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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신사복 매출 2000억엔 넘을 듯

올 신사복 매출 2000억엔 넘을 듯

▶일본에서 노 타이는 쿨 비즈 패션의 대표 격이다.

지난달 일본 화장품 업체인 가네보 홍보 관계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의 주일 특파원 3명과 가네보의 홍보 관계자 3명이 자리를 처음으로 함께했는데 특파원들은 전원 넥타이 차림, 가네보의 3명은 전원 노 타이 차림이었다. “아무리 ‘쿨 비즈’가 일본 직장 사회에 스며들었다고 하지만 격식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저녁 자리에 노 타이 차림으로 오진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격식을 차렸던 한국 특파원들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패션 감각 넘치는 셔츠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집어던진 일본 직장인들의 여름 풍경은 일본에 새로운 산업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일본 환경성의 제창으로 시작된 쿨 비즈(cool biz)는 올해로 3년째를 맞는다. 쿨 비즈란 쉽게 말하면 사무실 등 실내 온도를 섭씨 28도로 설정하고 노 타이, 노 재킷을 권장하는 운동이다. 사무실 냉방 온도를 높여 에너지를 절약하고, 이산화탄소(CO2) 배출 삭감을 통해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캠페인이다. 이에는 국회, 재판소 등 모든 관청과 민간 기업이 총동원된다. 6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가 쿨 비즈 차림기간이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이 지난여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게이단렌에 회원사로 등록돼 있는 1342개 기업 중 쿨 비즈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 수는 무려 93%에 달했다. 일본 국민의 의식도 완전히 변했다. 의류업체인 유니클로의 조사에 따르면 “쿨 비즈의 메리트가 뭐라고 보나”라는 질문에 지난해의 경우 가장 많은 응답이 “더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1위 응답이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일종의 사회 의식으로까지 뿌리를 내린 것이다. 또 주부 응답자의 99.5%는 “남편이 쿨 비즈를 더 ‘애용’해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주부 입장에서도 남편의 쿨 비즈 차림이 더 멋있어 보이고 본인들로서도 손이 덜 가기 때문일 게다. 하여간 노 타이 차림 권장은 3년 사이에 일본의 여름 비즈니스웨어의 판도를 바꿔놨다. 가장 ‘대박’을 터뜨린 것은 역시 셔츠 시장이다. 넥타이를 풀어도 흐트러짐 없게 보이는 ‘보턴 다운셔츠’나 칼라 깃이 넓게 벌어져 있는 와이드스프레드 셔츠의 수요가 급증했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퍼스트리테일링의 경우 쿨 비즈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지난해 여름 신사 셔츠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배인 300만 장에 달했다. 클 비즈가 도입된 3년 전만 해도 “거래처에 가는데 노 타이, 노 재킷으로 괜찮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요즘은 “올 때 쿨 비즈 셔츠 차림으로 와 주세요”라고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하는 거래처도 늘고 있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복장이 된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저가 신사복 업체인 아오키의 경우 올여름 매출이 대략 전년 대비 19%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쿨 비즈가 시작된 2005년 신사복 시장의 규모는 전년 대비 2% 증가한 920억 엔 규모였다. 당시에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시장 규모가 전년을 앞섰다”며 큰 화제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500억 엔으로 치솟고 올해도 2000억 엔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엄청난 성장세다. 남성 내의시장도 변화를 맞고 있다. 내의시장은 매년 10%가량 규모가 처지던 시장이었다. 그러나 쿨 비즈의 확산으로 청량감 있는 소재를 사용한 부가가치 높은 내의 판매가 인기를 끌면서 가파른 회복세를 타고 있다. 올해의 경우 양말 바닥 부분에 구멍을 뚫어 쾌적한 기분을 얻게 하면서 뒤꿈치 부분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한 ‘쿨 비즈 삭스’가 대히트를 쳤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단순한 쿨 비즈 캠페인이 아니라 그로 인해 중년 남성들의 ‘멋 감각’과 ‘멋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자신의 ‘쿨 비즈 패션’을 직장이나 가정에서 칭찬 받고는 패션에 ‘눈을 뜬’ 중·장년이 적지 않다. 일본의 대형 백화점업체인 다카시마야(高島屋) 니혼바시(日本橋) 점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카우스 보턴이나 포켓 손수건 등 소품을 찾으러 오는 남성이 현저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하나 일본 의류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옷의 부피나 두께가 얇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온난화가 확실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긴팔 셔츠나 재킷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늦더위가 오래가다 보니 10월에도 가을 상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 가을 물건의 판매기간이 짧아져 여름 상품에서 겨울 상품으로 바로 바뀌는 해가 최근 수년 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겨울도 매년 따뜻해지고 있어 두꺼운 옷들이 팔리지 않는다. 이윤 폭이 큰 겨울 의류상품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의료 업계로선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조금이라도 선선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옷 소재를 개발하는 기술이 의류시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온난화로 패션 달력 다시 짜야 예컨대 부인용 ‘반팔 스웨터’같은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아이템이다. 그러나 이제는 겨울의 대표상품이 됐다. 유니클로의 경우 도쿄의 대표적 패션 거리인 하라주쿠(原宿)에 1년 내내 티셔츠만 파는 가게를 올봄에 문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대형 패션점인 빔즈도 이를 그대로 따라 했다. 한마디로 온난화는 이미 패션업계의 ‘상품 달력’을 다시 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최대 의류업체의 하나인 온워드 가지야마의 구로베 가즈오 신사 상품 개발실장은 “아열대 기후처럼 변해가고 있는 일본에서는 앞으로 독자기술에 의한 선선한 비즈니스 웨어가 발전할 것”이라며 “게다가 이 분야는 일본이 원래부터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쿨 비즈가 몰고 온 격변은 의류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쿨 굿즈(cool goods)’라고 불리는 것들이 ‘히트 상품’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이 스포츠 용품 업체 미즈노가 내놓은 ‘아이스 매트(ice mat)’라는 것이다. 물에 한 번 적시기만 해주면 매트가 2시간 동안 목등을 차갑게 해준다. 처음 선보인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사 현장 인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으나 올해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이스 매트에 달려들었다. 이 아이스 매트는 목등 부분에 흡수소재를 사용, 단순히 차갑게만 하는 게 아니라 흡수한 수분이 기화(氣化)할 때 피부의 열을 빼앗아 피부표면의 온도 상승을 방지한다.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 영업사원이나 노인들의 일사병 방지용으로 애용됐다. 또 여름 방학을 맞은 자녀들이 밖에서 야구 등 운동을 할 때 애용되기도 했다. 단체로 수백 개 단위로 구입하는 회사도 많았다. 또 올해는 효과 지속시간을 절반인 1시간으로 줄인 저가형 ‘아이스 매트 라이트(가격 1480엔)’를 투입, 짧은 시간 외출하는 소비자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물에 적시기만 하면 되고, 반복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였다. 비슷한 원리로 목 부분을 집중적으로 냉각하는 ‘넥 쿨러(neck cooler)’도 대히트를 했다. 골프용품 업체인 카스코(kasco)가 선보인 ‘BORZOI 넥 쿨러(가격 2100엔)’는 재고가 바닥날 정도로 팔려나갔다. 골프 등 여름철 레저를 즐기는 이들에게 큰 인기였다. 회사 측은 내년은 올해의 두 배가량의 생산을 예정하고 있다. 이러자 일본의 최대 생활용품 백화점인 도큐핸즈는 아예 점포 안에 ‘무더위 대책 코너’란 매장을 새로 만들었다. 냉각 효과가 있는 모자를 비롯해 스카프, 손수건 등이 줄기차게 등장하고 있다. ‘매지쿨(magicool)’이라 불리는 ‘시원한 스카프’는 지난해 2만 장이 팔렸으나 올해의 경우 20만 장이 넘게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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