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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금융사 VIP룸 24時] 와인파티에서 맞선 주선까지

[르포|금융사 VIP룸 24時] 와인파티에서 맞선 주선까지

▶ SC제일은행 역삼 PB센터.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시원스럽고 파스텔톤 인테리어로 아늑해 보이는 VIP라운지에서 고객이 상담을 받고 있다.

개인 현금자산을 10억원 이상 가진 한국 상류층을 위한 금융사 VIP룸, PB(Private Banking) 센터. 10평 남짓한 방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억 원의 돈이 움직인다. 이곳을 찾는 부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어디에 돈을 굴릴까. 3일간 삼성증권FN아너스 청담점, SC제일은행 역삼PB센터, 하나은행 을지로 골드클럽 등 세 곳을 현장 취재했다.(편집자)

맨 먼저 고객 맞는 증권사 VIP룸 시계가 정확히 9시를 가리키자 서울 여의도 객장엔 일제히 녹색과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사 VIP룸 중 가장 먼저 고객을 맞이하는 곳은 증권사. 이때부터 증권사 VIP룸엔 주식관련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삼성증권FN아너스 청담점 이승재 PB팀장은 수화기를 한 손으로 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종합주가지수가 1800을 넘어서면서 주식 매매가 대폭 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수익이 좋았던 조선 · 철강 업종을 팔아서 이익을 실현하려는 고객이 너무 많아요.” 이번엔 이 팀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고객님, 어제 말씀하신 것처럼 삼성중공업이 예상목표보다 두 배 이상 수익을 냈고 조정 움직임도 있습니다. 오늘 중에 팔아도 될 거 같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이 팀장은 미소를 지었다. “이 고객은 지금 5,000주를 전부 팔아달라고 합니다. 지난 3월 초 2만원대에 삼성중공업을 사들여서 100% 수익을 거뒀거든요.” 순식간에 30분이 흘렀다. 전화가 잠시 멈춘 사이 안내 데스크에서 고객이 VIP룸에서 기다린다는 연락이 왔다. 이 팀장은 고객관리 자료와 펀드 상품 소개서를 챙겨 갔다. 고급 양탄자가 깔려 있는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이었다. 방문을 열자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중앙에는 연둣빛이 도는 고급스러운 소파가 눈에 띄었다. 맞은편에는 60인치 벽걸이TV와 오디오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소파에는 세련된 중년 여성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골프 약속이 있는 듯 흰색 면바지에 하늘색 줄무늬의 골프복을 입고 있었다. 잔주름 없이 깨끗해 보이는 피부 때문인지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주식 비중을 줄이고 펀드 비중을 늘리고 싶은데 팀장님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제는 삼성전자나 현대차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없다는 게 고객의 생각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연초 이후 20% 이상 오르는 상황에서 유독 삼성전자와 현대차만 맥을 못 추고 주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상담은 15분 만에 끝났다. 향후 증시 상황을 봐가면서 5억원이 예치된 주식 계좌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는 골프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팀장은 “연초 이후 국내 주식이 급격히 오르면서 개미들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큰손들은 오히려 점차 주식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고 전한다. 증시가 급격히 오르는 만큼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자산 증식 못지않게 자산 유지도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증권가가 한바탕 고객으로 홍역을 치르고 난 뒤인 10시, 이제 은행 VIP룸이 기지개를 켠다. 하나은행 을지로 골드클럽을 찾은 첫 고객은 은퇴 후 성당 일을 돕고 있다는 박영만(55)씨. 그는 지난해 가입한 국내 적립식 펀드 해지를 원했다. 이유는 기대이상의 수익을 조기에 달성했기 때문이다. “펀드 가입 때 20% 수익만 올려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4월 무렵 조 센터장이 증시가 더 상승할 것 같다고 해서 두 달간 더 묻어 뒀죠. 벌써 50%나 수익을 냈으니 다른 상품으로 분산투자하는 게 옳다고 봐요.” 그는 그 자리에서 펀드 환매를 결정했다. 환매 금액은 모두 4억5,000만원. 우선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 금융상품에 넣어 뒀다가 다른 펀드에 분산투자하기로 했다.
세무사·부동산 전문가·재무 분석사 상주 딩동 딩동.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역삼동 SC제일은행 PB센터 초인종이 울렸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객이 벨을 누르는 소리다. 안내 데스크에서 신원을 확인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잠시 후 50대 초반의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약간 마른 체형이었지만 은은한 광택이 도는 은색 정장이 세련됐다. 서초동에서 10년째 개인 병원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는 윤 태경 센터장을 만나자마자 악수를 건네며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제 전화로 자양동에 갖고 있는 78평짜리 땅을 그냥 파는 것보다 건물을 지어서 파는 게 이익이라고 하셨죠. 그게 가능할까요. 10년이 지나도록 산다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러자 윤 센터장은 “땅의 효용가치를 높여서 팔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10쪽짜리 분석 자료를 꺼냈다. 결과적으로 노는 땅은 신축 건물을 지어서 팔면 3억원 이상의 차익을 낼 수 있다는 보고서다. “아시겠지만 나대지는 공시가격이 3억원이 넘으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나대지에 상가 등 신축 건물을 짓게 되면 사업용지로 전환돼 양도소득세를 줄일 수 있어요. 게다가 상가 등 수익성 부동산은 임대료 등 고정 수입이 나오기 때문에 노후 대비용으로 갖고 있어도 좋습니다.” 열심히 얘기를 듣던 고객이 시계로 고개를 돌리더니 윤 센터장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제가 다시 들어가야 하니까 간단하게 점심 먹으면서 얘기하죠.” 시계가 어느새 오후 3시를 가리켰다. 바깥은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날씨 탓일까. 하나은행 VIP룸에 갑자기 고객들이 발걸음이 뚝 끊겼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풍채 좋은 50대 남자가 들어선다. 고객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조 센터장이 한걸음에 달려나왔다. 그는 “3년 전 입금하신 정기예금 5억원이 만기가 돼 뵙자고 했다”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고객을 안내하면서 설명을 곁들였다. “워터 펀드나 인프라 펀드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새로 나온 펀드 상품 중에서 고객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설명을 해드릴까요.” 하지만 고객은 “됐다”며 딱 잘라말했다. 그는 만기 된 금액을 다시 정기예금으로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철저히 원금보장되는 상품에만 돈을 운용한다는 게 그만의 투자 철학인 것. 펀드도 리스크가 크다고 본다. 그는 11년째 오로지 정기예금과 채권에만 자금을 투자했다. 조 센터장이 요즘 근황을 묻다가 혹시 따님이 결혼하셨느냐고 묻자 고객이 낮게 한숨을 쉬며 입을 뗀다. “이 녀석이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또 공부하겠다고 유학을 간다고 하네요.” 조 센터장은 딸과 함께 다시 한 번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다른 고객의 자녀와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또 하나은행 골드클럽 고객 자녀 간 맞선 행사에 참여하셔도 좋고요. 하루만 시간 내셔도 좋은 인연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듣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고객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PB센터는 VIP 마케팅의 최전방 저녁 8시. 은행 문이 닫히고도 한참 지난 시간에 7명의 노신사가 SC제일은행 VIP룸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이 VIP 라운지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평소에 고객들이 기다리던 응접실은 근사한 와인바로 바뀌어 있었다. 홀 중앙에는 둥근 원목 테이블과 7개의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1865 · 몬테스 알파 등 미리 추천받은 와인 세 병과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치즈와 과일 등이 준비돼 있었다. 윤 지점장은 “고객을 위해 가끔 응접실을 저녁 모임 자리로 빌려 드리는 데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노신사들은 입고 왔던 재킷을 벗고 편안하게 앉아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이는 70대 초반으로 보였다. 대화 주제는 지난주에 다녀왔던 유럽 여행부터 유치원에 다닌다는 손자 자랑까지 다양했다. 30~40분이 지났을 때 근처에서 손님과 저녁 약속이 있었던 윤 센터장이 들어왔다. 노신사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오늘 윤 센터장 덕분에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윤 센터장도 그 자리에 동참하면서 와인 파티는 더욱 무르익어갔다. 그날 준비했던 와인 10병을 다 마신 시간은 저녁 10시30분. 고객 중 한 명이 윤 센터장에 다가가더니 웃으며 얘기를 꺼낸다. 그는 “그동안 친구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실제로 만나보니 마음에 든다”며 다음주 중에 상담하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금융사 VIP룸의 현황


호텔급 서비스로 ‘큰손’ 유치
금융사의 꽃인 프라이빗뱅킹(PB) 센터. 부자들의 자산을 관리, 상담해 주는 VIP룸이다. 지난해부터 금융사마다 경쟁적으로 PB센터를 짓고 고급 서비스로 큰손 유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하다. 국민은행은 하반기에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인 고객을 별도로 관리할 예정이다. 이 고객을 관리하는 프리미엄 PB센터 ‘HNWI(High Net-Worth Individual) 센터’ 두 곳을 설립한다. 이 센터에는 세무사, 부동산 전문가, 재무 분석사 등을 상주시켜 사업 승계나 상속, 자산 관리 등의 서비스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10억원 이상의 자산가를 위한 ‘웰스매니지먼트’(WM) 센터를 만들어 부장급 직원들이 자산관리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도 PB 고객을 세분화해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중소기업 CEO 고객을 위한 ‘신한PB 비즈 케어(Biz-Care) 서비스’를 선보였다. 여기에서는 기업 세무 플랜, 부동산 종합관리, 금융자산 관리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 또 하반기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자산 관리를 위한 특별 서비스인 ‘신한PB 스타 케어(Star-Care)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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