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엔 마이너스만 찍히고…”
“통장엔 마이너스만 찍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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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 부러운 사람들 얘기” “물론 신혼 때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을 것 같지만 이러다 애는 낳겠느냐”며 푸념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적자인생이 시작될 것 같아 걱정이기 때문이다. 4인 가정을 꾸려나가는 이정원(44·가명)씨 역시 할부 부담으로 항상 어깨가 무겁다. 올해 이씨의 큰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돈으로 애들 유학 보내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대출받느냐”는 게 그의 말이다. 그도 월급이 적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월 실급여 375만원으로 자동차 할부 받은 것 갚는 데 90만원을 쓰는 것 뿐이다. 그는 “이자 아까워서 90만원씩이나 낸다”며 “중학생 학원 한번 보내려니 허리가 휜다”고 말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걱정이다. “중학교가 이 정도면 고등학교는 더 학비가 들 것”이라며 “이러다간 내 노후를 아이들이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주부 유미선(40·가명)씨는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 300만원 중 할부금과 각종 보험료, 딸 아이 학비를 납부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2003년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면서 20년 장기 주택상환을 시작한 게 치명적인 가계 부담이 됐다. 2003년 당시 원금과 이자를 합해 월 48만원씩 납부하던 대출 이자가 계속 올라 지금은 5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시부모 건강보험료 25만원, 부부와 딸 보험료 36만원, 딸 교육비 33만원과 각종 공과금 25만원을 포함하면 170만원을 훌쩍 넘는다. 유씨는 “월급의 절반 이상이 고정적으로 지출되고 남는 돈은 없다. 남들은 주식투자다 뭐다 난리들이지만 우리 집은 저축은커녕 매월 먹고살기도 힘들다. 급여는 아예 마이너스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매월 마이너스 통장 이자만 해도 10만원대가 넘는다”고 푸념했다. 가계 수입 1억원이 넘는 중산층 부부에게도 할부인생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2006년 3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맞벌이 동갑내기 부부 임상태(32·가명)씨와 서미영(32·가명)씨. 이 부부가 1년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1억원 정도다. 결혼하자마자 은행 대출금 1억원을 빌려 강남에 3억원짜리 작은 아파트를 샀다. 이들 부부가 매월 집값 대출금 이자만 내는 돈이 40만원. 이것도 남편 임상태씨의 회사 우대 대출로 연 4.5%를 적용한 액수였다. 회사 우대대출 덕분에 연 7~8%의 이자를 내야 하는 사태는 막았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다. 부부는 곧 아기가 생길 것에 대비해 은행에서 1000만원을 추가로 빌려 자가용도 마련했다. 1년 수입 중 집값과 차 할부 대금으로 나가는 금액만 월 200만원이 넘는다. 서씨는 “대출이나 자동차 할부 이자 나가는 것이 제일 아깝다”며 “아직은 목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목돈이 어느 정도 생긴다 하더라도 더 큰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고, 집값 대출을 다 갚아도 더 좋은 집으로 가려면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으로는 힘들다. 그래서 은퇴할 때까지 대출금을 안고 살게 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 부부는 현실적으로 대출이나 할부를 제로로 만드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대출을 받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이자를 충당하고도 남는 이익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1억원 빚 내서 집 사고 다시 3억원 빚 내서 집 사고’ 하는 구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재산은 더 불어난 것 같으나 할부금 액수는 점점 더 커지고 어깨는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할부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부러 자초하는 사람도 많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재석(31·가명)씨는 투자 목적으로 할부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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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할부살이’ 더 서글퍼 더 억울한 사연도 있다. 본인 능력 때문이 아닌 부모의 빚을 대물림 받는 경우다. 이들은 본인 의지나 선택에 의하지 않았음에도 지옥 같은 ‘빚’의 늪에 빠지게 된다. 김재원(31·가명)씨는 아버지가 사업자금으로 빌린 신용 대출이 한도를 넘어 본인까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경우다. 사업을 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김씨 아버지는 대학생인 아들 이름으로 카드를 만들어 쓰게 됐다. 아버지는 현금 서비스로 계속 돌려 막으면서 결국 5000만원이라는 금액을 연체하게 됐고 김씨는 부친 때문에 대학생 때부터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기도 힘들었다.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힘들게 직장에 입사하면 카드사들은 김씨의 급여통장 돈을 어김없이 빼내갔다. 결국 김씨는 작은 디자인 회사에 겨우 취직해 카드사의 돈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우체국 통장을 개설해 급여 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세와 휴대전화 사용료조차 여자친구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씨는 “종자돈 모으기도 힘든데 빚을 갚고 있다”며 “대출해 집 사고 자동차 사는 친구들에 비해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나오는 건 한숨뿐”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부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젊었을 때야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 고리를 끊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 겪는 ‘할부살이’는 더 고달프고 서럽게 마련이다. 서울 상도1동에 사는 서귀옥(65·가명) 노인은 “자식놈들은 아무 소용도 없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푸념했다. 서씨는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비 2000만원을 새마을금고에서 대출받았다. 조그만 집 한 칸이 있어서 그나마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에 내는 이자만 30만원. 시장 변에 쭈그리고 앉아 야채를 팔아 남는 돈은 한 달에 50만원이 될까 말까다. 서씨가 다니는 교회에서 연말에 돈을 모아 주기는 하지만 그 돈을 받아도 생활은 언제나 빠듯하다. 자녀가 없으면 매달 정부 보조금이라도 받을 텐데 자녀도 멀쩡히 살아 있고 연락이 끊긴 것도 아니다. 사는 게 힘들어 부모를 도와줄 수 없을 뿐이다. “젊어서야 아이들이 보험인 줄 알았지. 지금 나이 돼 보니 그것도 아니더라고. 이 나이에 대출받아 놓으니 빚에 쪼들릴 수밖에. 영감이 지금 죽으면 안 되는데…. 장례비라도 모아는 놓고 죽어야지.” 서씨의 푸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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