컵 조 추첨의 사회를 맡은 텔런트 최윤영과 릭 윤.

발레리나 강수진은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 입단해 현재 수석 무용수 자리에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우뚝 선 그녀를 잇는 후배들 중에서 특히 김용걸의 활동이 눈에 띈다. 2002년 동양인 발레리노로는 처음 파리 오페라발레단 솔리스트에 뽑혔고, 1997년 모스크바 국제 발레 콩쿠르 3위, 1998년 파리 국제 발레 콩쿠르 듀엣 부분 1위를 수상한 바 있다. 펜 하나로 세계를 감동시킨 한국인 예술가도 있다. 소설가 이창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했다. 1995년 『네이티브 스피커』로 등단해 반즈 앤드 노블스 신인작가상·헤밍웨이재단상·펜문학상·미국도서상을 받았다.

▶(왼쪽부터)독일에서 활동 중인 지휘자 구자범. 주빈 메타 지휘 아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 중인 장영주

2000년 뉴욕 타임스의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에 선정되면서 미국 문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세 번째 작품 『가족』은 한국어·영어·프랑스어·독일어·핀란드어·스웨덴어 등 세계적으로 번역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그는 현재 프린스턴대 문예창작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3세 때 뉴욕으로 건너간 ‘숙희 킴’은 『통역사』로 경계를 넘어선 펜 문학상, 구스타프 마이어스 우수도서상을 받았다. 미국의 대표적 서점인 반즈 앤드 노블스가 선정한 ‘올해 주목할 작가 10명’ 중 한 명으로 꼽힌 그녀는 미국 주요 도시에서 사인회와 낭송회를 갖곤 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린다 수 박’은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세계적 권위를 가진 문학상인 뉴베리상 아동문학 분야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1998년 LA 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 베스트 10’에 뽑힌 『외국인 학생』의 작가 ‘수전 최’는 한국인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상을 받았다. 그녀의 다른 소설 『미국 여자』는 ‘2004 올해의 주목할 만한 소설’에 뽑혔다.

▶린다 수 박의 <사금파리 한 조각> .

또 다른 한국계 작가 ‘노라 옥자 켈러’는 『종군위안부』를 발표해 1998년 아메리카 북어워드를 수상했다. 『종군위안부』는 미국 대학에서 교과서로 쓰이기도 했다. 일본과 유럽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필력은 멈추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작가 강은자는 프랑스어로 쓴 『그 스님의 여자』로 부르고뉴 신인 작가상을 받았다. 그녀는 프랑스 현지 언론으로부터 ‘동양의 진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재일동포 유미리는 1988년 희곡 『물 속의 친구에게』로 데뷔한 이후 희곡 『물고기 축제』로 최연소 기시다구니오 희곡상을 받았고, 1996년 소설집 『풀하우스』로 이즈미교카상, 노마분게 신인상을, 1997년 『가족 시네마』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1960년대 세계는 비틀스에 열광했고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9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문화는 국경을 초월해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문화외교는 우호적인 국가이미지를 창출하고 강한 외교력을 발현하는 초석이 된다. 2004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일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응답자가 78.9%를 차지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돈으로 따지면 엄청난 금액이다. 외교통상부 홍상우 서기관은 “이미 정명훈·조수미 같은 월드 스타들은 문화 홍보 외교 사절단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며 “분야에 상관없이 외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대외적인 문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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