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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복권 공익 사업으로 할 것”

“로또복권 공익 사업으로 할 것”

▶ 1955년생, 74년 중동고 졸, 84년 연세대 중어중문과 졸, 85년 유진종합개발 대표, 97년 유진기업 대표·드림씨티방송 회장, 2004년 유진그룹 회장, 2005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종횡무진. 올 들어 유진그룹이 보여준 사업확장 행보에 이보다 더 잘 맞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서울증권과 로젠택배 인수로 금융과 물류사업에 신규 진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로또복권 사업까지 따냈다. 유진은 이런 광속 질주로 단박에 신흥 재벌로 부상할 태세다. 재계는 유진의 M&A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과연 유진의 ‘몸집 키우기’는 어디까지 계속될까. 그 전략은 무엇일까. 유경선 회장과의 단독인터뷰와 함께 유진의 오늘과 내일을 짚어봤다.


▶ 보험, 증권사 추가 인수할 것 ▶ 늘 인수금액 다 까먹는 최악 상황 가정 ▶ 대한통운 인수 가격 비싸 고민 중 ▶ 문어발 사업 확장 비판은 ‘모르는 소리’ ▶ 금융, 건설, 물류를 핵심으로 키울 것 크고 단단해 보이는 체격에 두툼한 손,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와 웃음. 노타이 차림에 앉자마자 “더우니 웃옷을 벗으시라”고 한다. 함께한 직원들과도 자유롭게 말한다. 최소한 격식을 따지는 기업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권위가 느껴지고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철인3종 경기’ 매니어다운 강인함도 엿보인다. 지난 7월 20일 청진동 사옥에서 만난 유경선(52) 유진그룹 회장의 첫 인상은 이랬다. 최근 기업 인수합병(M&A)에 로또복권 사업 진출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워낙 언론을 타지 않아 항간에는 ‘은둔의 경영자’니 ‘그림자 경영인’이니 하는 말까지 떠돈다. “요즘 인터뷰 요청이 많지 않으냐”고 묻자 “그렇다”고 하면서도 정작 인터뷰에 응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바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별로 내세울 게 없어서”라는 게 그의 짤막한 답변이다. “기자를 정식으로 만난 게 족히 1년은 된 것 같다”고 말문을 연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로또복권 사업으로 시작됐다. 지난 7월 13일 유진 중심의 컨소시엄은 제2기 로또복권 우선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선정을 축하드린다”는 말에 유 회장은 “앞으로 로또복권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며 복권사업과 관련된 계획을 내놓았다. “내년부터 로또는 ‘대박’이나 ‘인생역전’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겁니다. 철저하게 공익사업으로 운영할 계획이에요. 수수료율을 낮춰 수익금 자체도 적지만 그나마 상당액을 학술재단이나 사회복지, 환경보호에 쓸 생각입니다. 로또복권 구입자는 ‘대박을 바라는 사람’이 아닌 ‘사회에 기부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업계는 유진이 로또복권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 자체를 의외로 보는 분위기다. 지난해 매출액 2조4700억원에 수수료 수익이 777억원에 이르는 ‘대박 비즈니스’여서 쟁쟁한 대기업들이 적극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조차 아직은 ‘중견’에 불과한 유진이 힘에 부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유 회장의 얘기는 다르다. “자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보인 자신감의 배후에는 ‘복권사업의 공익화’란 계획이 있었다. “정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익사업을 강조하는 유 회장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복권사업에 뛰어든 게 아니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져보면 그런 계산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수료율. 복권위원회가 원했던 수수료율은 2.5% 전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 회장은 “복권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낮췄다”고 말했다. 경쟁자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유 회장은 “수수료율에서 점수를 많이 얻었다”고 설명했다.


유경선 회장의 M&A 철칙
유경선 회장은 증권가에서는 ‘승부사’로 알려져 있다. 비록 대우건설이나 극동건설 등 굵직굵직한 판에서는 고배를 마셨어도 서울증권과 로젠택배 인수에 로또사업까지 거머쥐어 승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수수료율을 낮춰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로또복권 사업을 따낸 것은 그의 승부사 기질을 잘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승부사 유 회장으로부터 M&A에서 성공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과 전략을 들었다.  

기본원칙


▶ 경제성을 따져라 가치보다 값이 싸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나 사업이라도 실제 가치보다 비싸면 절대 안 한다.

▶ 시너지 효과가 빨라야 기존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빨리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가능성이 낮아도 사지 않는다.

▶ 실패를 가정하라 인수 뒤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재무·인력 측면에서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실전전략
▶ 사전정보에 민감하라. M&A는 정보 싸움이다. ▶ 준비는 철저하게,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하라. ▶ 추진 팀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라. ▶ 추진 팀장을 인수 기업에 파견해 접점을 삼는다.
이 정도 수수료율로는 기업 입장에서는 계산이 잘 안 나온다. 연간 수수료 수익은 대략 500억~600억원 수준. 운영비를 빼고 나머지를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이 가져가는 방식이어서 유진이 가져가는 돈은 연간 30억~4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중 상당액을 공공재원으로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윤을 목숨처럼 여기는 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유 회장은 “그래도 얻는 게 많다”고 말한다. “일단 그룹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미지가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적자만 안 보면 됩니다. 게다가 향후 수익성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 복권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죠. 대부분 나라에서 정부는 복권의 사행성보다 공익성을 추구하려 합니다. 본격적인 공익성을 갖고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면 외국 정부도 큰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그래도 의문이 든다. 공공성을 위해 복권사업에 참여한다는 계획서를 정부가 곧이곧대로 믿어줬겠느냐는 것이다. 유 회장은 “그래서 이번 선정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매우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속성상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 아무래도 수익을 우선시하지 않겠느냐”며 “유진그룹의 모기업인 유진기업의 부채비율은 103%이며 서울증권은 부채가 아예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업자로 선정된 이유는 이 같은 탄탄한 재무구조가 한몫을 했다는 얘기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업자 선정 직후 계열사 주가가 폭등했다. 특히 또 다른 증권사에 보험사까지 인수한다는 설이 돌고 있는데다, 모기업이 복권사업자로 선정된 서울증권의 경우 대세 상승기에 맞춰 주가가 크게 올랐다. 유진이 복권사업자로 선정되기 직전까지 2000원대였던 주가는 열흘 사이 3400원을 넘기도 했다. 이 사이 수차례 상한가를 쳤다. 투자자들이야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일이다. 하지만 정작 최대주주인 유 회장은 적잖이 부담을 느낀다. “책임을 크게 느낍니다.‘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언제가 산 정상일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주가가 안정되면 좋겠습니다.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저희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회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인터뷰 1주일 뒤 있었던 주가 하락을 그는 다행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내친 김에 예민한 문제도 짚었다. “또 다른 증권사나 보험사 인수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유 회장은 “불가피한 일”이라며 또 다른 증권사나 보험사 인수 계획을 밝혔다. “곧 자본시장통합법이 발효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몇몇 금융사 인수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증권사나 보험사가 모두 포함되지요.” 증권가에서는 유진그룹이 대한통운도 인수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 얘기도 물었다. “물류도 더 키울 생각입니다. 대한통운은 확실히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값이 문제 아닐까요? 지금으로서는 인수가격이 너무 높을 것 같아 고민스럽습니다.” 유진그룹은 1969년 건빵회사로 출발했다. 1984년 레미콘 전문 유진기업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챙기기 시작한 유 회장은 유진기업을 레미콘 1위 업체로 키우고, 2004년에는 고려시멘트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M&A시장에 들어섰다.
유진이 주목을 끈 것은 지난해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하면서부터. 당시 종합건설업을 주창하며 인수에 나섰다가 결국 금호에 고배를 마시고 말았지만 유진의 대우건설 인수 참여는 또 하나의 ‘고래 먹는 새우’로 거론되면서 화제를 뿌렸다. 유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실패를 아직도 안타까워한다. “정말 아쉽습니다. 종합건설업의 꿈을 크게 꾸었는데요. 그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유 회장은 “이후 다른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종합건설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사업다각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건설과 금융, 물류를 아우르는 기업군으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자금은 충분했다.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잘나가던 케이블 방송 ‘드림씨티’ 등을 매각한 자금만 4000억원에 달했다. 유 회장은 준비된 ‘실탄’ 규모를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감을 드러냈다. “큰 덩치였던 대우건설 인수를 준비했기 때문에 자금에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산이 나온다. 대우건설 이후 지금까지 기업 인수에 들어간 자금은 로젠택배 300억원에 서울증권 1700억원으로 대략 2000억원 정도다. 대충 계산해도 아직 수천억원의 여유자금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전략이 오해와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유진그룹은 ‘먹성 좋은 기업’ ‘문어발식 확장’ 등의 얘기를 듣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유 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금융 진출은 모든 제조업의 꿈입니다. 이제 제조업만으로는 경쟁이 어렵습니다. 보다 선진화된 경영전략이 필요합니다. 금융은 그 핵심입니다. 서울증권 인수를 너무 원했고 이제 인수했으니 최강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금융산업 진출은 그렇다 쳐도 물류업 진출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유 회장은 유진이 물류산업에 진출하는 당위성과 경쟁력을 강조했다.
“일단 레미콘 전문기업 유진이 갖고 있는 트럭이 4000대입니다. 물류비가 연간 수천억원 들어가지요. 게다가 레미콘은 매우 예민한 제품입니다. 조금만 잘못되면 굳고 맙니다. 이 정도면 유진은 이미 규모나 능력 면에서 물류 전문업체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쟁력을 바탕으로 물류기업에서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는 유진의 물류기업 진출은 미래를 내다본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동아시아의 ‘모퉁이 땅’입니다. 모퉁이 땅은 장사도 잘되는 금싸라기입니다. 통일까지 내다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물류 중심지가 되지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물류산업에 진출한 것입니다.” 유 회장은 기업 인수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봤다. 금융이나 물류, 건설 쪽에서 몇몇 기업을 후보로 삼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이 1조2000억원 규모입니다. 2009년 매출 목표 5조원을 달성하려면 기업 인수가 꼭 필요합니다. 일단은 금융과 건설, 물류 쪽을 키울 생각이지만 꼭 거기에 한정시킬 생각은 아닙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우려한다. 갑자기 큰 기업이 갑자기 망가진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 회장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늘 ‘최악’을 가정한다고 말한다. “최악이란 인수에 들어간 돈을 다 까먹는 것”이라고 설명한 유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기업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서 유진의 M&A 행진이 어디까지 갈지 답을 낼 수 있다. ‘자금 여력이 없어질 때까지’다.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는 유 회장의 말에서도 답을 알 수 있다.


유경선 회장의 경영 철학


“스포츠와 경영은 같다”
“여기가 한계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지요. 한계를 탓하며 포기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좀 더 갈 수 있는데 말이지요.” 유경선 회장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경영 얘기인지 스포츠 얘기인지 헷갈린다. 확인을 위해 물어보면 늘 같은 답이 나온다. “둘 다 같다”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와 경영 모두 한계에 도전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M&A 시장의 강자’로 알려지기 전까지 유 회장은 ‘철인(鐵人)경영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50이 다 된 나이에도 철인 3종 경기로 불리는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해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기도 한 트라이애슬론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전형이다. 1.5km를 수영으로, 40km를 자전거로, 10km를 마라톤으로 달려야 한다. 유 회장이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것은 10년쯤 전이다. 97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단적인 스포츠를 찾게 된 것이다. 유 회장은 거의 매일 달리기와 수영으로 체력을 보강하면서 정식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최고 기록은 2005년 49세에 세운 2시간 58분. 2000년부터는 대한트라이애슬론협회를 맡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트라이애슬론 종목이 정식 채택된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만 따도 아파트를 주겠다”고 선언해 ‘역시 통 큰 철인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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