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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 값 ‘10년 동결’ 선언하자”

“생필품 값 ‘10년 동결’ 선언하자”

지난 10월 16일 신세계 이마트가 전격 발표한 ‘가격혁명’ 뒤엔 정재은(68) 신세계 명예회장이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일찍이 미국의 월마트, 프랑스의 까르푸 등 외국 선진 유통업체들을 벤치마킹하며 유통업계의 미래 성장 동력은 자체 상품 개발을 통한 가격 파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수년 전부터 신세계 임직원들에게 “일시적인 가격 인하가 아닌 근원적이고 혁명적인 가격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해 왔다. 10월 2일 정 명예회장은 신세계 본사 문화홀에서 ‘가격 혁명’ 특강을 했다. 여기에는 이마트 가격혁명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마트는 정 명예회장의 특강 14일 만에 ‘가격혁명’을 선포했다. 이 자리에는 구학서 부회장,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대표와 임원, 백화점과 이마트의 실무 책임자급인 부장 이상 간부 300여 명이 참석했다. 정 명예회장 강연록을 이코노미스트가 단독 입수했다. 주요 내용을 가급적 원문 그대로 싣는다.
신세계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해 7월 ‘유통업의 미래’를 주제로 퓨처 스토어(Future Store), T자형 성장전략, 스토리(Story) 경영 등에 대해 말씀 드린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최근 금리 인상, 가계부채 증가에 의한 소비침체의 지속, 인터넷과 첨단 IT기술 발달에 따른 소비 트렌드의 변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 증가 등은 우리 신세계에 많은 도전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특히 금년 4월 미국과 FTA 협상을 최종 타결함으로써 국가 경제체제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으며, 유통업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부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부문의 부정적인 영향에도 장기적으로는 GDP 증가와 고용 확대를 촉진시킴으로써 글로벌 국가로서의 위상 제고와 경제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국내 소비물가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국민 소득수준에 비춰 볼 때 소비생활에 큰 고통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국민들로 하여금 상품가격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가격혁명을 통한 소비자 이익경영”입니다. 최근 소비자들은 Web2.0 시대의 도래와 함께 가격비교 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찾아내고, 인터넷 동호회를 이용해 상품 사용 후기를 공유함으로써 기업의 혁신을 촉구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비정보 네트워크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가격 인하 수준이 아닌 가격혁명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유통비, 판매가의 70~80%
서울의 물가는 뉴욕이나 도쿄보다 높습니다. 2006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은 1만7690달러, 미국은 4만4970달러, 일본은 3만8410달러임을 감안하면 물가 격차가 각각 2.5배, 2.2배로 더욱 벌어집니다. 결국 한국 소비자들은 선진국 소비자들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입니다. 국제 인력자원 컨설팅 업체인 ECA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서울은 아시아 지역에서 외국인이 생활하기에 가장 비싼 도시로 2년 연속 선정됐으며, 전 세계 도시 중 7위로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10위 안에 든다고 합니다. 아시아 지역 2위인 도쿄와 비교하더라도 동일한 상품을 구입할 때 10% 정도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있으며,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물가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일반 식료품의 가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마트와 일본 이토요카도의 상품 가격을 비교해 보면, 과일과 야채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품목에서 한국이 오히려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가격은 일본보다는 다소 낮으나 미국, 중국, 프랑스, 캐나다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농산물은 생산에서부터 소비자가 구입하기까지 중·도매인, 소매상 등 여러 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은 품목별로 차이는 있으나 판매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대 70~80%에 이른다고 합니다. 쇠고기 가격을 봅시다. 국내 쇠고기 가격은 LA, 파리, 베이징 등 세계 주요 도시에 비해 3~4배 비싼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쇠고기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의 경우에도 최상급 등심을 제외하면 서울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화장품 가격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수입 화장품이 외국보다 많게는 70%에서 적게는 20%까지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수입 화장품 가격이 높은 것은 ‘고가 화장품은 좋은 화장품’이라는 소비자 인식을 이용해 화장품 회사들이 고가 전략을 펼치기 때문입니다. 고급 이미지 유지를 위한 마케팅, 유통 비용이 판매가격의 70%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 서울이 가장 비싸 전 세계에 동일한 상품, 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업체의 상품 가격도 마찬가지 구조입니다. 스타벅스 커피의 경우 서울이 가장 비싸며 맥도날드 햄버거 가격도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이렇게 비싼 이유는 최근 지속되고 있는 원화 강세와 높은 건물 임대료, 생산성 증가율을 넘어서는 임금 상승 등에 기인합니다. 우리나라의 수입 자동차 가격도 뉴욕의 2.4배, 도쿄의 2.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입 자동차 가격이 이렇게 비싼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 외에, 수입상과 딜러 몫으로 분류되는 유통 마진이 터무니없이 높기 때문입니다. 상품 이외의 각종 서비스 이용료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 주말 골프를 즐기려면 하루에 30만원가량 듭니다. 태국 방콕의 중·상급 골프장에서 그린피는 물론 캐디, 카트 비용과 식사까지 해결해도 6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도 서울의 70% 수준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습니다. 국내 골프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작년에 해외골프 여행객은 100만 명을 넘어섰고 연간 1조1000억원이 넘는 외화를 쓰고 왔다고 합니다. 다음은 상품의 원가 상승에 많은 영향을 주는 고비용 구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인건비 부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임금은 소득이 비슷한 대만의 2배를 넘고 있으며 국민소득이 2배가 넘는 일본, 미국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임금은 상품 원가와 서비스 비용을 높이고, 이것이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임금은 경제 성장과 비교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산성의 증가보다 많게는 6%, 적게는 1% 이상의 임금이 초과 지급됨으로써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은 전 세계 95개 도시 중 아파트 월세 비용이 다섯 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생활비의 척도라는 아파트 임대료는 서울이 부동산 가격이 높기로 유명한 런던과 파리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최근 몇 년간 급등했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입니다. 결국 고물가의 원인은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높은 유통비용과 임금상승, 고지가, 판촉비용 증가에 따른 고비용 구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상품원가 인상 소비자에 전가
이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생산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보다는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 인상으로 손쉽게 해결해 온 기업의 책임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유통업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상품 원가가 오르면 단순히 판매가격을 인상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해외의 탁월한 유통기업들은 자사의 전문성과 핵심 역량을 십분 활용해 구조를 개혁하고 원가를 절감해 그 이익을 소비자에게 환원시키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화장품업체 ‘세포라’가 고가 화장품 판매의 기본인 대면판매를 과감히 포기하고 수퍼마켓과 같이 카테고리별로 진열하는 ‘오픈 셀’(Open Sell) 방식을 도입한 것은 하나의 좋은 사례입니다.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상품 구입 및 샘플 사용을 자유롭게 하고 필요한 고객에 대해서만 상품 설명을 함으로써 획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월마트의 평판TV 판매 혁신도 하나의 좋은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과거 월마트에서는 평판TV의 상품 구색을 베스트 바이나 서킷 시티와 같이 다양한 브랜드를 풀 라인으로 운영하는 전략을 써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지오(Vizio)라는 신생 브랜드를 개발하고 상품 구색을 압축한 결과, 평판TV 중 가장 잘 팔리는 26인치를 베스트 바이보다 25% 이상 저렴한 448달러에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가격혁명을 통한 소비자 이익경영’을 실현하는 기업만이 지속적으로 고객의 지지를 받고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예를 들어 물가에 민감한 생활필수품에 대해서는 ‘10년간 가격 동결’과 같은 가격정책을 선언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변화나 개선이라는 일반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굳이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혁명의 의미는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따위를 타파하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혁명은 일반적인 기존의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닙니다. 2003년 아마존닷컴은 모든 광고를 중단한다고 선언했습니다. TV 광고도, 잡지 광고도 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에 그동안 광고에 들이던 비용을 무료 상품배송에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케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광고에 잡혀 있던 예산을 고객 서비스 개선에 투입한다는 것은 이단의 논리라고 생각했고, 일부에서는 아마존닷컴이 곧 몰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을 시행한 지 1년 후 연 매출 37% 신장과 함께 해외영업 부문 81% 신장이라는 놀라운 영업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아마존닷컴의 사례야말로 소비자를 위한 혁명이 무엇인지, 소비자 이익경영이 무엇인지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세계도 기존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소비자 이익경영’을 추구해야겠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통단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농산물의 유통경로에 비해 미국은 산지에서 모든 생산물의 선별, 포장, 예냉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원거리 수송에 적합하도록 수송의 규격화와 콜드체인시스템(Cold Chain System)이 확립돼 있습니다. 수퍼마켓이나 할인점 등 대형 소매업태가 발달되면서 도매시장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반면, 유통업체가 중심이 돼 대규모 전문 농가와 가공업체가 계약을 통해 직거래를 확대해 왔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유통과정이 미국만 가능한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도 이미 할인점은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유통업체의 파워가 막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한국은 도매시장과 협력회사에 의존하는 매입방식을 고수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매입의 편의와 상품 관련 위험 부담을 전가하기 위해 중간도매상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이마트에서 최근에 원양어선, 경매시장, 협력회사를 거쳐 판매되던 오징어·동태·꽁치 등을 원양선사와 직접 계약해 어선으로부터 직접 공급하는 루트를 개발함으로써 기존보다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 것은 유통단계 혁신의 좋은 사례입니다. 또 협력회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상품 기획·생산·판매·마케팅을 공동으로 기획함으로써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거품 비용을 과감하게 제거해야겠습니다. 월마트의 경우 3M, 코카콜라, 네슬레, 존슨 앤 존슨 등 66개사와 사전에 소비환경을 분석하고 공동 전략을 추진하는 조인트 비즈니스 플랜(Joint Business Plan)을 수립해 최적의 비용구조를 구축한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철저한 상품 원가 분석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그 다음에 생산단계에서 발생하는 제반 비용과 원가를 낮추는 프라이싱 프로세스(Pricing Process)를 확립해야 합니다.

좋은 제품 싸게 공급하는 게 가치
원가결정은 협력회사의 고유 권한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상품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원가를 다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둘째, 글로벌 소싱을 적극 확대해야겠습니다. 본격적인 FTA 시대의 도래에 따라 글로벌 소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언론분석에 따르면 일반 가정에서 구입하는 식료품의 80%가 수입상품이며, 최근에는 심지어 간병인, 간호사 등도 해외 인력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식료품의 원산지를 국가별로 보면 참치는 키프로스, 오징어는 모로코 등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국가들로부터 상품을 소싱함으로써, 소비자들로 하여금 동일한 품질의 상품을 국내산으로 구입할 때보다 3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해외상품 소싱에 임하고 있습니까? 해외 소싱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지원(支援)이 부족해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이마트의 해외 소싱 상품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특히 직소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게다가 상품 소싱처는 중국에 편중돼 있어 현재 우리의 소싱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신세계가 가격혁명을 통해 물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개략적인 방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가격혁명에 대해 새롭게 강조하는 이유는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소비자 이익의 기본이며, 앞으로도 변할 수 없는 유통업체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마트는 생활 물가와 가장 밀접한 상품을 취급하고 있는 만큼 과감한 발상전환을 통해 반드시 가격혁명을 이뤄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에 대해서는 상품의 가격과 함께 품질 및 안전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격혁명을 통한 소비자 이익 경영’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아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부군으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아버지다. 1939년생으로 경기고,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6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0여 년간 삼성전자부품 부회장, 삼성물산 부회장, 삼성항공 부회장, 삼성종합화학 부회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97년 신세계가 삼성에서 공식 분리되자 조선호텔 회장을 맡으면서 삼성을 떠났다. 정 명예회장은 77년 삼성전자 이사 재직 때 미국 HP사와 손잡고 HP사업부를 시작한 데 이어 84년 삼성전자 사장 시절에는 삼성HP를 설립, 삼성전자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런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세계가 선진 유통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화두를 제시해 왔다. 독서를 즐기는 학구파라 주위에서 “대학교수를 했으면 잘했을 것”이라는 말을 곧잘 듣곤 했다. 국내 경제잡지는 물론 미국, 일본의 경제신문도 정기 구독한다.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책은 임원들에게 보내고, 기사는 밑줄까지 쳐 읽어 보길 권한다.


이마트의 ‘가격혁명’ 선언


막강 브랜드 파워로 가격경쟁 주도

▶지난해 5월 22일 토종 유통기업 이마트가 월마트 코리아의 8250억원의 지분과 전국 16개 매장을 전량 인수함으로써 국내 할인점 시장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건 이제 제조업이 아니라 유통업이다.” 최근 발표한 이마트발 ‘가격혁명’은 이 말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이마트는 기존 제조업체 브랜드(NB·National Brand)보다 가격을 20~40%까지 낮추는 ‘가격혁명’을 선언했다. 자체 상품(PL·Private Label) 개발을 통해서다. 제조업체 브랜드와 품질은 같으면서 가격은 20~40% 저렴한 PL상품을 2006년 9.7% (9200억원)에서 오는 2010년 23%(2조4000억원), 2012년에는 25%, 2017년엔 최대 30%까지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이마트는 지난 18일 전국 107개 점포에 신PL상품을 동시에 출시했다. 새로운 PL상품은 청과·야채에서부터 가전·생활용품에 이르는 총 6개 브랜드로 3000여 품목이다. 특히 이마트는 PL상품을 만드는 총 457개의 협력회사와 업계 최초로 원가 구성을 전부 공유하고 상호 간의 적정마진을 합의해 상품 가격을 결정했다. 상품의 제조단계부터 참가해 가격 거품을 제거하고 최적의 소비자 가격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다. 이마트가 20% 이상 가격 거품을 제거할 수 있는 요인은 PL상품을 통해 상품 가격에 반영되는 유통 비용, 브랜드 홍보 및 마케팅 비용, 상품관리 및 물류비 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올해 말 ‘신상품개발본부’라는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고 전문인력도 대폭 보강해 가격혁명을 주도할 소싱 상품과 PL상품 등 신규 상품개발을 전담하게 할 계획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연구원은 “경쟁력 갖춘 PL상품을 늘리려는 노력은 유통업체들의 오랜 이슈였다”며 “이마트는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충성 고객을 유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라도 자체 상품 개발을 꾸준히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마트에 상품을 납품하는 일부 제조업체는 이마트발 가격혁명에 적지 않은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가격 인하에 대한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A 중소업체는 “이마트에서 주장하는 물류비와 광고비를 줄이려면 이마트와 손잡고 PL상품을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부단한 품질 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자체 브랜드를 포기하고 거대 유통업체의 OEM 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중소 제조업체가 당면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마트의 가격혁명 선언은 동종업계인 할인점뿐만 아니라 제조업체에도 커다란 파장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선봉에 선 정용진 부회장


“이마트 PL상품은 달라야 한다”

▶205년 8월 신세계 본점 재개발 행사에 참석한 정용진 부회장(맨 우측).

“요즘 관심을 갖는 분야는 이마트 PL이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 부회장도 이마트의 ‘가격혁명’을 위해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준비해 왔다. 신세계 측에서는 이마트 ‘가격혁명’은 정재은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생각해 온 아이디어며 정용진 부회장은 ‘관심’만 표할 뿐 이번 가격혁명에 큰 관여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 부회장 역시 ‘가격혁명’을 앞으로 신세계가 끌고 나갈 최대 화두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수년간 영국의 테스코나 믹국의 월마트 같은 초일류 유통사들을 방문해 공부해 왔다. 지난 10월 9일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이마트 중소기업 상품 박람회장을 찾아 직접 먹어보고 만져보며 PL 협력사들의 상품을 꼼꼼히 살피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선진국 유통업체를 다녀보면 유통업체마다 상품이 다르다. 이것이 모두 PL상품 때문이다. 각 유통업체가 그들만의 상품으로 승부한다. 그러나 우리 이마트와 동네 수퍼를 비교하면 중복 상품이 거의 85%나 된다. 이마트로 고객을 모으려면 이마트만의 우수한 상품이 더욱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상하이 7개, 톈진 2개 등 이마트의 공격적인 중국 출점 직후에도 PL상품 생산 확장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이마트가 중국시장에서 선진 유통업체와 경쟁해 이기려면 지금의 이마트 PL상품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것. 신세계 후계자인 정 부회장 역시 아버지 정재은 명예회장이 던진 ‘가격혁명’ 화두를 신세계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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