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거품 꺼지는 순간 한국도 위험
[양재찬의 프리즘] 거품 꺼지는 순간 한국도 위험
흑마(黑馬), 귀신주(鬼股), 사슴 시장(鹿市)…. 주식 투자 광풍이 부는 중국에서 신조어가 쏟아져 나온다. 흑마는 예상을 뛰어넘어 급등한 주식을, 귀신주는 리스크가 큰 주식을 말한다. 약세 시장을 ‘곰 시장(熊市)’, 강세 시장을 ‘소 시장(牛市)’이라고 하듯 초보자와 단타 투기꾼들이 몰려 등락이 심한 시장을 ‘사슴 시장(鹿市)’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30% 상승한 중국 증시는 올 들어서도 56%나 급등했다. 객장 전광판이 온통 붉은빛이다. 올 초 2680선이었던 상하이종합지수는 다섯 달 만에 4000을 넘어섰다. 과열이라고 진단한 중국 정부는 올해에만 금리를 두 차례 올리고 은행예금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다섯 번 인상하는 등 긴축정책을 펴왔다. 5월 18일에는 금리인상과 환율변동폭 확대란 칼을 동시에 빼들었다. 그럼에도 주가는 사흘 연속 올랐다. “난 이미 보았네. 5000선을! 우리 모두 환희의 노래를 부르세!” 중국 증권보 투자자 게시판에 오른 글의 한 대목이다. 중국 국가 ‘의용군 행진곡’을 개사한 ‘주식의 노래(股歌)’도 나돈다. 현재 중국의 주식투자 계좌수는 9744만 개. 올 들어서만 약 1000만 개가 만들어졌다. 하루평균 30만 명이 새로 계좌를 만들어 투자에 나선다. 이 같은 투자 광풍은 중국인들의 일상까지 바꿨다. 상하이에선 직장인은 물론 주부까지 앞다퉈 객장을 찾는 바람에 가정부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마치 경마장 같은 객장 분위기를 현지 언론들은 “개미들이 헤딩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다.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호황 이후 주식시장이 달아오르자 농부들이 경운기를 몰고 인근 도시 증권사 객장으로 향했다. 아이가 우는지도 모른 채 전광판만 쳐다보는 아줌마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코스피는 89년 4월 1일 1000을 돌파한 뒤 꺾이기 시작했다. 이를 정부가 그해 12·12 한은특융으로 발권력을 동원해 억지로 떠받쳤다. 이듬해 4조원대의 증시안정기금 조성, 10·10 깡통계좌 정리 등 정부 조치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떨어질 주가는 결국 떨어졌다. 92년 8월 10일 코스피는 507.88로 반토막났다. ‘묻지마 투자’는 결국 주식시장에 거품을 만들고, 그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막대한 경제·사회적 대가를 치른다. 99년 하반기 코스닥시장에 낀 정보기술(IT) 거품의 후유증도 컸다. 중국 대륙의 주식 광풍에 대해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부 전문가는 물론 중국 내부에서도 그렇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이 23일 중국 증시의 폭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원자바오 총리가 걱정한 대로 중국은 주식 내부거래를 막을 시스템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주식 내부거래자를 지칭하는 ‘노서창(老鼠倉·창고를 갉아먹는 쥐)’이란 말도 나돈다. 싫든 좋든 중국 증시는 우리 증시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주식시장이 문을 열 무렵 인터넷에는 중국 증시 소식이 실시간으로 뜬다. 어느새 뉴욕·도쿄 증시보다 상하이 증시 움직임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판이다.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역내외 펀드에 가입한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많고, 곧 중국 기업 주식이 한국 증시에서 거래된다. 지난해 말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을 신청한 화평방직이 6월 중 거래를 시작하고, 3노드(NOD)란 중국 음향기기 제조업체가 24일 코스닥시장 문을 두드렸다. 덩달아 한국 증시에도 꽃바람이 분다. 최근 상황을 ‘울산 앞바다에서 거북선(현대중공업이 대표 주자인 중국 관련주)을 타고 금강산(해발 1638m)에 올랐다’고 빗댄다. 장중이긴 해도 23일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 900조원을 돌파했다. 이를 달러화로 환산하면 약 9670억 달러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8880억 달러보다 많다. 시가총액 1000조원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기대와 국내 증시도 과열 국면이란 진단이 엇갈린다. 주식시장이 계속 하이킥일지, 헛발질에 미끄러질지 누구도 섣불리 장담하지 못한다. 중국에 부는 주식 광풍을 바라보며 지당하지만 투자는 역시 자기 판단과 책임 아래 하는 것이란 말을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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