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자기의 부활
‘코리아’ 자기의 부활
12세기 중국 송나라의 태평노인(太平老人)은 ‘수중금(袖中錦)’이란 책에서 고려청자를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고 평했다. 중국이 도자기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던 시절이니 상당히 의미 있는 평가였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윤용이 교수의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는 어느 일본인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이 고려 다완(茶碗, 차사발)은 우리 일본인들에게는 신앙 그 자체이며 마치 우리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했고, 한없이 기쁘게 했고… 우리에게는 보물 아닌 신과도 같은 그런 존재였다.” 조선조 초 일본은 도자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주로 대나무와 나무를 깎아 식기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일본이 한국의 도자기를 얼마나 탐냈을지 뻔했다.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으로부터 수많은 도공과 도자기를 약탈해 갔다.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도자기는 공을 세운 장수에게 상으로 하사될 만큼 귀중품 대접을 받았다. 이때 잡혀간 도공들은 일본 도자기 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일본은 그 기술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 세계적인 도자기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반면 한국의 도자기 산업은 임진왜란을 정점으로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는 36년간의 일제 식민지배, 서구문물의 갑작스러운 유입, 그리고 한국전쟁 등의 영향으로 전통 도자기의 맥은 거의 끊겨 버렸다. 1960년대부터 경기도 이천을 중심으로 도자기 공장들이 다시 생겨나기는 했지만 찬란했던 전통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당시 주요 소비계층인 일본인들의 취향을 따르기에 급급했을 뿐 전통 기술의 계승이나 창조적인 발전은 이루지 못했다. 지금은 일본과 서구 도자기 제품이 세계 시장을 지배한다. 특히 도자기 제조 역사가 300년에 불과한 일본의 전통 도자기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는다. 독일의 마이센, 로젠탈, 영국의 웨지우드,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등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생활 도자의 부가가치를 높여 세계적인 명품으로 손꼽힌다. “유럽은 도예에 현대적 디자인을 결합해 예술적인 생활도자를 산업화했다”고 천호선 세계도자비엔날레 총감독은 말했다. 한국의 전통 도자기는 여전히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1996년 10월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조선백자 철화용문 항아리가 841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64억원)에 낙찰돼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종전기록은 1994년 같은 경매에서 308만 달러(약 25억원)에 팔린 15세기 청화백자 보상화당 초문접시였다. 문제는 우리의 현대 산업도자가 외면당한다는 점이다. 세계도자기엑스포가 4월 17일 발표한 2006 도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자제품 무역수지는 2006년 약 712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해 전년 대비 25%나 수지가 악화됐다. 2006년 국내 시장의 외국산 도자기 증가율은 36%인 반면 국내산은 1%에 그쳤다. 한국공예산업연구소 최연수 소장은 “국내의 유명 백화점 명품 매장에는 로얄 코펜하겐, 웨지우드, 로열 돌튼 등의 유럽 제품들만 전시되고 국내 제품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저가품 시장에서는 중국 제품이 밀고 올라온다. 국산 도자기는 그야말로 갈 곳 없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도자산업의 미래는 없는가. 그런 고민 끝에 경기도는 1999년 여주·이천의 전통 도자기 문화를 계승해 한국의 도자기산업을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재단법인 세계도자기 엑스포(이사장 김문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올해 4회를 맞았고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이천·광주·여주 행사장에서 열린다. 특히 올해에는 지금까지의 단순 전시 위주에서 탈피, 한국 도자문화의 수준 향상과 아울러 수요 창출, 도자기 매출 증대 등 도자기산업 발전을 적극 도모하기로 했다. 전시회는 ‘아시아 도자예술 재발견 프로젝트’와 ‘세계·국내 우수작가 발굴 프로젝트’에 기초한 5개의 기획전이다. 아시아를 테마로 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전, 터키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대의 전통 도자 전시회, 세계 각국의 우수 작가들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공모전, 한국 전통 도자 공모전이 치러지고, 생활 속에서 도자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주는 세라믹 하우스 III 등도 있다. 교육체험 프로그램도 대폭 강화했다. 전문요원에게 전시 설명을 듣는 정규 전시투어와 상시대여 가능한 음성가이드 시스템 토키가 준비됐다. 전시회 참여 작가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표현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특히 이천에서 진행되는 키즈워크숍은 참가자의 눈높이에 맞는 주제를 선정한 뒤 직접 흙으로 작품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또 흙을 직접 만지며 감수성을 키우는 흙놀이공원(이천), 토야를 직접 만들어 가져가는 토야도예공방(여주), 도자기의 발생기원과 재료·종류 등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도자문화실(광주) 등이 있다. 세계도자비엔날레를 앞두고 문화평론가인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은 김문수 지사를 만나 “지금 우리가 만드는 전통도자기만 가지고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치약을 쥐어짠다고 무한정 나오지는 않는다. 전통도자는 그대로 잘 보존하면서 창의적이고 특색있는 현대 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기능 타일을 만들면 세라믹 엔진도 만든다. 현재 도자는 주방에서 우주선까지 두루 쓰인다.” 이미 산업의 각 분야에서 세라믹 소재는 널리 응용된다. 예컨대 볼펜의 볼 끝을 세라믹으로 만들어 잉크 찌꺼기를 없앤 세라믹 펜이 일본에서 개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상감 청자로 1㎜ 굵기의 잉크 홀더를 만든 청자명품 만년필이 최근 맘키드라는 회사에서 개발됐다. 개당 가격이 350만원으로 600억원 규모의 몽블랑 만년필 수입 대체 효과를 노린다고 한다. 그 밖에도 도벽(도자기 타일), 자석요 등 세라믹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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