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눈 높이 내치에 유연한 외교 기대
[ISSUE] 눈 높이 내치에 유연한 외교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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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핀 꽃이 향기도 짙고 오래 간다. 53세에 첫 국회의원 당선, 71세에 권력의 정상에 오른 늦깎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아버지 다케오 전 총리(1976년 12월 24일~78년 12월 7일 재임)와 같은 나이에 총리에 오르며 일본 정치 사상 첫 부자 총리의 기록을 세웠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17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에서 익힌 ‘안정과 협조’의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후쿠다 정권 출범에 맞춰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이 지난 9월 25일에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면 내각 지지율은 59%로 아베 내각의 8월 말 조사 때보다 18%포인트 올랐다. 발족 시점에서 따지면 고이즈미(80%), 아베(71%), 호소카와(70%) 내각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내각 지지율은 남성이 54%, 여성이 62%, 연령별로는 전 연대에 걸쳐 5할을 넘고 특히 70세 이상이 71%로 높다. 가장 큰 지지 이유는 안정감이 있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성격은 온화, 정책은 온건’이란 한 마디로 그를 평가했다. 일본 여론도 그가 참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가 돼버려 사사건건 제동이 걸리고 있는 꽉 막힌 정국을 뚫어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가 펼칠 조정형, 협조노선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임 아베 총리와 같이 헌법 개정을 통한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피’, ‘아름다운 나라’ 같은 높은 목표를 잡고 돌진하는 게 아니라 후쿠다는 눈앞의 과제를 착실히 추진하는 견실파이기 때문이다. 한때 일본 정치판의 책사로 통했던 다나카 슈세이 전 경제기획청 장관은 후쿠다가 평판대로 총리가 됨으로써 자민당이 위기를 넘기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논평했다. 토론을 거듭하면서 합의를 얻어내고 반대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후쿠다의 정치수법을 높이 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한 정치반동으로 나왔다는 강점과 함께 조신한 성품에 실점이 적을 것이란 전망도 했다. 다만 후쿠다의 지지 기반이 오래된 자민당인 데 반해 고이즈미와 아베를 탄생시킨 것은 여론이라는 점이 걸리는 대목이라고 다나카는 지적했다.
재계 본류에서 ‘후쿠다 대망론’ 나와 후쿠다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10월 12일 TV에 나와 “후쿠다가 지금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역사상 없었던 아베 전 총리의 돌발 사임에 대해 각 당과 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지금은 몸을 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페이스대로 열심히 나가면 된다”고 응원사격을 가했다. 지난해 9월 고이즈미 총리가 임기를 끝내고 후임 인선을 할 때 그는 은근히 후쿠다를 밀었으나 후쿠다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젊은 아베가 국민의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내가 나갈 이유가 없다. 지금은 아베가 하는 게 여러 모로 낫다”고 후쿠다는 거절 이유를 밝혔다. 이것이 오히려 모리는 물론이고 자민당 내에서 후쿠다의 인간성을 한층 높게 평가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도쿄(東京)에서 모리를 만났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모리와의 대화를 전해줬다.
박 회장 : 지금 한·일 관계와 동북아 정세를 생각할 때 당연히 후쿠다를 총리에 앉혀야지 왜 가만히 있느냐?
모리 전 수상 :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은 후쿠다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후쿠다 총리는 이제 정권의 청사진이 되는 ‘후쿠다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 10월 5일 국회 첫 연설에서 스스로 ‘배수진을 친 내각’이라고 밝힌 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목을 끌고 있다. 우선 후쿠다의 등장으로 변화될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보자. 최근 니혼게이자이와 월간 분게이주(文藝春秋·2007년 11월호)에 따르면 정권을 내던진 아베에게서 후쿠다 총리로의 교대는 경제계의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아베 총리와 그를 밀어주던 경제인과의 최후의 만찬은 9월 5일 오쿠라 호텔에서 있었다. 가쓰오 쓰네히사 도쿄전력 사장, 사이토 히로시 미즈호 코퍼레이트은행 총재 등과의 석식 연구회다. 이들은 아베 총리의 후견 경제인들의 모임 ‘사계회(四季會)’의 멤버다. 그 1주일 후인 9월 13일 전날의 아베 총리의 사의표명을 받고 후쿠다 씨와 재계인이 의견을 교환하는 ‘후쿠다 씨를 둘러싼 모임’이 시내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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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의 핵심은 지역격차 해소 후쿠다 정권 하에서는 사계회의 발언력이 저하되는 대신 재계 본류의 ‘후쿠다 씨를 둘러싼 모임’의 발언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총리 교대에서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경제에 약한 아베의 가정교사역을 맡았던 우시오 지로 우시오전기 회장이다. 아베가 부친 신타로의 비서관이었을 때부터 상담역을 했다. 우시오 회장의 장녀가 아베 형의 부인이다. 고이즈미 정권시대에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위원이었던 우시오는 아베 정권에서는 뒤로 물러나 있었지만 항상 그의 뒤에 있었다. 정부세제조사회 회장으로 고사이 유타카 일본경제연구센터 특별고문을 소개시켜준 것도 우시오 회장이다. 주식시장에선 우시오전기 주식이 아베주라며 한때 흔들렸다. 그러나 우시오 회장의 재계 파이프역은 후쿠다 정권에서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부친 다케오 총리의 비서관으로 일할 때부터 30년간 만남이 있었고 후쿠다가 첫 출마했을 때 지방까지 내려가 응원연설을 하기도 했다. 고이즈미와 아베 정권에서의 경제정책은 총리가 주재하는 ‘경제재정자문위원회’가 주도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다케나카 헤이조라는 게이오대 교수 출신의 경제학자를 선두에 내세워 5년 내내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이 개혁정책은 다케나카가 바뀌었지만 아베 정권에서도 유지됐다. 당 주도에서 관저 주도로 정책을 운영하겠다는 고이즈미의 의지를 실현하는 기구가 바로 경제재정자문위원회였다. 그 멤버에 재계총수 일부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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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동맹 토대 위에 아시아 중시 외교 후쿠다 외교는 ‘아시아 중시’가 돋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외국인으로는 미국의 하워드 베이커 전 상원의원,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와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 등 주요국의 주일본 대사 경험자들과 굵은 파이프를 갖고 있다. 하워드 베이커는 미 상원의원을 18년간 지낸 후 변호사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을 거쳐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주일 대사를 지냈다. 재임 중 관방장관이었던 후쿠다와는 ‘100회 이상 만났다’고 한다. 후쿠다가 지난해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테네시주의 자택으로 초대할 정도로 가깝다. 현재 81세다. 그는 후쿠다 정권의 등장으로 미·일 동맹 중심의 외교가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외교의 기본 방침은 미겴?양국의 ‘특별한 관계’ 속에 안보와 경제의 양면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커는 후쿠다에 대해 “그는 경험을 쌓은 자민당의 리더다. 자민당의 지지를 회복시킬 것으로 판단한다. 과제에 대한 판단, 정책의 결단, 붙임성 있는 인간관계 등 모두가 높이 평가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외교에서는 중·일 조약을 체결했고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을 지지토록 하는 데 성공한 부친 다케오 전 총리의 노하우 힌트를 활용할 것 같다. 아시아 중시를 강조한 이른바 ‘후쿠다 독트린(77년 발표)’은 후쿠다 총리에겐 교훈거리다. 대북 관계의 변화는 아베 정권에서 밀려났던 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현 도쿄대 객원교수)의 재기용 여부를 눈여겨 봐야 한다. 그는 후쿠다 관방장관 시절 외무성 국장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두 차례 평양 방문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다나카는 북한과 중국 관계를 망친 아베의 ‘주장하는 외교’와 정반대 입장에 섰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다양성을 배려한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며 후쿠다 총리의 능동적이고 유연한 외교를 기대했다. 미국과 중국은 후쿠다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자국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일본 정부도 11월 21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담의 사정을 봐서 조속히 후쿠다 순방외교를 펼치겠다는 생각이다. 후쿠다 총리는 내치에선 국민의 눈높이로 정치와 행정을 펼치겠다고 한다. 개혁노선으로 더 벌어진 사회의 격차를 수정하면서 뒤틀린 정치를 바로 펴겠다는 각오다. 이런 상황에서 나카니시 히로시 교토대 교수의 지적은 매우 시사적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영국의 브라운 정권 탄생을 시작으로 올해부터 내년에 걸쳐 한국·대만·러시아·미국 등에서 정권교대가 예정돼 있다. 이들은 단순한 얼굴 바꾸기가 아니라 국제 시스템의 기저적인 변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발단이 된 세계 금융구조 취약성의 표면화와 포스트 교토의정서를 노린 각국의 줄다리기 등 앞으로 2~3년은 지금부터 20~30년의 국제 질서의 기본 골격을 결정하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내정에 휘둘리는 일본이 국제정치의 시계에서 사라질 위험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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