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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60일 여로-발틱해에서 갠지스강까지] 온 세상이 눈덮인 白夜의 나라

[임준수의 60일 여로-발틱해에서 갠지스강까지] 온 세상이 눈덮인 白夜의 나라

▶핀란드 로바니에미에 있는 산타마을.

크리스마스 때만 반짝 스타가 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연중 내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북극권에 자리 잡은 핀란드의 소도시 로바니에미라는 곳이다. 겨울에는 해 뜨는 시간이 불과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고장인데도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곳의 볼거리라고는 사실 산타클로스에 관련된 것이 전부인 셈인데 그 관광 수입은 2005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경우 360억원 규모였다. 헬싱키 관광을 한나절로 끝내고 서둘러 로바니에미행 야간열차를 탄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이곳에 있는 산타클로스 마을을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즉 산타클로스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한 것이었다. 12월 7일부터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엔 로바니에미행 열차나 항공기 타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유럽인들에게 인기다. 산타클로스가 핀란드 사람이고 그의 주소지가 로바니에미라는 것은 금시초문이나 그 내력을 알고 보니 매우 흥미롭다. 80여 년 전 핀란드의 한 라디오 아나운서가 어린이 방송시간에 우스개로 “산타 할아버지는 로바니에미에 사신다”고 말한 것이 단초가 됐다는 것. 그때부터 크리스마스가 되면 수많은 어린이가 이곳을 산타클로스의 주소로 적어 카드를 보내는 바람에 우편집배원들이 일일이 답장을 보내다 보니 전담 우체국이 생겼고, 그것이 오늘의 산타 마을로 발전하게 됐단다.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로 가는 길은 열차로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장 720km에 이른다. 플랫폼에 내리니 콧김이 얼어붙을 정도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 온다. 영하 20도쯤 될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눈에 덮여 있고 아침 8시인데도 사방이 컴컴하다. 거리엔 자동차만 다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아 마치 외계에 온 느낌이다. 가까스로 호텔을 찾아가니 그때야 사람 체취가 느껴졌다. 로비는 아침부터 부모를 따라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나서는 꼬마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먼저 찾은 곳은 산타 마을(www. santaclausvillage. info). 한 바퀴 돌아보니 애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돈을 벌려고 꽤 궁리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은 산타클로스 사무소(www. santaclauslive. com)인데, 예의 붉은 산타 옷을 입은 남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뭔가 열심히 읽고 있다. 전 세계에서 날아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는 중이란다. 가끔 집무실을 나와 각국 어린이와 대화하는 그는 8개국어를 한단다.

독일에선 산타클로스 추방 운동 산타 우체국은 주로 성인들이 찾는 곳이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보내는 것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 카드를 부쳐달라고 주문하는 어른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한쪽 코너엔 부모가 불러주는 말을 카드에 써 주는 대필 아르바이트가 성업 중이고…. 친구나 자신에게 카드를 부치는 젊은이도 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산타클로스 우체국의 소인이 찍히고 특별히 고안된 산타클로스 우표가 붙어 있는 카드를 받는 것이다. 이 우편물은 주문에 따라 곧장 발송되거나 그 해 크리스마스에 맞춰 배달된다. 산타클로스를 업은 상혼(商魂)은 산타 파크(www. santapark. com)에서 절정에 이른다. 화감암 암벽을 300m가량 뚫고 조성한 동굴 속의 테마공원엔 회전목마 등 각종 놀이시설이 어린이들을 유혹한다. 입구에서 입장료 20유로 (약 2만5000원)를 내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시설별로 또 이용료를 받고…. 이러니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산타클로스 추방운동을 벌인 이유를 알 만하다. 산타마을의 지나친 상업주의에 질려버린 나는 자동차를 빌려 라누아 야생 공원을 찾았지만 큰 감흥이 오지 않았다. 자동차 길의 주변 경관이 절경이나 길 눈이 어두운 데다 눈길이 신경 쓰여 유명한 래프랜드의 운치가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잿빛 하늘에 혹시 오로라가 나타나려나 기대했지만 그런 행운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오로라를 보려면 구름 한 점 없는 영하 25도 이하의 날씨여야 한다고 한다. 내가 정작 로바니에미에서 큰 위안을 얻은 곳은 산타마을이 아닌 자연사 박물관 아크티쿰(www. arktikum. fi)이었다. 사미족 등 북방민족의 생활상과 래프랜드의 생태계를 보여 주는 전시품들이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멀티비전으로 보여주는 ‘북극광 아래(Under the Northern Lights)’라는 다큐멘터리 영상과 그 배경음악이었다. 특히 그 음악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종영 후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스칸디나비아 4개국이 모두 조그만 나라지만 세계 정상급의 국민소득과 사회복지를 자랑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예술인에 대한 전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대도시의 조형물에 잘 나타난다.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기념물이나 베르그(노르웨이)에 있는 그리그의 생가와 무덤이 그런 것이다.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과 비켈란 조각공원은 두 예술가를 기념하기 위해 수도의 노른자위를 떼 준 것 같다. 핀란드의 산타마을을 떠나 케미를 거쳐 노르웨이로 들어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며 혹한과 싸우는 여정이 고달팠지만 위도가 낮아짐에 따라 기온이 풀리고, 웅대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물 ‘피오르’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전율 일으키는 피오르 장관 시간에 쫓기는 고달픈 여행은 가급적 피하려 했으나 그게 쉽지 않았다. 우선 북유럽의 높은 물가가 부담스러웠다. 교통비는 스칸레일 패스를 준비해 갔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었으나 숙박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열차나 배에서 잠을 자는 무박 여행. 일정표를 다시 짜서 이틀에 한 번꼴로 이를 시행해 봤더니 경제적인 도움은 별로 못됐다. 비싼 침대칸을 썼기 때문이다. 태초에 빙하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덮었다. 대지를 침식했던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녹은 자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곳곳에 거대한 협만(峽灣)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세계 7대 자연의 신비로 꼽히는 노르웨이의 피요르드(fjord)라는 것이다. 아무리 혹한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라 해도 이곳을 보지 않고는 북유럽을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때문인지 피오르의 관광 거점인 베르겐에 들어서니 북방에선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관광객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오슬로~베르겐 구간은 세계의 여행가들이 ‘환상의 열차 여로’로 꼽을 만큼 차창을 통해 보이는 경관이 빼어나다. 직행 열차를 이용하면 7~8시간 만에 목적지에 닿을 수 있지만 그렇게 빨리 가기를 원하는 여행자들은 드물다. 세계적인 관광명소 송네 피오르가 도중에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버스와 페리를 갈아타는 완행 코스를 택했다. 아침 8시11분 오슬로역에서 출발해 미르달까지 5시간 열차여행을 한 나는 철도-페리-버스-열차 순으로 다시 5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차창에 스쳐가는 삼나무와 자작나무 숲은 온통 눈으로 덮여 ‘하얀 숲’이란 어떤 것인가를 실감나게 한다. 눈 덮인 설산 사이로 꼬불꼬불 도는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피오르의 장관은 그렇지 않아도 추워서 덜덜 떠는 몸에 더욱 전율을 일으켰다. 베르겐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30분. 열 시간 넘게 강행군한 뒤였지만 낮에 본 송네 피오르의 장대한 경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 노르웨이 국민은 무슨 복이 많아 그렇게 아름다운 신의 선물을 받았단 말인가. 석유까지 펑펑 쏟아져 1인당 4만5000달러나 되는 세계 2위의 국민소득 혜택을 누리고…. 이튿날 나는 베르겐을 돌아보면서 그 복의 일부가 자연을 사랑하는 노르웨이 국민의 심성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솔베이지 송’으로 유명한 그리그의 숨결이 살아 있는 베르그는 도시 전체가 자연의 조화가 살아있는 거대한 청정 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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