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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엔 마이너스만 찍히고…”

“통장엔 마이너스만 찍히고…”

▶집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 각종 보험료를 내느라 요즘 직장인들의 어깨가 무겁다.

‘30개월 차 할부 / 2년마다 휴대전화 12개월 할부 / 작년 가을에 구입한 인라인 6개월 할부 / 매 계절 장만하는 옷 할부 / 앞으로 결혼하면 집 키워서 또 할부 / 아이 이런저런 교재 값 할부 / 부모님 선물 사드리고 할부 / 홈쇼핑 제품 구입하고 할부…’(hisjini) 한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네티즌이 올린 글이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고단한 할부인생을 사는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평생 빚 갚다 볼일 다 보는 게 현대인들의 인생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 할부인생의 길에 들어서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본격적 할부인생의 시작이 결혼을 위해 주택마련 융자를 받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각종 학자금 융자도 보편화돼 대학생 때부터 할부인생의 길로 들어서는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양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상태(25·가명)씨는 총 6학기 중 4학기 등록금을 정부 학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해 납부했다. 김씨가 빌린 돈은 학기마다 300만원으로 총 1200만원가량 된다. 금리는 7%다. 2010년까지 이자만 갚고 2011년부터 매월 20만원씩 원금을 갚아야 한다. 현재 이자로 매월 통장에서 2만4000원씩 빠져나간다. 김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 월급 통장에서 융자 원금이 빠져나가게 된다. 김씨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방학 중이나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빚이 쌓여있다는 생각만 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현재 정부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만 3000여 명에 달한다.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북 대구에 소재한 2년제 전문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노경식(24·가명)씨도 2학기 등록금 전부를 은행 대출을 통해 납부했다. 대구은행에서 금리 12%로 대출 받았다. 상환 기간은 졸업 전까지 이자만 갚고 졸업 후 원금 상환을 하게 돼 있다. 아버지가 실직한 상태여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 일을 도우며 공부를 하고 있다. 노씨는 “학교는 졸업해야 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며 “졸업 후에도 얼마동안은 빚쟁이 신세로 산다는 생각에 착잡하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부터 ‘빚’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학자금 대출 제도마저 없었다면 공부할 길이 막막했을 그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 그러나 속으로는 골병 드는 할부인생일 뿐이다. 대기업 전자회사에 다니는 이민수(38·가명) 과장은 애들을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애들이지만 저 아이들을 언제 키우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큰아이는 세 살, 작은아이는 두 살, 연년생으로 둘을 두었다. 집은 수원에 있는 아파트로 2억원 대출을 받았다. 원리금과 같이 갚는데 한 달에 150만원 든다. 남들은 대기업에 다닌다고 성과급이 엄청나지 않으냐고 말하지만 그것도 반도체 사업부 쪽 얘기다.
큰애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으려니 마음이 아파 안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생활비는 거의 남지 않는다. 그래도 직장이 건실하니 신용대출 5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빚 갚으며 사는데도 애들이 커가 소형차로는 안 될 것 같아 최근엔 NF쏘나타도 구입했다. 다행히 집값이 조금 올라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었다. 대출 넘어 또 대출이다. 그는 “재테크는 꿈도 못 꾼다”고 말한다. 부동산을 차라리 팔까도 생각 중이지만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팔릴지 의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정수(35·가명)씨는 얼마 전 결혼했다. 김씨는 “월급의 반이 할부금 갚는 데 쓰이는 것을 보면 정말 속이 쓰린다”고 말한다. 그의 실수령액은 295만원이다. 주택 대출금으로 매월 60만원, 자동차 할부로 72만원, 총 142만원이 사라진다. 여기에 보험료까지 제하면 손에 남는 것으로 생활하기는 정말 빠듯하다.

“저축은 부러운 사람들 얘기” “물론 신혼 때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을 것 같지만 이러다 애는 낳겠느냐”며 푸념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적자인생이 시작될 것 같아 걱정이기 때문이다. 4인 가정을 꾸려나가는 이정원(44·가명)씨 역시 할부 부담으로 항상 어깨가 무겁다. 올해 이씨의 큰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돈으로 애들 유학 보내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대출받느냐”는 게 그의 말이다. 그도 월급이 적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월 실급여 375만원으로 자동차 할부 받은 것 갚는 데 90만원을 쓰는 것 뿐이다. 그는 “이자 아까워서 90만원씩이나 낸다”며 “중학생 학원 한번 보내려니 허리가 휜다”고 말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걱정이다. “중학교가 이 정도면 고등학교는 더 학비가 들 것”이라며 “이러다간 내 노후를 아이들이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주부 유미선(40·가명)씨는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 300만원 중 할부금과 각종 보험료, 딸 아이 학비를 납부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2003년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면서 20년 장기 주택상환을 시작한 게 치명적인 가계 부담이 됐다. 2003년 당시 원금과 이자를 합해 월 48만원씩 납부하던 대출 이자가 계속 올라 지금은 5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시부모 건강보험료 25만원, 부부와 딸 보험료 36만원, 딸 교육비 33만원과 각종 공과금 25만원을 포함하면 170만원을 훌쩍 넘는다. 유씨는 “월급의 절반 이상이 고정적으로 지출되고 남는 돈은 없다. 남들은 주식투자다 뭐다 난리들이지만 우리 집은 저축은커녕 매월 먹고살기도 힘들다. 급여는 아예 마이너스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매월 마이너스 통장 이자만 해도 10만원대가 넘는다”고 푸념했다. 가계 수입 1억원이 넘는 중산층 부부에게도 할부인생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2006년 3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맞벌이 동갑내기 부부 임상태(32·가명)씨와 서미영(32·가명)씨. 이 부부가 1년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1억원 정도다. 결혼하자마자 은행 대출금 1억원을 빌려 강남에 3억원짜리 작은 아파트를 샀다. 이들 부부가 매월 집값 대출금 이자만 내는 돈이 40만원. 이것도 남편 임상태씨의 회사 우대 대출로 연 4.5%를 적용한 액수였다. 회사 우대대출 덕분에 연 7~8%의 이자를 내야 하는 사태는 막았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다. 부부는 곧 아기가 생길 것에 대비해 은행에서 1000만원을 추가로 빌려 자가용도 마련했다. 1년 수입 중 집값과 차 할부 대금으로 나가는 금액만 월 200만원이 넘는다. 서씨는 “대출이나 자동차 할부 이자 나가는 것이 제일 아깝다”며 “아직은 목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목돈이 어느 정도 생긴다 하더라도 더 큰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고, 집값 대출을 다 갚아도 더 좋은 집으로 가려면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으로는 힘들다. 그래서 은퇴할 때까지 대출금을 안고 살게 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 부부는 현실적으로 대출이나 할부를 제로로 만드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대출을 받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이자를 충당하고도 남는 이익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1억원 빚 내서 집 사고 다시 3억원 빚 내서 집 사고’ 하는 구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재산은 더 불어난 것 같으나 할부금 액수는 점점 더 커지고 어깨는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할부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부러 자초하는 사람도 많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재석(31·가명)씨는 투자 목적으로 할부인생을 살고 있다.

▶할부인생에 들어서는 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사진은 대학생들을 유혹하는 각종 대출 상품을 홍보하는 전단지.

이씨는 2004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연봉 6300만원으로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는 2005년 국민은행에서 주택 마련을 위한 대출금 2억8000만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전세금 1억7000만원에 종자돈 3000만원을 합해 일산에 49평형 4억8000만원짜리 집을 장만했다. 이씨는 “주변에선 젊은 나이에 집을 샀다고 난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융자와 전세금이 거의 전부인 셈”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로만 매월 100만원씩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고 있다. 1년에 내는 이자만 1200만원. 집값이 1년 동안 1200만원 오르지 말란 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전세금 1억7000만원도 내년이 되면 더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오른 금액만큼 대출을 갚고 그 후에 전세금을 또 올려 나중에 팔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1년에 내는 이자 1200만원 중 소득공제를 받으면 1050만원 정도만 부담해도 되니 큰 손해는 안 보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는 “만약 집값이 올라 대출금도 모두 상환할 수 있다면 더 넓은 평수를 또 대출받아 전세를 끼고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년의 ‘할부살이’ 더 서글퍼 더 억울한 사연도 있다. 본인 능력 때문이 아닌 부모의 빚을 대물림 받는 경우다. 이들은 본인 의지나 선택에 의하지 않았음에도 지옥 같은 ‘빚’의 늪에 빠지게 된다. 김재원(31·가명)씨는 아버지가 사업자금으로 빌린 신용 대출이 한도를 넘어 본인까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경우다. 사업을 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김씨 아버지는 대학생인 아들 이름으로 카드를 만들어 쓰게 됐다. 아버지는 현금 서비스로 계속 돌려 막으면서 결국 5000만원이라는 금액을 연체하게 됐고 김씨는 부친 때문에 대학생 때부터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기도 힘들었다.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힘들게 직장에 입사하면 카드사들은 김씨의 급여통장 돈을 어김없이 빼내갔다. 결국 김씨는 작은 디자인 회사에 겨우 취직해 카드사의 돈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우체국 통장을 개설해 급여 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세와 휴대전화 사용료조차 여자친구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씨는 “종자돈 모으기도 힘든데 빚을 갚고 있다”며 “대출해 집 사고 자동차 사는 친구들에 비해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나오는 건 한숨뿐”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부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젊었을 때야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 고리를 끊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 겪는 ‘할부살이’는 더 고달프고 서럽게 마련이다. 서울 상도1동에 사는 서귀옥(65·가명) 노인은 “자식놈들은 아무 소용도 없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푸념했다. 서씨는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비 2000만원을 새마을금고에서 대출받았다. 조그만 집 한 칸이 있어서 그나마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에 내는 이자만 30만원. 시장 변에 쭈그리고 앉아 야채를 팔아 남는 돈은 한 달에 50만원이 될까 말까다. 서씨가 다니는 교회에서 연말에 돈을 모아 주기는 하지만 그 돈을 받아도 생활은 언제나 빠듯하다. 자녀가 없으면 매달 정부 보조금이라도 받을 텐데 자녀도 멀쩡히 살아 있고 연락이 끊긴 것도 아니다. 사는 게 힘들어 부모를 도와줄 수 없을 뿐이다. “젊어서야 아이들이 보험인 줄 알았지. 지금 나이 돼 보니 그것도 아니더라고. 이 나이에 대출받아 놓으니 빚에 쪼들릴 수밖에. 영감이 지금 죽으면 안 되는데…. 장례비라도 모아는 놓고 죽어야지.” 서씨의 푸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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