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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증권사 독점체제 깨진다

은행-증권사 독점체제 깨진다

금융감독 당국이 펀드 판매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나섰다. 펀드 판매비용과 채널을 대폭 개선해 은행과 증권사의 독점판매에 따른 고비용 구조, 불완전 판매 등 폐해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감독 당국의 수술이 어디까지 미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펀드 판매구조 개선 범위에 따라 시장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과 증권사 중심의 펀드 판매구조에 메스를 들이댄 것은 ‘독점판매에 따른 높은 판매비용’과 ‘불완전 판매에 따른 투자자 위험’ 때문이다. 저금리와 고령화로 펀드 투자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반면 이 같은 폐해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자 제도 개선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셈이다. 국내 펀드 판매비용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을 뿐만 아니라 불합리하게 책정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우선 국내 펀드 판매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서는 펀드 비용구조부터 파악해야 한다. 투자자가 펀드 가입 후 내는 비용은 크게 보수와 수수료로 나뉜다. ‘보수(fee)’는 운용사, 판매사, 수탁사 등에 내는 서비스 비용으로 펀드에서 매일 빠지며 환매 전까지 계속 내야 한다. ‘수수료(commission)’는 펀드 판매사에 상담 등의 대가로 한 번만 내는 일회성 비용이다. 납입할 때 먼저 떼면 ‘선취’, 투자 뒤 내면 ‘후취’ 수수료다. 판매사는 보수와 수수료 중 하나를 택하거나 두 가지를 혼용해 판매비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판매사는 보수를 선호한다. 판매사 입장에서는 일회성 수수료보다 펀드 환매 전까지 받을 수 있는 보수가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펀드를 운용하는 노력의 대가로 운용사에 돌아가는 운용보수보다 판매사에 주어지는 판매보수가 더 많다. 현행 판매보수제가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주식형 펀드의 평균 판매보수율은 1.37%로 운용보수율(평균 0.74%)보다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최근에는 보수율이 높은 주식형 펀드의 증가로 전체 판매보수율(주식형+채권형+혼합형+기타 펀드)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펀드 전체 판매보수율은 2004년 0.40%에서 2005년 0.52%, 2006년 0.58%로 늘었으며 올 들어 지난달 말 현재 0.63%를 기록했다. 우리와 달리 선진국에서는 펀드 판매보수가 없거나 관련 제도가 있어도 실제보수율은 국내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판매보수가 적용되는 펀드가 없으며, 미국도 1980년 도입한 판매보수제도가 투자자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상태다. 금융감독 당국은 지난 10일 ‘펀드 판매보수 및 수수료 합리화’를 골자로 한 ‘펀드 판매 선진화 방안’ 추진 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펀드 판매보수와 수수료는 판매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파장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감독당국은 펀드 판매보수와 수수료 체계를 분리,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간접투자자산운용법 시행령에 따르면 펀드 판매보수와 수수료는 모두 합쳐 5% 이하로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펀드 판매보수는 0.5% 이하로, 판매수수료는 5% 이하로 각각 구분해 받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단계적으로는 논란이 되고 있는 펀드 판매보수제를 선진국처럼 아예 폐지하는 것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추진 계획을 발표할 때는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시장의 충격을 감안해 판매보수제를 처음부터 폐지하지 않고 보수율을 0.5% 이하로 줄이면서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보수 한도 제한 등 판매비용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펀드 판매비용 체계가 바뀔 경우 판매사의 수익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7월 13일 현재 펀드 설정잔액은 260조원 정도. 펀드 전체 판매보수율이 0.63%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판매사들이 가져가는 수익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판매보수율이 0.5% 이하로 제한될 경우 판매사들의 수익은 최소 3000억원 이상 줄어들게 된다. 특히 보수율이 높은 주식형 펀드를 많이 판 국민은행, 신한은행, 미래에셋증권 등 판매사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은행, 증권사 등 판매사들은 감독당국의 ‘펀드 판매 선진화 방안’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판매사들은 판매보수를 줄이면 영업수지가 악화되는 것은 물론 무분별한 펀드 갈아타기 등 부작용만 커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D증권사 상품 담당자는 “판매보수가 높다고 하지만 실제 판매사 인건비 대비 보수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며 “더욱이 펀드 판매보수를 일회성 수수료로 대체하면 영업직원들은 수익 보충을 위해 투자자들의 펀드 갈아타기를 유도할 수밖에 없고 결국엔 투자자만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룡 운용사 탄생할 듯 감독당국은 펀드 판매보수 한도 제한과 함께 자산운용사의 펀드 판매 한도와 방법을 대폭 개선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 방안으로는 ‘자산운용사의 펀드 판매 한도 폐지와 지점 판매 허용’ 등이 거론되고 있다. 현행법상 자산운용사들은 본점에서만 펀드 판매가 가능한 상태며 이마저도 펀드 수탁액의 20% 내에서만 판매가 허용돼 있다. 이 밖에도 일정한 자격 요건을 취득한 사람(또는 법인)도 독립적으로 펀드를 판매할 수 있는 독립판매점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펀드 수탁액의 20%로 제한된 자산운용사의 직판(직접판매)을 폐지하고 지점에서도 판매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처럼 펀드 판매채널을 다변화할 경우 판매사 간 경쟁으로 펀드 비용 하락 등 투자자 혜택은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감독당국 고위 관계자도 “(자산운용사) 지점 펀드 판매는 시행령 개정사항이기 때문에 이해상충(자산운용사의 운용과 판매 조직 분리 등) 문제만 해결되면 쉽게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자산운용사의 지점 판매 허용’을 확인했다. 또 독립판매점 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는 “법 개정 사항이기 때문에 중장기 안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사의 지점 판매가 허용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판매사와 운용사 간 수직관계가 깨지는 것은 물론 자본력을 갖춘 자산운용사들이 은행, 증권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금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시장 확대를 노려온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는 전 세계에 자체 영업망을 구축하고 펀드 개발은 물론 마케팅 및 판매까지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운용사의 지점 판매가 가능해지면 은행, 증권사 등을 모회사로 둔 운용사보다 독립운용사 또는 외국계 운용사의 입지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특히 피델리티, JP모건 등 국내 자산운용 시장 확대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외국계 운용사들은 자체적인 영업망을 만들어 입지를 넓힐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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