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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애니메이션 르네상스

중국의 애니메이션 르네상스


한때 저속하고 반체제적인 외래문화로 골치 아팠지만 수출 동력으로 다시 태어난다 몇 년 전 같으면 중국 당국이 기겁할 장면이었다. 동부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에서 두 남자가 일본 만화영화 캐릭터처럼 꾸미고 서있다. 그들은 하얀 머리를 삐죽삐죽 하게 세우고 검은 가죽 의상을 입은 채 노란 가발과 짧은 치마 차림의 새침한 젊은 여자를 두고 장검으로 싸우는 시늉을 했다. 역시 색색 가발을 쓰거나 머리에 동물 귀 모형을 부착한 10대 청소년들이 일본 록음악에 맞춰 그 대결에 환호를 보냈다.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처럼 차려입고 연기해 대중이나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는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라는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문화다. “잠시 동안 다른 누군가가 되어 자신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표현한다”고 기모노 차림의 항저우대 학생 페이페이(21)가 말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일본 스타일에 빠져 있다. 특히 일본식 펑크 패션이 인기다.” 이미 10년 전부터 중국의 많은 젊은이가 일본이나 한국의 만화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다. 정부 당국은 만화를 골치 아픈 반체제 문화로 여겨왔다. 지나치게 폭력적일뿐더러 긍정적인 메시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만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이번 코스프레 행사는 중국 국영언론의 예산 지원으로 첨단 시설의 새 국립전시센터에서 항저우시의 연례 국제만화애니메이션 축제의 일환으로 열렸다. 중국 지도층이 만화영화 산업을 적극 수용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의도다. 중국 정부는 기존의 만화 장르에서 나타났던 외국적인 느낌이나 (때때로) 허무주의적인 가치관을 배제하고 신세대에게 공산당 의식화 교육의 수단으로 만화를 이용하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다. 또 정부가 생각하는 ‘중국적인’ 가치를 홍보하는 방편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항저우 만화축제의 개막식에서 고위 관료들은 너도나도 만화영화가 ‘사회 발전’과 정신적 문명화에 기여한 공로를 칭송했다. 만화 속 동물 캐릭터 풍선 아래 자리한 그들은 커다란 게나 분홍색 가발과 가면을 쓰고 나비 차림을 한 여자들, 금색 갑옷에 은색 기관총을 든 파란 머리의 전사들 같은 만화 캐릭터 행렬이 시가지 퍼레이드에 나서자 공손하게 박수를 쳤다. 당국은 중국의 전통 설화에 기반한 만화나 세련되고 현대적인 만화 영상에 애국적인 주제를 담는 작품을 장려한다. 축제에서 선보인 영화 한편은 1930년대 공산당의 ‘대장정’(마오쩌둥의 홍군이 국민당의 추격을 피해 2만5000㎞를 행군한 일)을 다룬다. 같은 시기에 일본 침략자들에 맞섰던 중국인들의 저항운동을 다룬 작품들도 있다. 중국 당국은 이런 장려책을 통해 만화영화 팬들이 아직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일본 작품보다 중국 작품을 선호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좋은 작품을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중국의 권위 있는 방송TV영화관리총국(廣電總局)의 진더롱 부국장은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중국에 유익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급성장하는 만화영화 산업의 정치선전 기능 외에도 경제적 가치와 수출 잠재력에 주목한다. 1980년대 이래 대만과 홍콩 만화영화 제작사들은 값싸고 숙련된 만화 인력이 풍부한 중국을 제작 기지로 활용했다. 최근에는 할리우드까지 가세했다. 중국 정부는 이제 자체 제작물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에 도전장을 낼 태세다. 항저우를 포함한 여러 도시를 공식 ‘만화영화산업 기지’로 지정하고 세금우대 정책과 신생기업 기금 지원 정책을 실시한다. 총 예산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례로 장쑤(江蘇)성의 중소도시인 창저우(常州) 관료들은 온라인 게임에 초점을 맞춘 디지털 애니메이션 분야의 육성에 5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중국 대학의 애니메이션 학과는 지난 5년간 네 배로 증가해 400여 개가 넘는다. “애니메이션 산업을 중국 경제의 대들보로 만들 계획”이라고 항저우 축제 개막식 연설에서 진 부국장이 말했다. 중국은 이미 만화영화 시장에서 수익을 올린다. “수익 다원화 전략에 주력했다”고 그레이트드림스카툰그룹의 허밍판이 말했다. 이 회사가 발표한 만화영화 시리즈 ‘빨간 고양이, 파란 토끼’는 관련 서적 판매만으로 약 1억8000만 위안(2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만화영화 산업은 20억 달러 규모를 웃돌았다. “외주 제작 분야에서는 이미 입지를 굳혔다”고 베이징영화아카데미에서 강의하는 데이비드 얼리크 미 다트머스대 교수가 말했다. “문제는 자체 제작 기량이 있는지 여부다. 난 가능하다고 본다.” 또 정부가 목표로 삼은 선전 활동이 사업성을 저해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국가 차원에서 애국심을 조장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중국 정부의 만화영화 포용책은 아직까지 고압적인 태도를 벗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TV 황금 시간대에 외국 만화 방영을 금지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5~10년간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만 미국이나 일본의 강력한 영향에서 벗어나 기를 펴게 되리라고 말한다”고 중국 문화부 산하 국제문화교류센터의 장신은 말했다. 하지만 일부 팬은 질적 저하를 지적한다. “TV에서 방영하는 일본 만화영화를 좋아했는데 갑자기 중단됐다”고 항저우에 거주하는 학생 체리 젱(20)이 말했다. “새로 시작한 만화는 훨씬 재미가 떨어졌다.” 제작자들이 작품을 많이 만들려 애쓰면서 작품의 질적 수준을 외면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5분짜리 단편을 만들어도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구조 역시 창의성을 가로막는다고 일부 전문가는 말했다. “베끼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중국전매대학(中國傳媒大學) 만화영화원의 시민용은 말했다. “우리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일본 만화영화는 한눈에 알아본다. 중국 작품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항저우 축제에서 코스프레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일본 만화 캐릭터로 분장했다(우승자는 일본에서 열리는 코스프레 결승전에 참가한다). 행사장을 지키고 선 제복 경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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