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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한주의 시네 파일] 더워지는 지구 다가오는 공포

[곽한주의 시네 파일] 더워지는 지구 다가오는 공포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불편한 진실> 에서 지구 온난화의 공포를 경고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재미있을 수 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선사하는 <불편한 진실> 은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영화 한 편을 볼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잠깐 동안의 엔터테인먼트가 아닐까. 두 시간 동안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랑과 모험, 웃음과 눈물로 수놓아진 환상의 세계를 맛보는 것 말이다. 영화 중에는 이런 기대에 못 미쳐 본전 생각이 나게 하는 영화도 적지 않다. 반면 이런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뛰어넘는 영화도 있다. 예컨대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내지는 현실을 다시 보도록 하는 영화가 이에 속한다.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다. 미국에서 지난해 6월 처음 개봉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미국 선댄스 영화제와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에선 관객들의 자발적인 ‘함께 보기 운동’에 힘입어 2,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 흥행 실적으로 보면 세 번째를 차지한다. 올해 아카데미상 2개 부문(장편 다큐멘터리·주제가 부문) 후보로도 지명됐다. 국내에는 지난해 9월 개봉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잘 알려진 대로 <불편한 진실> 은 앨 고어(59) 전 미국 부통령의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에 관한 강연이 뼈대를 이룬다. 이 영화는 고어가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 대형 화면에 아폴로 우주선에서 촬영한 ‘떠오르는 지구’ 사진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사진은 대기와 바다, 대륙이 어우러져 파랗게 빛나는 지구가 절반쯤 모습을 드러낸 아름다운 광경을 담고 있다.
고어는 아름다운 지구가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의 과다배출로 맞게 될-아니 이미 맞고 있는-파국을 경고한다. 우리가 하루에 쏟아내는 이산화탄소는 7,000만t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이것은 대기에 축적돼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야 할 태양열의 발산을 막아 온실 효과를 빚어내고 대기와 해양, 그리고 대륙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이처럼 지구의 온난화는 빙하를 녹여 해수면을 높이고 기후 변화를 발생하게 한다. 나아가 생태계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이는 이 영화에서 새삼 이런 현상을 밝힌 것이 아니라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이 영화의 힘은 지구 온난화를 알기 쉽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는 데 있다. 각종 사진 자료·그래프·그래픽·만화 등을 이용해 지구의 온도가 점차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찍은 두 장의 사진도 연이어 제시된다. 하나는 1970년에 찍은 것으로 만년설로 뒤덮인 정상이고, 다른 사진은 2년 전 찍은 것으로 만년설이 녹아내려 여느 산봉우리와 다를 바 없다. 사진과 그래픽에선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북극 빙하와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는 남극과 히말라야의 현실을 보여준다. 기후 변화로 산호초가 사라지고, 거대한 해파리가 출몰하고, 북극곰은 빙하가 녹아버려 익사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재난을 그린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 <투모로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2004년)가 허구가 아님을 입증하듯, 시뮬레이션 그래픽은 북극과 그린랜드의 빙하가 현재 추세대로 녹을 경우 뉴욕 맨해튼 등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바닷물에 잠길 것이란 미래를 보여준다. 어느 과학자도 부정하지 않는 지구 온난화가 왜 ‘불편한 진실’에 머물고 있는가. <불편한 진실> 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인류의 문명과 자연의 충돌에서 나온 결과물인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워낙 거시적이고 점진적인 현상이어서 문제가 바로 터지지도 않고 해결할 수도 없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지구 온난화의 주요 당사자인 기업들의 반응 또한 부정적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제정한 ‘차량 연비개선 의무화법’이 좋은 예다. 이 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 미국 자동차산업이 중국의 자동차업계에 추월당할 것이란 우려 때문에 미국은 반대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직시할 것인가. 고어는 “이것이 이제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도덕의 문제, 양심의 문제가 됐다”고 강조한다. 영화가 딱딱한 강연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고어의 개인 이야기가 중간중간 슬쩍 끼어든다. 50년대 말 대학 시절 은사 로저 레벨 교수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감명 깊게 들었다는 얘기와 이후 정치인으로서 지구 온난화 관련 청문회를 주도하고 환경정책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던 사연들이 오버랩된다.
이 가운데에서 로널드 레이건·조시 W 부시 대통령 등 공화당 정치인들이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 온난화를 가설로 치부하며 정책적 대안 마련을 거부했던 일도 빼놓지 않는다. 하나뿐인 누나가 10대부터 담배를 피우다 결국 폐암으로 사망한 얘기는 점진적인 변화에 무감각한 우리를 일깨운다. 이런 부분을 정치인의 자가 발전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환경운동가로서 고어가 제기하는 문제가 워낙 중차대한 이슈인데다가 2000년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전 세계를 돌며 1,000회 이상 환경 강연을 해온 그의 열정이 일종의 감염효과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한물간 정치인인 고어가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것이 유명세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날 무렵 고어는 파국을 앞두고 있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실천 방안 중 하나가 <불편한 진실> 을 이웃에게 권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관련 자료를 싣고 있는 웹사이트(www.climate-crisis.net)를 방문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오를 때 성급하게 DVD 플레이어를 꺼선 안 된다. 제작진 이름과 함께 당신이 지구 온난화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하나씩 하나씩 자막으로 나온다. 영화 주제가 ‘난 깨어나야 해(I Need to Wake Up)’도 들을 수 있다. 멜리사 에서리지(Melisa Etheridge)의 허스키한 음성을 타고 흐르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왜 이 노래가 아카데미 주제가상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에 ‘네(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불편한 진실> 이 그런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지구 온난화가 불편한 진실이기는 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달린 절박한 진실임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과 젊은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로 영국에선 중등학교 환경교육 교재로 채택됐다. 데이비스 구겐하임 감독의 2006년 작품으로 환경운동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로리 데이비드(Laurie David)가 제작을 맡았다. 국내에는 3월에 DVD로 출시된다.
문화비평가 곽한주는 1957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MBC TV 프로듀서와 중앙일보 기자를 역임했으며, 최근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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