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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벌어도 싹수 없으면 ‘꽝’

돈 잘 벌어도 싹수 없으면 ‘꽝’

가치투자자의 기본원칙은 철저하게 좋은 주식에만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치를 평가한다는 건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기업가치 평가는 누구나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포기하고 안 한다는 특징도 있다. ‘가치투자를 하려면 회계원리를 먼저 배우라’고 하면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회계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지 않고는 가치투자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반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기업가치를 평가해주는 전문가인 애널리스트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투자자가 애널리스트처럼 전문지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애널리스트가 표현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상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가치가 주가에 영향을 주는 경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간단한 회계적인 요소들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치는 ‘재무제표에 다 나와 있다’는 말이 있다. 재무제표만 들여다보면 지금 영업이 잘되고 있는지, 이 기업이 지금 안고 있는 문제가 뭔지를 웬만큼 알게 된다. 경제와 산업에 대한 감각은 경제신문만 꾸준히 읽어도 생긴다. 하지만 개별 기업에 대한 정확한 가치 평가는 재무제표를 뜯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다. 가치투자자에게 재무제표는 곧 지도다. 지도 없는 배는 파도의 흐름에 떠밀려 표류하게 되고 만다. 재무제표의 인도를 받지 않는 주식투자는 머지않아 시장 분위기에 몸을 맡기는 모멘텀 투자자로 전락하고 만다. 2000년부터 분기 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돼 분기별 비교가 가능해지면서 재무제표는 가치투자자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유용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재무제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 복잡한 수치들의 의미를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기본원칙을 이해하고 그중 중요한 항목 몇 개를 집중 분석해 보는 것으로 족하다. 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무제표란 일정기간의 경영성적과 특정시점의 재무상태를 나타내주는 보고서다.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현금 흐름표 등이 있다. 이 중 주식투자자가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다. 손익계산서는 한 기업이 일정한 기간에 벌어들인 돈과 그 돈을 벌기 위해 쓴 돈을 알기 쉽게 정리해 놓은 것이다. 기업에서 쓰는 가계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계부에서 가장의 월급, 은행예금 이자가 바로 기업의 각종 수익항목에 해당된다. 주거비, 외식비, 교육비, 문화지출 같은 가계부 지출은 바로 손익계산서상의 비용 항목이다. 최종적인 수익과 비용의 차이가 바로 당기순이익이다. 가정에서 한 달 동안 쓰고 남은 돈을 예금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은 이 돈을 은행에 저축하거나 주식, 부동산에 투자한다. 주주들에게 배당금의 형태로 나눠주기도 한다. 대차대조표는 일정 시점에서 그 회사의 재산이 얼마나 있나를 보여주는 표다. 회사 재산이 얼마나 되고 사업 밑천과 빚은 각각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집에서는 보통 대차대조표를 만들지 않는다. 자기 재산이 얼마고 은행 빚이 얼마인지를 다들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다르다. 사업자금을 은행, 금고, 사채에서 빌려서 쓰고 재산도 공장설비, 창고, 지점 임차보증금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눠 놓는다. 이 때문에 꼼꼼히 기록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를 보면 기업의 실력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물건을 팔거나 직원을 신규 채용하거나 돈을 빌리는, 모든 기업활동이 두 가지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둘 다 동시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하나에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언뜻 보면 어느 하나에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다른 쪽에도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재무제표의 내용이 바뀌지 않고 기업 실적이 늘거나 줄어드는 일은 없다. 기업환경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과 그 결과를 안정성·수익성·성장성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따져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기업환경 변화, 기업가치 변화’의 과정을 더욱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안정성·수익성·성장성. 이 셋을 일컬어 가치투자의 3요소라고 한다. 안정성이란 기업이 망하지 않고 영업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경기가 갑자기 나빠졌을 때 어떤 기업은 문을 닫지만, 어떤 기업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위기를 잘 넘긴다. 이것이 안정성의 차이다. 빚이 많은 기업이 빚이 적은 기업보다 안정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벌어들인 돈은 얼마 없는데 그 돈을 고스란히 공장설비를 늘리는 데 공격적으로 재투자하는 기업보다는, 금고에 현금 형태로 넣어두는 기업이 안정성이 높다. 투자 종목을 선별할 때 안정성이 투자자 나름의 일정한 기준을 밑도는 기업들은 먼저 빼버려야 한다. 성장성은 한마디로 그 기업에 싹수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싹수가 있는 기업은 기업가치 중 현재 재산 부분은 적지만, 앞으로 벌어들일 돈 부분은 매우 크다. 반대로 성장성이 낮은 기업은 현재 재산 부분이 크더라도 향후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적다. 성장성은 보통 매출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느냐로 측정된다. 성장성은 업종과 시장의 성격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이미 선발업체들이 먹을 만한 것은 다 먹은 업종에 새로 들어간 기업은 성장성이 높지 않다. 이제 막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신규 업종에 진입한 업체는 성장성이 높다. 또한 국내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업체보다 세계시장에 진출한 회사가 아무래도 성장성이 높다. 시장이 넓기 때문이다. 수익성은 ‘벌어들인 돈이 미리 들어간 돈에 비해 얼마나 많으냐’하는 비율로 따진다. 기업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대개 기업 성장의 초기 단계에서는 공장을 새로 짓고 직원도 늘리고 하는 과정에서 들이는 비용이 많다. 반면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영업망도 부실해 벌어들이는 돈은 많지 않다. 그러다가 투자가 일단락되고 소비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정반대로 추가로 들어가는 돈은 적은 대신 버는 돈은 급속도로 늘어난다. 이래서 수익성은 연륜이 쌓여야만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안정적이며 성장성 있는가 기업의 가치는 바로 이 세 가지 요인이 어우러져 결정된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대주주 간 내분이 일어나 경영이 엉망이 돼서 조만간 문을 닫게 될 처지라면 기업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망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기업이라도 성장성과 수익성이 없다면 기업가치를 높게 쳐주기 곤란하다. 가장 이상적인 기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3대 요소를 두루 갖춘 기업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설사 며칠 밤을 새워 3대 요소가 어우러진 기막힌 종목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십중팔구 이미 늦은 경우일 것이다. 수많은 투자자가 경쟁적으로 좋은 종목을 찾아 투자하다 보니, 3대 요소를 모두 갖추게 되는 단계에서는 이미 주가가 많이 올라 있게 마련이다. 3대 요소 중에서 무엇이 기업가치나 주가에 더 강력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해답은 없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기에는 안정성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99년 하반기에 투자자들은 성장성 한 가지만 보고 정보통신 인터넷주에 엄청난 돈을 걸었다. 일반적으로 실물이나 증시의 상황이 호전될수록 성장성이 주목 받고 상황이 악화할수록 안정성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해당 업종과 증시 분위기에 따라서도 다르다. 코스닥 시장처럼 신생업종의 비중이 높은 시장에서는 성장성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최소한의 안정성을 갖추고 매출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고, 수익성 개선 조짐이 엿보이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 반면 코스피 시장처럼 전통 업종의 비중이 높은 시장에서는 수익성이 주가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안정성은 투자심리가 투기적이거나 패닉 상태에 들어갈 때 위세를 떨친다. 가치투자 3요소의 중요도는 주식시장의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투자자는 세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안정성에 해당하는 것이 기업의 자산가치 즉 보유 부동산, 보유 주식, 보유 현금 등으로 평가된다. 성장성과 수익성에 해당하는 것이 수익가치다. 미래에 발생할 기업의 이익을 현재의 가치로 평가하게 된다.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더한 것이 기업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가치투자자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평가해 그 기업가치를 계산해내고, 그 기업가치(적정가치)보다 현재의 주가가 낮을 때 주식을 산다. 또한 적정가치보다 주가가 높게 형성되었을 때 주식을 매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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