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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성장의 족쇄

동남아 성장의 족쇄


지배계급에 유착된 정실 자본주의가 경제발전 걸림돌 경제 개혁과 기업의 경쟁력을 키운 한국과 더욱 격차 몇 년 전 운 좋게 현 세계은행 총재인 로버트 졸릭과 저녁식사를 했다. 대화는 졸릭이 훤히 잘 아는 동남아로 넘어갔다. 내가 동남아를 다룬 책을 쓰기로 계약한 직후였다. 동남아는1997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발달경제학자와 다국적기업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중국과 인도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나는 동남아의 앞날을 낙관했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동남아가 어떻게 족벌 자본주의를 말끔히 씻어내고 관권이 개입하지 않는 시장으로 전환해갈지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졸릭은 조용히 경청했다. 그러나 내가 말을 마치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 거요.” 3년간 조사해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동남아의 경제 구조는 지금이나 10년 전, 50년 전, 더 나아가 100년 전이나 똑같았다. 홍콩·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의 국내경제는 여전히 모두 폐쇄적이고 베일에 싸인 억만장자 일가가 좌우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부호 명단에 오른 사람은 크게 줄었다. 1996년에는 포브스 세계 갑부 명단에 오른 상위 20여 명의 억만장자 중 동남아인이 여덟 명이었지만 2006년에는 홍콩의 리카싱 한 명만 188억 달러의 순자산으로 24위에 올랐다. 하지만 몇몇 부호가 다른 지역의 기업가 부호들에게 밀려나긴 했어도 동남아는 여전히 가족기업들이 손쉽게 돈을 버는 불로소득 경제의 세계 중심지다. 이는 보통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동남아는 그런 재벌들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성공을 거뒀다. 지난 40년간 동남아의 국내총생산과 고용창출은 수출증대와 함께 동반 성장했다. 다국적기업이 직접 또는 소규모 현지 제조업체와의 계약 방식으로 그런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재벌들은 수출 산업과 그에 따른 국제 경쟁을 꺼렸다. 대신 항만 운영, 부동산, 통신, 도박 같은 현지 서비스 경제에서의 사업권·독점·카르텔을 통해 성장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동남아의 재벌들은 건재하다. 규제철폐 약속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리티지 재단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자유경제라고 칭찬받은(하지만 사실상의 기업연합이 항만·수퍼마켓·전기·시멘트까지 좌우한다) 홍콩조차 독점금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독점금지법은 선진국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제도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은 서비스 분야의 공동 자유시장을 창설하겠다고 줄기차게 강조해 왔지만 전혀 진전이 없다. ASEAN은 조무래기 기득권 세력들이 판치는 정글에서 집행수단이 없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유럽연합과 달리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의 자체 개발 능력을 갖춘 지역적 또는 세계적인 유명 기업도 없다. 국내 언론에서 귀족 대접을 받는 현지 재벌들만 있을 뿐 이들이 이끄는 사업체의 생산성은 대체로 동남아 제조업체와 글로벌 기업 전체에 모두 뒤떨어진다고 경제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렇지 않다면 홍콩 항만의 컨테이너 하역비가 독일의 2배가 넘겠는가. 동남아 주식시장이 현재 활황인데도 장기 신흥시장 자본 수익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한 데는 재벌들의 영향이 컸다. 이들은 기업 지배구조가 형편 없고 현지은행을 배후 조종해 싸고 쉽게 융자를 얻어낸다. 국제적인 투자자본이 본격적으로 동남아 증시에 유입된 1993년부터 2006년 말까지 태국과 필리핀에 배당금을 재투자했을 때 총 달러 수익은 사실상 마이너스였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증시 수익률은 런던 은행계좌에 돈을 묻어뒀을 때보다 낮았다. 싱가포르의 수익률은 런던이나 뉴욕 증시의 절반에도 못 미쳤으며 홍콩 증시만 실적이 비슷했다. 경제구조의 개혁 없이 장기 자본수익률이 호전되리라고 기대한다면 무모한 투자자다. 아시아의 노동계급과 중산계급에게 지난 10년은 주로 불균형이 확대되고 심화된 기간이었다. 양대 부자 도시국가 홍콩과 싱가포르는 오늘날 국제적인 지니 계수로 측정한 불균형이 아르헨티나 도시지역과 맞먹는다. 외환위기 후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에서 세계은행이 정한 빈곤선인 하루 2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생활하는 극빈층과 차상위계층의 비율은 중남미보다 높다. 이제 동남아의 배부른 정치·경제 지배계급이 나라를 중남미의 나락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보통사람들이 이루지 못할 꿈을 잡으려 발버둥칠 동안 그들은 계속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이런 현실의 한 가지 원인은 식민주의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재벌 체제 자체에 있다. 한 번도 공식적으로 식민 통치를 받은 적이 없는 태국에서는 16세기부터 왕들이 페르시아인과 중국인들을 고용해 무역을 독점하고 농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 자바의 귀족들이 중국인 기업가들과 독점 경영계약을 맺었다. 통상적으로 민족 간 분업이 이뤄졌다. 현지인들은 토착세력인 정적에 맞서, 그리고 훗날 서구 식민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기업가들이었다. 주로 중국 이민자인 외국인들은 경제적 기업가들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네덜란드인들은 이들 중국인 거래상에게 독점권, 그리고 소령(majoor) ·대위(kapitein)·중위(luitenant) 같은 군대식 계급을 줬다. 1898년까지 필리핀을 지배했던 스페인은 중국인 최고 거래상에게 ‘사업가 총독’이라는 이름을 줬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영국인과 현지 왕족이 시골 토착민에게는 농업을 계속하라고 장려하는 한편 중국인과 인도인 이민자들에게는 상업권, 채굴권을 비롯한 사업권을 판매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독립을 되찾으면서 동남아의 새 지도자들은 경제 지배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웠다. 태국의 군부 지도자들은 중국인이 경영하는 회사에 상당한 지분과 폭넓은 경영참여를 요구했다. 말레이시아의 집권세력은 중국인 사업가들에게 금전적으로 무엇을 기대하는지 분명하게 밝혔다. 현지에서는 이를 ‘협상’이라고 불렀다.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집권계급은 기존의 중국인 상인 일가와 손잡은 반면 전후 동남아의 양대 독재자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와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무명의 소규모 상인에 의존했다. 몇 년 만에 인도네시아 최대 재벌이 된 거래상 리엠 시에 리옹, 그리고 수위로 일하다가 억만장자가 된 루시오 탄 같은 사람들이었다. 국가에서 승인한 일종의 독점을 통해 부를 쌓지 않은 동남아 재벌은 오늘날까지 극히 드물다(예외라면 홍콩의 2진급 재벌인 소형 모터 제조사 존슨 일렉트릭의 패트릭 왕과 의류업체 에스프리의 마이클 잉이 있다. 이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본토에서 제조업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인도네시아의 리엠과 말레이시아의 로버트 콕은 설탕과 밀가루 같은 소비용품 원자재를 독점해 쉽게 떼돈을 벌었다. 마카오의 스탠리 호, 말레이시아의 림고통, 아난다 크리슈난, 빈센트 탄은 도박 사업권으로 부를 축적했고 인도네시아의 모하마드 (밥) 하산, 프라호고 판제스투, 에카 티집타 위드자야는 벌목권으로 거금을 모았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부동산이 사실상의 독과점 체제를 형성했다. 영국 식민정권이 토지시장 구조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대규모 부지의 ‘알짜배기 땅’ 매각에 소수의 큰손들 외에는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1990년대 홍콩의 종합 개발용지 가격이 10억 미국달러 선을 호가했다. 이 도시국가들은 금융시장 참여도 제한했다. 따라서 현지 은행들이 참여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의 가장 큰 몫은 지금은 HSBC로 알려진 기관에 돌아갔다. 동남아 재벌들에게 사업권 다음으로 필수적인 자원은 자본이었다. 동남아 다른 지역의 재벌들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국영은행에서 융자한도를 확보하거나 직접 금융기관을 세워 개인 금고로 활용했다. 필리핀은 100년 가까이 금융위기의 파도를 계속 맞았다. 국영은행 쪽에서 한번 위기가 발생하면 다음 번에는 재벌들이 세운 민간은행 쪽에서 터지는 식이었다. 필리핀은 마르코스의 망명을 초래한 1980년대 중반의 금융업 붕괴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1997년 금융위기의 충격파는 금융체제의 부패 정도에 따라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홍콩이 제각각 달랐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특히 심했다. 1997년 인도네시아의 재벌은 모두 금융기관을 소유했고 대다수 은행이 20%의 법적 한도를 무시한 채 대주주 일가가 운영하는 기업에 전체 융자의 절반 이상을 제공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규모였던 리엠의 뱅크 센트럴 아시아(BCA)는 전체 대출금의 60%를 리엠 소유의 다른 기업들에 내줬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은행합병이 일부 이뤄졌다. 1997년 240개였던 인도네시아 은행 수는 현재 130개로 줄었다. 많은 은행이 국영화됐다. 하지만 부패한 정부는 대출에 대한 관리 실태가 재벌 소유의 금융기관보다 더 나빴다. 포브스에 2006년 인도네시아의 최고 부호로 꼽힌 억만장자(목재와 부동산 재벌 수칸토 타노토로 재산이 28억 달러로 추산된다)가 같은 해 국영은행 만디리에서 선정한 ‘가장 돈 안 갚는 사람’ 6명 중에 올랐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민영화된 은행들은 다시 재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예컨대 리엠의 BCA는 이제 하르토노 담배 왕조 소유다. 동남아에는 소유권이 널리 분산된 은행이 거의 없다. 명백한 예외라면 HSBC다. 어떤 주주도 1%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회사 정관에 못 박았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유일한 금융기관(그리고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금융위기 이후 납세자들이 복구비용을 떠안고 재벌들이 피해를 복구하면서 한두 나라씩 정상을 회복했다. 지난 10년간 얻은 교훈이라면 동남아의 정치·경제 지배계급 간의 관계는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끈질기다는 사실이었다.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말레이시아는 자본통제를 실시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을 사태의 발단이라고 비난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처했다. 국가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주식을 인수해 할림 사드와 타주딘 람리의 기업들을 살려줬다. 두 사람은 대표적인 부미푼트라(토착) 재벌로 집권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과 가까웠다. 대형 프로젝트인 쿠알라룸푸르 시티센터와 트윈 타워 부동산 개발을 진행 중이던 아난다 크리슈난도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나스가 지분을 인수해 한숨을 돌렸다. 스리랑카 타밀족 출신의 억만장자이자 마하티르의 측근인 크리슈난은 통신과 방송을 포함하는 제국을 지휘했다. 금융위기 이후 UMNO가 기존 모델을 모방해 새로운 재벌들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말레이시아의 대처 방식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쌀과 소를 거래하던 상인 목타르 알 부크하리는 정부의 사업권과 정책금융을 통한 발전사업, 탄중 펠레파스 항만 운영, 채굴, 영농, 호텔업을 기반으로 몇 년 안 돼 대규모 재벌로 성장했다. 동남아 전반의 사업가들은 정치에 더욱 깊숙이 참여했고 태국의 탁신 친나왓이 그 추세의 당연한 목적지에 선착했다. 다른 핵심 재벌 일가의 후원을 받아(CP 그룹의 체아라바논트 일가와 방콕 은행을 소유한 소폰파니크 일가 등) 정당을 결성하고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에 올랐다. 오래전 필리핀에서 그랬듯이 사업가들이 정치 체제를 접수하면서 정치와 경제 지배계급 간의 전통적인 구분이 모호해졌다. 탁신의 모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방콕 중산층의 여론이 그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탁신은 체아라바논트 같은 재벌 일가의 대표를 내각에 중용했지만 다른 재벌들은 탁신 혼자 권력의 떡고물을 차지한다는 생각에 아연실색했다. 총리의 통신과 미디어 사업이 급성장했고(체아라바논트 그룹보다 빠르게) 2006년 가을 쿠데타로 탁신이 실각하자 다른 재벌들은 기뻐했다. 현재 탁신은 망명길에 올라 영국의 축구단을 인수하려는 중이며, 다시 군사정부가 집권하고 재벌들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 익숙한 정치적 흐름에 올라탔다. 말레이시아, 태국 또는 필리핀에서 금융위기로 망한 재벌은 거의 없었다. 수하르토가 실각한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수하르토의 최측근이자 골프 친구인 하산이 본보기로 유죄를 선고 받고 큼지막한 특수감방에서 2년 동안 복역했다. 인도네시아 은행구조조정청(IBRA)은 불법 대출한 재벌 은행들을 구제하려고 560억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줬지만 대다수 재벌은 보유자산을 거의 잃지 않았다. 자카르타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많은 유력인사가 싱가포르로 도피해 거기서 회사를 경영했다. IBRA에서 빌린 돈 중 약 10%만 갚은 스잠술 누르살림은 현재 싱가포르와 중국의 대형 성장사업에 주력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위드자야 일가의 이야기가 가장 극적이다. 그들 일가가 경영하는 아시아 펄프&페이퍼와 산하 자회사는 139억 달러의 누적채무에서 벗어났다. 위드자야 일가는 거의 모든 채권자에게 돈을 일부만 돌려받도록 강요하고 자신들이 발행한 채권을 헐값에 도로 사들였다. 고위 구미 정치인들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어도 견뎌냈으며 싱가포르와 미국 등 각국의 소송에도 굴하지 않았다. 이들 일가는 인도네시아에서 소송을 제기해 발행 채권의 일부는 현지에서는 불법이며 따라서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아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빚을 갚지 않은 위드자야 일가는 현재 아마 그 어느 때보다 큰 부자가 됐다. 그렇다면 이런 난맥상 속에서 동남아는 어떻게 됐을까. 근대적인 세계화 시대가 시작된 후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진성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뛰어오른 아시아 주요 국가는 아직도 일본이 유일무이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그것도 한 세기 전이었다. 우리는 생각만큼 성장의 교훈을 잘 배우지 못한다. 동남아가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규제 없는 공동시장의 부재 때문에 ASEAN의 현재 역내 교역규모는 전체의 20%다. 반면 유럽연합은 50% 이상이다. 높은 저축률 때문에 금융체제에 돈은 많이 쌓였지만 대출관행은 엉망이다. 국내 경제는 아직도 사업권 분배 중심이며 기업 지배구조는 개선할 점이 많다. 금융위기 후 동남아의 10년을 평가할 때 무엇보다 한국·대만과 크게 차이가 난다. 식민 시대 이후 어느 때보다 동남아와 이들 두 나라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동남아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 시대의 수동적인 경제체제에 머무른 반면 한국과 대만은 다른 진로를 택했다. 성공적으로 토지개혁을 단행해(지배계급이 토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계승한 필리핀과는 정반대) 밑으로부터 상향적인 경제성장 과정이 가능해졌다. 양국 정부는 사회적 평등의 실현을 모색했으며 이는 동남아 지역보다 훨씬 낮은 불평등 수준과 독립적인 노동조합의 존재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은 대표적인 가족 기업을 후원할 때(모든 개도국의 관행인 듯하다) 일류 무역업체보다는 현지 제조업체 위주로 했다. 무엇보다 이제 한국과 대만에서는 정치 체제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1997년 오랜 민주주의·인권 운동가인 김대중씨가 한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큰 위기를 맞은 국가 중 가장 효과적인 개혁이었다. 한국 증시의 공시와 준수 규정은 동남아보다 엄격하며 사법부는 위기를 초래한 사람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더 큰 독립성과 의지를 보여줬다. 한국의 재벌 일가들은 지금은 동남아의 재벌들보다 힘이 훨씬 약해졌다. 2차 대전 종식으로 식민 시대가 막을 내렸을 때 한국과 대만은 동남아의 신생 국가들만큼 굶주렸다. 실제로 한국은 필리핀보다 훨씬 더 가난했다. 오늘날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약 1만9000달러, 대만은 1만5000달러다. 말레이시아보다 3~4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보다는 10~12배 부자가 됐다. 한쪽은 자유로운 사회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 귀족정치를 고수한 정치적 선택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다. [필자는 ‘아시아의 대부들(Asian Godfathers: Money and Power in Hong Kong and South-East Asia)’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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