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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격동기 일본 경제의 조타수

[Obituary] 격동기 일본 경제의 조타수

▶1993년 경주에서 열린 제25회 한일-일한 민간합동경제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히라이와 가이시(왼쪽) 일본 게이단렌 회장과 하구라 노부야 일한경제협회 회장.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과 도쿄전력 회장을 역임한 히라이와 가이시(平岩外四)가 5월 22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92세. 그는 일본 중부 아이치(愛知)현 출신으로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1939년 도쿄전력의 전신인 도쿄전등에 입사했다. 총무 분야에서 주로 근무한 뒤 1976년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제7대 게이단렌 회장을 맡으면서 일본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유명인사가 됐다. 게이단렌 회장 재임 시절은 한마디로 격변기였다. 무엇보다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 은행이 휘청거리는가 하면 대기업들의 부정과 스캔들이 꼬리를 물었다. 관료의 부정부패도 잇따랐다. 1993년 7월엔 자민당이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해 일당지배체제가 무너진다. 그 결과 호소카와 연립정권이 출범한다. 본격적인 혼란기에 접어들었다고나 할까, 시대가 바뀌었다고나 할까. 히라이와는 그런 격동기에 일본 재계의 조타수 역할을 맡았다. 젊은 나이도 아닌 76세에 게이단렌 회장이 된 그는 시대의 변화를 잘 파악해 일본 재계가 그 변화의 흐름을 타도록 이끌었다. 가장 큰 업적은 1993년 8월 자민당에 대한 게이단렌의 정치헌금 알선을 폐지한 것이다. 일본의 고질병으로 비판받던 정계·행정부·재계의 유착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였다. 자민당 중진들은 노발대발했고, 히라이와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철의 삼각지대’를 허물어뜨린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같은 결단은 그가 두터운 정계 인맥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게이단렌 회장을 맡기 전부터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는 속을 터놓고 지냈다고 한다. 일본 정계의 풍운아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와도 각별한 사이였다. 한때 오자와가 기우는 듯했을 때도 히라이와는 꾸준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히라이와를 총리관저로 불러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정치헌금 알선 중지에 버금가는 업적으로 꼽히는 것은 1993년 그가 주도해 작성한 ‘히라이와 리포트’다. 정부의 경제개혁연구회 의장으로서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의 미래상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규제 완화, 경쟁 촉진, 재정 개혁, 소비자 주권 존중 등이 골자였다. 요즘 일본이 주력하는 주요 경제정책의 골격은 대부분 이 리포트에 담겨 있다고 봐도 된다. 그가 게이단렌 회장 재임 기간에 가장 강조한 말은 ‘공생’이었다. 이 말은 다양한 방면으로 사용됐다.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기 이후 처음으로 외국과의 공생적 경제관계를 모색하자고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일 뿐 아니라 수출 일변도의 일본 기업엔 충격에 가까웠다. 또 기업과 사회, 일본과 아시아, 인류와 지구의 공생도 중시했다. 그의 주창으로 일본 재계는 기업윤리와 환경보호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히라이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개인적인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늘 평화공존을 강조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징집돼 뉴기니 전선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107명의 중대원 중 생존자는 그를 포함해 7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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