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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하다 김칫국 마실 가능성

반짝하다 김칫국 마실 가능성

경기가 바닥을 쳤다? 기업에도 정부에도, 심지어 구멍가게 아저씨에게도 이보다 반가운 얘기는 없을 것이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기업은 투자를 본격화할 테고 구멍가게 아저씨는 2학기 자녀 등록금 걱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땅값을 잡으려는 정부는 ‘경기회복’을 명분으로 금리를 올리려 할지 모른다. 최근 몇몇 정부·민간연구소 보고서가 연속적으로 경기회복의 희망을 알려준다. 5월 9일 통계청은 지난 1분기 전국 가구의 월 평균 소득과 소비가 모두 늘었다고 발표했다. 월 평균 소득은 325만1000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6%, 월 평균 소비지출 규모는 297만원으로 4%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루 전인 8일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4.8%로 상향조정했다.

소비지표는 경기회복 암시 통계청 발표 1주일 전에는 재정경제부가 희망찬 보고서를 냈다. 그린북(최근 경제동향 보고서)을 통해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지표가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현 경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설비투자 증가에 대해 보고서가 ‘견실하다’는 표현을 썼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만큼 정부 시각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 전경련 역시 기대할 만한 지표 하나를 발표했다. 기업경기 실사지수(BSI) 역시 강력하게 경기회복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한 BSI 전망치는 110.9로 기업이 경기회복에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진다. BSI 전망치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경기 호전을 전망하는 기업이, 100을 밑돌면 경기를 비관하는 기업이 더 많음을 의미한다. 전경련은 몇 가지 배경을 제시했다. 소비심리가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과 그로 인해 내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으며, 수출과 설비투자가 증가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2월만 해도 100을 밑돌던 지수가 3~5월 연속 100을 넘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재경부와 전경련 발표는 지난 4월 발표된 또 다른 두 보고서의 경기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4월 22일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가 하나다. 연구원은 ‘경기 저점을 통과하고 있는 한국경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07년 1분기에 한국경제는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인다”며 “조심스럽지만 2007년도 성장률은 당초 전망보다 다소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간단히 말하면 2분기부터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며칠 뒤인 4월 26일 한국은행 역시 거의 동일한 내용을 내놓았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9%, 전년도 1분기 대비 4.0% 성장했다”며 “지난해 4분기와 올 1분기에 저점을 통과하며 2분기부터 경기회복이 가시화할 것”으로 본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1년간 진행돼 온 성장률 둔화추세가 올 1분기에 진정됐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최근 한 달 사이 나온 경기분석은 하나같이 ‘1분기 저점 통과’와 ‘2분기 회복 시작’을 제시한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보고서 작성 기관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정부와 중앙은행, 대기업 단체, 민간경제연구소 등 이해관계가 다른 기관의 보고서이기 때문에 그만큼 내용에도 신뢰가 간다. 당연히 근거가 있다. “국내 경기가 1분기에 저점을 통과했고 2분기부터 회복에 들어섰다”는 다양한 시그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기회복 자체가 큰 의미 없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현대경제연구의 근거다. 연구원이 중시하는 데이터는 산업생산증가율이다. “산업생산증가율은 경제성장률과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2007년 1분기 산업생산증가율은 3.6%로 지난번 경기순환기의 저점이었던 2005년 1분기의 3.5%와 큰 차이가 없다. 이번에도 과거처럼 산업생산증가율이 경제성장률과 동일하게 움직인다면 1분기가 저점이었을 가능성은 크다. 모든 보고서를 종합해 볼 때 “1분기에 바닥을 쳤다”는 근거는 상당한 실물지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민간소비지표가 좋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별 소비지출지표 외에도 지표는 확실히 긍정적이다. 다양한 소비회복세의 선행지표인 소비자판매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9.6%에서 올해 1~2월 중 17.0%로 크게 증가했고, 향후 소비의 증감을 예측하게 해주는 소비자기대지수도 지난해 12월 93.7을 저점으로 2월 98.1까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크게 늘었다는 것 역시 경기회복을 알리는 암시다. 설비투자증가율은 기계류 부문을 중심으로 2005년 하반기 이후 증가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특히 지난해 3분기 10%대 증가율을 보이다 4분기 4%대로 떨어져 경기회복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지난 1~2월 13.9%로 크게 높아짐으로써 기대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기대는 아직 이르다. 적잖은 전문가들이 ‘1분기 저점, 2분기 회복설’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경기회복설에 공개적인 반론을 펴지는 않지만 내심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내비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워낙 경기가 좋지 않아 희망을 갖자는 생각에 내놓고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라며 “여러 가지 점에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좋은 시그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한 시그널도 적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저점의 근거’로 봤던 산업생산증가율이 그 예다.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동안 제조업 경기가 0.8% 감소해 2003년 1분기 이후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원화절상과 고유가 등으로 교역조건이 악화함으로써 실질무역 손실액은 18조8000억원을 넘어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무엇보다 GDP성장률이 걱정된다. 지난해 1분기 이후 전분기 대비로 봤을 때 성장률은 0.8~1.2%로 제자리 걸음이다. 특히 이번 1분기 성장률이 0.9%로 지난 4분기 성장률과 동일하게 나타난 것은 성장이 거의 멈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을 만하다. 그래서 적잖은 전문가가 ‘L자형 성장’을 우려한다. 김윤기 KDI 주임연구원은 “생산은 증가세가 둔화되고 소비는 완만하게 개선되는 추세”라며 “저점은 지나봐야 아는 것이지만 저점 근처에 있지 않나 보인다”고 말한다. “내수가 뒷받침되면 하반기로 가면서 완만하게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수출은 여전히 좋지만 지난해만큼 성장을 드라이브할 정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회복의 폭과 속도에 관심이 가는데,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경제가 완만하게나마 회복추세로 간다는 것은 중요하지요. 하지만 2분기, 3분기가 연초와 비슷한 수준으로 갈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장(상무)도 “‘경기회복’이나 ‘경기저점’ 등에 큰 기대를 갖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갈수록 경기주기가 짧아졌고 고점과 저점의 폭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저점이 되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고점이 되기 때문에 호황을 누린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다. “1~2년에 몇 번씩 경기저점이나 고점 얘기가 나오니 큰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도 했다. “경기가 저점이냐 고점이냐는 시각 자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장기 트렌드지요. 전반적으로는 하강 트렌드인데 단기 순환 측면에서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트렌드는 잠재성장률의 변화로 얘기될 수 있을 텐데요, 아직 실질적인 검증이 되지 않아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당장 저점이 됐다 해서 큰 기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경기가 저점이라고 해서 회복의 기대를 크게 갖지 말자는 얘기다. 자칫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경기가 좋아져봐야 별로”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경기 저점’이나 ‘경기 회복’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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