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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세금 폭탄은‘下手 정책’

과격한 세금 폭탄은‘下手 정책’

하늘에서 벼랑 끝까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자산 가격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요동쳤다. 주식시장은 82년 후반부터 상승 국면으로 바뀌면서 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큰 폭의 금융규제 완화와 기업 실적 호조로 가파른 상승을 계속했다. ‘블랙 먼데이’(87년 10월의 미국 주식 대폭락)의 여파도 잠시, 일본 주식시장은 재빨리 회복 국면으로 바뀌면서 89년 피크에 달했다. 그러나 90년 10월부터 주가가 49%나 떨어져 주식 버블이 무너진다. 나아가 92년 8월엔 ‘심리적 경계선’이라던 1만5000대로 곤두박질쳤고 2003년에는 8000대까지 폭락했다. 부동산 시장의 부침은 더 심각했다. 86~87년 사이 부동산 값은 상업지→주택지, 도쿄 도심→도쿄권→대도시권→지방의 순서로 급상승했다. 땅값 상승은 놀라웠다. 도쿄권 상업지의 경우 83년 1월부터 91년 1월까지 3.4배나 치솟았다. 그 후 부동산값은 주식이 폭락한 지 꼭 1년이 지난 91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85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부동산 붐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기 때문에 그 누구도 ‘폭락’을 예상하지 못했다. 89년 후반 일본 전체의 부동산값 합계는 2000조 엔까지 상승했기 때문에 90년 초반 도쿄시의 토지를 시가로 매각하면 500조 엔으로 평가되던 미국 땅 전체를 구입할 수 있다는 말도 나돌았을 정도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엑손빌딩을 6억1000만 달러에 사들인 미쓰이물산은 “기네스북에 최대 빌딩 거래라는 이름을 올리기 위해 2억6000만 달러를 더 지급했다”며 큰소리치기도 했다. 이런 부동산 신화가 채 몇 년도 안돼 급격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부동산값 왜 급격히 무너졌나 그렇다면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어떤 과정을 거쳐 사그라졌나. 그리고 어떤 부작용을 낳았나. 먼저 일본은행의 금융 긴축이었다. 일본 정부가 금융 긴축을 개시한 것은 89년 5월이다. 당시 일본은행은 사상 최저의 저금리였던 2.5%의 기준금리를 90년 8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6.0%까지 올렸다. 급격한 금융 긴축은 버블기에 거액을 차입한 기업과 가계에 엄청난 이자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80년대 시중은행의 대출 총액은 260조 엔이었다. 이 돈의 대부분은 부동산 회사 혹은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개인이나 법인에 대출됐다. 간접적인 융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대출액의 55%가 부동산 대출이었다. 금리 부담이 늘어나고 부동산값 폭락이 겹치면서 일본 경제는 더블 펀치를 맞으면서 그로기 상태에 빠져들었다. 또 한 가지는 강제로 시장을 휘어잡으려고 한 ‘과도한’ 부동산 거래 억제 정책이다. 일본에서 부동산 붐이 시작된 것은 85년께부터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에 나선 것은 87년께다. 정부 규제는 국토청 주도의 직접적인 토지거래 규제(토지거래 신고제도), 대장성 주도의 엄격한 대출 규제(대출총액 규제와 업종별 규제)와 토지세제(토지보유과세, 토지양도차익과세, 토지소득세) 그리고 건설성 주도의 토지 이용 규제였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격한 부동산 정책은 결과적으로 은행과 부동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버블 파탄과 장기 불황은 人災 세금 정책도 적절치 못했다. 버블 형성 초기 일본 정부는 ‘낮은 보유세와 상속세, 높은 거래세’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결과 부동산값 상승 때 보유 요인이 커졌고 공급은 억제됐다. 버블이 문제가 되자 양도차익의 60%까지 세금으로 징수했으나 매물 부족을 초래하고 말았다. 세금으로 부동산값을 잡겠다는 발상은 사후약방문 격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설비투자 감소로 개인 소비마저 침체됐다. 실제로 전후 일본 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업의 설비투자는 주요한 성장동력이었고, 가계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했다. 이런 성장동력의 불씨를 꺼버리는 정부의 규제 정책은 일본 경제를 빠르게 불황의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실제로 90년 이전 실질 경제성장률 4~5%를 유지했던 일본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90년대에 걸쳐 1.1%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것도 130조 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재정자금으로 겨우 유지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고용 불안은 더 심각했다. 평균 2.5%에 그치던 실업률은 2002년에는 5.4%에 이르게 된다. 종신고용제를 자랑하던 나라가 미국(5.8%·2002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실업률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일본 정부의 대책은 허점투성이였다. 잃어버린 10년이 ‘인재(人災)’였다는 것이다. 먼저 경기 대책의 실패다. 일본 정부가 부동산 거품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은 89년 4월이다. 불과 1년5개월 동안에 기준금리를 2.5%에서 6.0%로 2배 이상 인상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당시 경제의 버블화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했는가를 시사한다. 일본은행은 과거의 성공 신화에 사로잡혀 기준금리 인상만으로도 불황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낙관했다. 복합 불황을 종래의 경기순환형 불황으로 낙관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정책 개입 시기를 놓친 것이다. 92년 8월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경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정책 당국의 안이한 낙관론이 중병에 걸린 일본 경제를 1년 넘게 방치한 결과를 낳았다.

무엇을 반면교사로 삼을까 재정 정책에 의한 경기 부양책 역시 실패였다. 92년 일본 정부는 과거 공공사업을 통해 순환형 불황을 극복해 왔다는 경험에 기초해 10조7000억 엔에 달하는 종합경제대책을 내놓았다. 이후 2001년까지 무려 11차례에 걸쳐 135조 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재정자금을 경기 부양에 쏟아부었지만 그 대부분은 종래의 공공사업형 투자였다. 막대한 재정 투입에도 송두리째 빚만 쌓였다는데 경제 위기의 심각성이 있었다. 80년대 후반 일본 정부 관료 가운데 ‘이것은 버블이다’고 인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베테랑 경제 전문가들조차도 버블 붕괴 이후 15년에 걸쳐 일본 경제를 장기불황에 몰아넣을지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면 일본의 버블 경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무엇보다 버블의 형성과 붕괴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원론적 교훈’이다. 버블의 발생은 자산 배분을 왜곡시키고 소득 분배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결국 생산성 향상이야말로 소득수준 향상의 핵심이라는 경제 원칙을 재삼 확인시켜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풍요해지기 원한다. 버블기 대다수의 일본인도 주식 가격과 부동산값이 올라 자신이 풍요로워졌다고 착각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소득 수준이 증가하는 데는 생산성 향상과 교역 조건의 개선, 버블에 의한 자산 가격 상승이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성’과 ‘플러스 섬’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소득 수준의 향상은 역시 생산성 향상밖에 없다. 정부는 적극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자금이 생산부문으로 원활하게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기업의 생산성 향상 노력이 가시화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시켜야 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둘째, 일본의 버블 붕괴와 장기 불황은 정책의 실패였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80년대 후반 버블 팽창기에 금리 인상에 의해 경기 조절의 타이밍을 놓쳤다. 나아가 단기간에 걸친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경제주체의 경제적·심리적 기대를 위축시키고 말았다. 버블 팽창기에는 오히려 버블을 부정하는 시각이 강했고, 버블이 파열된 뒤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인정하는 우를 범했다. 셋째, ‘과격한 정책’이 버블을 붕괴시켰다는 사실이다. 최근 참여정부가 잇따라 발표하는 부동산 거래 신고제와 가중한 양도소득세 등 일련의 부동산 정책은 91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을 붕괴시키는 ‘극약 처방’과 닮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두 참담한 실패로 끝났던 빈 껍데기의 부동산 정책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크게 부풀어 오른 풍선과 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이야말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책의 미세 조정(fine tuning)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강도와 도입 시기 등을 탄력적으로 조정해야만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 하향 안정이 가능하다. 만약 정부가 단기간 내 경기 부양이나 과도한 규제에 의존할 경우, 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정책은 주택 공급의 확대와 함께 시장 심리의 회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정부는 과격한 대응은 자제하되 긴장감을 유지해서 정책 판단의 시차를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경우 그 충격의 정도와 흡수 능력이다. 일본은 장기간의 경기 침체에도 높은 저축률을 유지해 왔다. 바꿔 말해, 부동산보다 금융자산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90년대 일본의 가계 부문이 부동산 버블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가격 폭락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해줬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부동산 버블을 발생시키는 가계 부문의 자산 구성은 일본과는 정반대다. 극단적으로 표현해 부동산에 ‘올인’하는 자산 구성이다. 가계발(發)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다면 그 충격은 일파만파로 파급될 수 있다는 얘기다. 97년 경제위기 이래 막대한 공적자금과 뼈를 깎는 구조개혁을 통해 경영의 건전성을 회복한 은행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한 기업마저도 버블 붕괴의 후폭풍으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버블의 붕괴와 충격은 현재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과 경제 환경을 고려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보다 훨씬 깊고 장기화될 것이다.


미국서도 부동산發 위기 오나


서브프라임 부실이 경기 둔화 부를 수도
미국 역시 부동산 시장 경착륙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경제 이슈로 떠오른 것.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이 주택 시장의 불안을 부르고 주택 시장의 불안은 미국의 소비 지출을 둔화시켜 연쇄적으로 경기 둔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는 신용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는 경우를 말한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계속 금리를 올리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13.3%까지 오르면서 ‘부동산발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2위 업체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은 상장 폐지된 상태. 전체 모기지 시장 연체율 역시 4.95%로 2003년 2분기 이후 가장 높아졌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이미 한풀 꺾이고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신용등급이 좋지 않아 ‘부동산 잔치’의 막차를 탄 서민들이 그 손해를 떠안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서브프라임 부실이 주택시장 불안→소비 지출 위축→생산과 투자의 감소→경제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현재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경기 둔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위기론이 과장됐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전체 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대로 그리 높지 않고 적절히 관리된다면 민간 소비 지출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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