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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건설사 ‘부도 폭탄’ 북상한다

지방 건설사 ‘부도 폭탄’ 북상한다

▶지난 9월 세종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이에 따라 세종그랑시아 아파트 신축이 중단됐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 후폭풍의 영향으로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영국, 아일랜드 등 세계 곳곳의 집값이 추락하고 있으며,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도 보고서를 통해 7년 연속 활황을 누려왔던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최근 서울 강남권 집값이 평균 2~3%씩 떨어졌으며,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이 늘고 있다. 오제세(대통합신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부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더구나 일부 지방 건설업체들이 지속적으로 부도를 내자 일각에서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9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한 주택금융의 위험이 높아졌다”며 “2, 3금융권의 부실화에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PF대출이란 건설 시행사가 미래 현금흐름(분양대금)을 담보로 토지 매입자금이나 건설자금 등을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것을 의미한다. 대형 택지개발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 시행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출법이기도 하다. 9월 말 현재 국내 금융기관의 PF 규모는 80조5000억원(금융감독원)에 달한다. 이 중 34조2000억원은 은행 대출이며 12조4000억원은 저축은행이 빌려준 것이다. 나머지는 증권사 대출,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으로 발행됐다. PF 규모는 2005년 하반기부터 급속도로 증가했다. 2005년 말 5조8000억원가량이었던 게 2006년 6월 45조원, 올 6월에는 69조9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올 9월까지 3개월 동안에만 10조원가량이 늘었다. 문제는 대출 액수의 증가가 아니다. 시행사의 연체율이 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하다. 다시 말하면 아파트 개발을 위해 돈을 빌린 시행사와 시공사가 돈을 제때 갚지 못해 금융기관까지 연쇄 부실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연체율 증가는 PF의 부실을 발생시키며, PF의 부실은 한국판 서브프라임을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인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3개월 동안 PF 10조 증가
2005년 말까지만 해도 연체율(은행권 종합)은 0.25%에 머물렀다. 2005년 이전에는 0.2%대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2006년 6월 연체율은 0.35%, 올 8월 말에는 0.49%로 상승하고 있다. 2년도 안 된 사이에 2배가량 뛴 셈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PF 대출금은 대부분 아파트 개발에 쓰이고 있다”며 “지방을 중심으로 아파트 미분양이 늘어났기 때문에 시행사들의 연체율이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2005년 말 미분양주택은 5만7000가구였다. 그러던 게 2006년 말에는 7만4000가구, 올 8월에는 9만2000가구로 꾸준히 늘어났다. 최근 한국건설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에는 미분양주택이 15만 가구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 미분양주택이 늘어난다는 것은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고, 이는 대출 연체로 이어진다. 대출 연체 급증으로 소규모 저축은행들의 위기설이 증폭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일반 은행 연체율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올 6월 현재 저축은행 PF 대출 연체율은 13%다. 지난해 같은 시기를 기준으로 볼 때 7.3%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지난해 6월 연체율은 5.7%다. 더구나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저축은행의 전체 대출액 중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절반(50.2%)을 넘는다. 얼마 전 하나금융그룹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국내 은행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판 서브프라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국내 부동산 PF 대출이 감독 당국의 규제를 벗어나 과잉 발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건설사의 재무 건전성 악화가 은행 자산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나금융그룹은 “국내 건설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사의 도산이 증가할 경우 금융기관이 지급 보증을 했던 ABS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 연장이 어려워지게 된다. 부동산 경기 위축이 계속된다면 건설업체 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전체 금융권의 자산 부실 위험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건설사 100개 이상 도산 예상
오제세 의원은 “부동산 PF 대출을 통해 아파트를 지은 시행사와 시공사의 자금 사정은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시행사와 시공사가 도산할 경우, 이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준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분양 증가→시행사 부도→시공사 부도→대출 부실→금융 위기로 연결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16일 하루 동안 지방 중소 건설업체 세 곳이 부도를 냈다. KT건설(충남), 거림건설(전남), 효명건설(인천) 등 여러 곳에서 건설사들이 쓰러졌다. 이들 업체는 지역에서 비교적 건실한 업체로 평가 받았던 기업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세 기업이 도산한 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부동산 PF가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들어 시공 능력 200위 안에 드는 한승종합건설, 신일, 세종, 동도도 비슷한 이유로 부도를 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올해는 지난해(106개)보다 많은 업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우려가 커지자 일각에서는 정부와 감독 당국의 대책 마련과 부동산 PF 대출의 철저한 감독을 촉구하고 있다. 강민석 메리츠증권 부동산금융연구소 박사는 “현재 부동산 PF 구조는 시행사와 시공사에만 위험이 집중돼 있다”며 “사업 참여자들이 이를 분담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주현 교수는 “부동산 PF 대출을 평가할 때 시공사 신용등급을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돈을 빌려줘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현 단계에서는 건설사 인수합병이나 미분양 물량의 적절한 소화대책을 세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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