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사나이’ 미 공화당 구할까
‘운명의 사나이’ 미 공화당 구할까
루디 줄리아니가 연설을 시작한 지 6분이 지나서야 청중 누군가가 겨우 박수를 치려 했다. 줄리아니가 노렸던 바로 그대로였다. 전 뉴욕시장으로 2008년 미 공화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줄리아니는 지난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 스파르탄버그의 공화당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청중을 흥분시키기보다는 경고하려 들었다. 정치적 공약을 남발하기보다 미국이 직면한 위기를 더 설명하고 싶어했다. 미국의 투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그는 경고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의 의지를 시험한 테러리스트들은 여전히 미국의 정신을 파괴하려 음모를 꾸민다고 강조했다. 줄리아니는 앞으로 닥쳐올 공격을 이야기하며 “만일”이란 표현조차 쓰지 않았다. “공격을 당했을 ‘때’라고 표현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의 연설은 극적이었고, 적절했다. 줄리아니는 항상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극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1994년 그가 시장이 됐을 당시 뉴욕에서 중산층은 줄고 범죄는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2000년께 뉴욕시는 안전하고 활력이 가득한 도시로 변모하면서 미국 전역의 부러움을 샀다. 9·11 테러 당일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미국의 시장’은 섬뜩한 진실을 말하며 미국을 강하게 만들었다. “사상자 수는 우리 중 누구도 감내하지 못할 수준으로 늘어날 듯하다.” 아직도 이라크전이 오리무중이고, 알카에다가 건재한 상황에서 줄리아니는 공화당 예비선거 유권자들에게 자신이야말로 시련의 시기에 공화당과 미국을 꾸준히 지킬 후보임을 역설했다. 하지만 공화당원들은 설득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공화당은 기독교 보수파가 지배하지만 줄리아니는 사회적 문제에 온건한 입장이다. 그는 동성애자들의 권리와 총기 규제를 지지할 뿐 아니라 30여년 전 제럴드 포드 이래 낙태권을 지지하는 유일한 공화당 후보가 되기를 바란다. 그의 시장 재직은 1868년 이래 어느 뉴욕시장도 더 높은 공직에 진출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시장 재직 당시 줄리아니는 라디오시티 뮤직홀의 무용단 옆에서 그물 스타킹을 신고 춤췄고, 핑크색 레이스를 걸친 메릴린 먼로 차림으로 시청 출입기자단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2006년 중간선거 참패 이후 공화당이 위기에 처하자 일부 보수파는 줄리아니의 이런 돌출적 이력도 기꺼이 무시하겠다는 태세다. 선거전에 늦게 뛰어들었지만 줄리아니의 최근 몇 주간 지지도는 상승했다. 한때 선두주자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미군의 이라크 병력 증파를 강력히 지지한 데서 오는 반사이익도 작용했다. 또 줄리아니, 매케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선두권 후보 중 누구도 사회적 문제에서 진정으로 총대를 멜 사람은 없다는 유권자의 인식도 한몫했다. 등록된 공화당원과 공화당 쪽으로 기우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뉴스위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줄리아니는 매케인을 25%포인트 차(59대 34)로 앞섰으며 롬니는 두 사람에게 30%포인트 이상 뒤졌다. 줄리아니는 미국을 재앙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선거운동을 펴지만 과거 자신이 저지른 ‘재앙’도 해명해야 한다. 두 차례 이혼한 그는 두 번째 부인으로부터 불륜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복음파 유권자들보다는 뉴욕 타블로이드지의 편집자들이 더 좋아할 삶을 살았다. 이런 취약점을 의식한 듯 줄리아니 진영은 그의 언론 접촉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 기사를 위해서도 인터뷰나 사진 촬영을 거절했다. 줄리아니는 세계가 자신에게 위기를 안길 때는 선과 악을 가르는 올바른 판단력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지만 그런 일이 없을 때는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삶을 살았다. 줄리아니는 뉴욕 남부지청의 연소한 검사보로 마약 조직과 부패 경찰관들을 추적하며 명성을 쌓았다. 친구들은 그를 정의 구현 집념이 아주 강한 검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늘 희생이 뒤따랐다. 줄리아니가 재종(6촌) 여동생 레지나 페루지와 한 첫 번째 결혼은 같은 혈통이 결혼할 때 반드시 요구되는 주교의 특별허락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그 결혼을 무효화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유명인사가 되면서 그는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 서열 3위인 법무차관보에 임명됐다. 2년도 못 가 줄리아니는 레이건 행정부 관리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으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자리(뉴욕 남부지청장)를 얻었다. 장시간 일하면서 강도, 부패 공무원, 월스트리트 내부거래자 연루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다. 그 무렵 줄리아니는 한 영향력 있는 고문(顧問)에 의존하게 됐다. 바로 두 번째 부인이다. 1982년 마이애미 출장 길에 그는 도나 하노버라는 이름의 매력적인 현지 앵커우먼을 소개 받았다. 첫눈에 반한 그는 그녀에게 집요하게 접근해 6주도 안 돼 청혼했다. 하노버는 줄리아니가 뉴욕에서 타블로이드지의 가십거리가 안 되도록 도왔다. 1989년 줄리아니는 데이비드 딘킨스 당시 뉴욕시장에 맞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3%포인트 차로 패했다.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줄리아니는 살벌한 뉴욕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1993년 다시 딘킨스 시장에게 도전장을 던졌을 때엔 외부 전문가를 꾸준히 영입해 시정을 주제로 한 일련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나중 줄리아니 밑에서 뉴욕시 공원 책임자로 일한 헨리 스턴은 “그는 딘킨스가 시정을 자기보다 더 많이 아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세미나는 효과를 거뒀다. 1993년 줄리아니는 딘킨스를 2.9%포인트 차로 누르고 시장에 당선됐다. 줄리아니가 시장에 오를 당시 뉴욕은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 적자가 20억 달러에 이르는 뉴욕시는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힘들었다. 또 폭력 범죄로 도시의 많은 전문직들이 교외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줄리아니는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을 줄이고 거리를 순찰하도록 뉴욕 경찰에 명령했다. 공공시설 벽에 낙서하는 사람, 빈둥거리는 사람, 매춘 여성이 법의 손쉬운 표적이 됐다. 그 결과 임기 첫해가 끝나갈 무렵 뉴욕시에서 살인 사건이 18%나 줄었다. 그러나 줄리아니는 개인적인 위기에 휘말렸다. 90년대 말께 그는 두 번째 부인 하노버와 사실상 별거했다. 그리고 99년엔 뉴욕 이스트사이드에 사는 매력적인 이혼녀 주디 네이선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 2000년 봄 줄리아니가 전립선암 진단을 받으면서 힐러리 클린턴과 상원의원 선거전을 도중 하차하자 간호사 출신인 네이선이 줄리아니의 치료를 도왔다. 결국 2000년 5월 뉴욕 데일리 뉴스지가 두 사람의 모습이 실린 사진을 싣자 줄리아니는 네이선과 “매우 가까운 친구”임을 밝혔다. 그러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사진이 공개된 지 1주일 뒤 줄리아니는 일일 정례 언론 브리핑에서 하노버와 이혼 절차를 밟을 작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노버는 그날 나중에 긴급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남편의 발표는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줄리아니의 엉망진창 사생활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2001년 여름께 줄리아니의 영웅적 위상은 크게 실추됐다. 새 천년의 첫해 가을 뉴욕 시민들이 그의 후임자를 뽑을 준비를 할 무렵 그는 비단 인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대중의 관심에서도 사라졌다. 바로 그때 9·11의 냉혹한 공포가 닥쳤다. 그날 오전과 정오 무렵 줄리아니는 늘 자신이 그러리라고 믿어왔듯 ‘운명의 남성’으로 변했다. 미국인 대다수는 9·11 테러를 돌이킬 때면 예외없이 시커먼 건물 잔해 속을 헤치고 다니던 줄리아니의 모습을 생각하리라. 그는 정직했고, 비통했으며, 강했다. 그날 밤 혼자 잠자리에 들기 전 줄리아니는 1940년 윈스턴 처칠이 영국 하원에서 한 연설문을 읽었다. “저는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 9·11 사태를 계기로 줄리아니는 누구도 못 건드릴 정치인이 됐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그에게 명예 기사작위를 수여했고,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를 “바위처럼 견고한 루디”라고 불렀다. 2002년뿐 아니라 맨해튼에서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2004년 선거 때는 미 전역의 공화당 집회에서 고정 연설자가 됐다(2006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때 온건 노선으로 당의 미움을 사던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2008년 공화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 중 1위로 도약했다. 줄리아니는 상황이 호전됐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을 자초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가 신설된 국토안보부의 장관을 물색 중이던 2004년 줄리아니는 9·11 사태 당시 자기 밑에서 경찰국장으로 일한 버너드 케릭을 강력히 추천했다. 그러나 케릭의 지명은 부시가 그 사실을 발표한 순간부터 재앙이었다. 기자들은 그가 특혜를 받은 주식 거래, 경찰력의 부적절한 이용, 마피아와 연관된 건설 재벌과의 부적절한 관계 등 그의 전력이 의심된다며 백악관에 집요한 질문 공세를 폈다. 약 열흘 뒤 부시는 케릭 지명을 철회했고, 실패로 끝난 후보 천거는 줄리아니의 정치적 미래를 위태롭게 했다. 2006년 말께 줄리아니는 2008년 대선 출마를 앞두고 아직 제대로 된 정치팀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공화당 내에선 그가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추측도 많았다. 그러나 줄리아니는 또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지난달 CNN의 래리 킹쇼에 출연해 “나는 출마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공화당 후보의 한 측근은 “그의 상승세가 실감난다”고 말했다. “만일 선거 때까지 테러 공격이 한 차례 발생한다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 ” 사회적 보수파들은 그럴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다. 보수적 비영리 단체인 ‘미국의 가치’의 게리 바우어 대표는 “줄리아니가 미국인 다수의 높은 존경을 받는 이유는 9·11 이후 그가 보여준 지도력 때문”이라며 “사실 그 점만 제외하면 거의 내세울 게 없다”고 밝혔다. 줄리아니에게 최대의 적은 바로 자신일지 모른다. 위기 때 나타나는 그의 힘은 완고함으로 퇴색할지 모르고, 결의에 찬 그의 확신도 때론 거칠고 불손하거나, 세계를 오직 선과 악의 흑백 논리로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유권자들은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자신의 악덕을 상쇄할 만큼의 미덕을 지녔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분명 엄청난 미덕의 소유자며, 뉴욕의 혹독한 정치를 섭렵한 이력은 신속히 진행되는 지명전뿐 아니라 접전이 예상되는 대통령선거 준비에 좋은 훈련이다.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에게 거는 일반적 기대가 줄리아니에게도 적용될까. 아니면 아직도 9·11의 기억이 미국인 뇌리에 깊이 뿌리박혀 유권자가 후보의 기질적 문제는 눈감아 주는 대신 강력하고 유능한 후보를 선택할까(줄리아니 ‘대통령’이 부시처럼 엉성하게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줄리아니는 현재 유권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지 모른다. 그러나 해럴드 윌슨 전 영국 총리의 말대로 정치에선 한 주가 1년은커녕 영원과도 같은 기간이다. 지난달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행사에서 줄리아니는 대통령의 직무, 이민, 자유무역 등에 관한 질문을 받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도 그는 국가안보 말고 다른 주제로 연설하라면 불안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하루 하루가 9·11 같지는 않다는 점을 줄리아니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또 선거운동의 위기가 대수롭지 않은 듯해도 분명 영향을 받게 돼 있다. 앞으로 몇 달간 조그만 위기는 수없이 발생한다. 물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고, 또다시 ‘운명의 사나이’가 될지도 모른다. With SUSANNAH MEADOWS, MARK HOSENBALL, MICHAEL ISIKOFF, EVE CONANT, SARAH CHILDRESS, ANDREW ROMANO and JONATHAN MUMM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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