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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하던 ‘부자 시대’는 저문다

군림하던 ‘부자 시대’는 저문다

▶2015년이면 변호사 간판은 두 배로 늘어난다.

지난 2년간 로스쿨 정원을 놓고 ‘변호사-대학-정부’가 벌인 논쟁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밥그릇 싸움’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변호사 진영이 줄곧 주장한 대로 ‘변호사가 늘어난다고 법률 서비스가 향상되고 가격(수임료)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게 진실이라면, 로스쿨 정원이 1000명이든 2000명, 3000명이든 숫자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이해관계자 간 합의와 상관없이 로스쿨 정원은 2000명으로 결론 났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 결정이 법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법률 서비스 시장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유추해볼 때다. 과연 법률시장은 어떻게 변화될까?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내려간다.’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예외는 있다. 이를테면 최근 기름값이 그렇다. 산유국이 생산량을 늘려도 가격은 내리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이고 실제 그렇다. 왜? ‘수요-공급’에 관계없이 투기자본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법률시장 역시 이런 예외시장이라고 주장한다. 공급이 늘어난다고(변호사 수 증가) 수임료가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근거는 이렇다. 비정형적이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법률 서비스 시장에서는 다른 용역 서비스와 달리 공급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법률시장은 수요-공급원리 적용 안 되나
과연 그럴까? 시계추를 7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0년 국내 변호사 수는 4699명이었다. 현재는 9169명. 거의 두 배가 늘었다. 사시합격생이 매년 1000명씩 배출되면서 한 해 700여 명씩 변호사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송 변호사 중심의 국내 법률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양극화’다. 법조계가 추정하는 법률시장 규모는 대략 1조4000억원. 이를 현직 변호사 수로 나누면 1인당 1억6000만원 정도 된다. 하지만 이는 산술적 계산일 뿐이다.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7년 전 국내 개인변호사와 법무법인·합동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비율은 62대 38 정도였다. 현재는 거의 50대 50이다. 이 중 6대 대형 로펌(김&장, 태평양, 광장, 화우, 세종, 율촌)이 시장의 절반(업계 추정 7200억원)을 가져간다. 전체 변호사의 10%가량이 전체 법률시장 매출의 50% 정도를 가져가는 것이다. 중소형 로펌(합동법률사무소 포함)과 개인변호사가 나머지 시장을 절반씩 차지한다. 특히 개인변호사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서울시변호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진 휴업한 변호사는 173명. 올해는 2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냉정하게 바라볼 대목은 있다. 서울 소재 로펌 수가 2002년 135개에서 올해 228개로 늘어났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변호사들이 간판을 내리고 법무법인이나 합동법률사무소 형태로 재조직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민간 소송 업무 위주의 개인변호사 시장이 위기에 빠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서울 지역 개인변호사 1인당 평균 사건 수임건수는 30여 건 안팎”이라며 “그나마 매년 줄고 있어 300만원 미만의 수임료를 받는 소액 개인 송무마저 연 20건도 수임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많다”고 말했다. 수임료도 일부 하락 추세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변호사 업계에서는 공인 수임료 가격을 경력 변호사는 500만~1000만원, 새내기 변호사는 300만~500만원 정도라고 얘기한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김도현 동국대 법대 교수는 “소송금액이 2000만원 이하인 소액 민·형사 사건의 경우 변호사 대리율이 예전에는 2% 안팎이었는데 2006년에는 12%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1심 민사 사건을 변호사가 맡는 대리율 역시 2002년 7%대에서 최근에는 18%대로 올라섰다. 이런 현상은 최근 2~3년 사이 특히 두드러졌다. 이는 사시 합격 정원이 1000명에 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나온 변호사가 대폭 늘어난 것이 2004년부터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 변호사 시장에는 ‘수요-공급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변호사들은 계속 우는 소리(?)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로스쿨 정원 2000명은 많아 보일 수도 있다. 우선 공급량(변호사 수)으로 따져보자. 2009년 로스쿨이 개교하면 2012년에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률을 70%로 봤을 때 1400명이 배출된다. 합격률을 80%로 잡으면 1600명이다. 여기에 2013년까지 시행될 사법시험에서도, 비록 감축 논의가 있지만 매년 1000명의 합격자가 나온다. 이를 합하면 2012년에 법률시장에 배출되는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 최하 합격자 1400명에 사시합격자 중 판·검사 임용자 및 군복무자 300명을 제외한 700명을 합해 2100명이 된다. 이런 계산이면 마지막 사법시험 합격생들이 사법연수원을 수료(2년)하는 2015년까지 4년간 배출되는 변호사만 대략 8400~1만 명이다. 여기에 한·미 FTA 협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법률시장이 개방돼 외국계 로펌까지 국내로 들어오면 그야말로 ‘법률시장 대란’이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현재 변호사 수는 7년 전보다 2배 늘었다. 그 사이 ‘가난한 변호사’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1인당(사업자 기준) 평균 연 수입은 줄지 않았다. 2004년 변호사 연봉은 3억1700만원, 지난해에는 3억5000만원이었다. 이마저도 국세청 자료일 뿐이다. 본지가 입수한 국가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국내 변호사 1인당 민사 사건은 189건 발생했다. 미국은 15.6건, 영국은 13.8건, 일본은 24.3건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발생하는 소송사건은 많지만 이와 관련된 변호사 숫자는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지난 7년간 변호사가 두 배나 늘었는데,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수임료가 대폭 내려가지 않은 것은 여전히 법률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2015년 4년간 1만 명 배출
하지만 앞으론 얘기가 다르다. 7년 후인 2014년까지 쏟아질 변호사는 9000명을 넘게 된다. 누적 변호사가 2만여 명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외국계 변호사도 국내에서 영업이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법률시장이 그만큼 커질 가능성은 작다. 시장 파이가 증가하는 속도보다 공급자 증가 속도가 빠르면 당연히 경쟁은 치열해지고, 법률 서비스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보다 높아진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 공급량도 적다고 주장한다. 김민배 인하대 교수는 “변호사 1인당 인구수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변호사는 16만7000명, 영국 수준에 근접하려면 8만여 명”이라고 밝혔다. 법률 서비스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변호사 숫자가 빈약하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예측 가능한 법률시장 변화 시나리오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법률시장이 더욱 양극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로펌은 점차 대형화·전문화할 것이 뻔하다. 로펌 간 M&A도 활발해질 것이다. 외국계 로펌이 국내 시장, 특히 대기업 송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개인변호사들은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된다. 외국계 로펌이 국내 대기업 소송업무를 장악하면, 국내 대형 로펌들은 중소형 로펌시장을 차지하려 할 것이고, 중소형 로펌은 개인변호사들의 영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개인변호사는 좀 더 세분화·특화하면서 틈새시장을 노리고 가격경쟁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법무사나 노무사, 변리사 등 법률 방계시장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와 함께 개업보다는 기업이나 정부기관, 공공기관을 선택하는 변호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법연수원 수료식 모습.

이미 법률시장은 ‘살아남기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소속 변호사가 100명을 넘는 대형 로펌은 좀 더 덩치를 키우며 외국계 로펌의 진격에 대비하고 있다. 20~100명 사이의 중견 로펌은 특정 분야에 강점을 키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앞세워 차별화된 시장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개업 변호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법무법인을 설립하거나, 의뢰인 밀착 서비스, 수임료 인하 등으로 법률 서비스 시장의 파고에 대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로스쿨과 사법시험 합격자가 동시에 배출되는 2015년까지 법률시장은 ‘격변’이 불가피하다. 그 사이 상당수 변호사는 퇴출당하거나 ‘백수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로스쿨 정원이 늘어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던 변호사 진영도 이제는 의뢰인 위에 군림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서비스를 하는 비즈니스맨’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양극화와 ‘파레토의 법칙(20 대 80 시장)’이 심화할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젠 취업 걱정까지…


사법연수원에 ‘진로정보센터’도 생겨
지난 8월 사법연수원 내에 진로정보센터가 문을 열었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곳이다. 사시에 합격한 예비 법조인의 취업을 돕는다? 이 자체가 법률시장 변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진로정보센터 홈페이지에는 각종 법무법인이 낸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다. 11월 26일에는 진로정보센터 주최로 연수원생 대상 취업박람회가 열린다. 매년 취업설명회는 있었지만 규모를 늘려 박람회 형식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3일 간 열릴 취업박람회에는 삼성·LG전자·대한항공·한화 등 대기업과 화우·율촌·서정 등 법무법인, 국방부·노동부·정부 법무공단 등 정부기관 24곳이 참여할 예정이다. 판·검사, 로펌, 개업이 아닌 비법조계로 진출하는 사법연수원생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사법연수원 수료생(29기, 사시 39회) 중 비법조계로 진출한 인원은 37명이었다. 이후 2002년에는 55명, 사시 합격생이 대폭 늘어난 2004년에는 98명에 달했다.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료생 975명 중 판사(89명), 검사(88명), 로펌(273명), 개업(204명) 등 654명이 법조계로 진출했다. 반면 군복무(180명)를 제외하고 비법조계로 간 연수원생은 141명(정부기관 74명, 기업 46명, 사회단체 10명, 기타 11명)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기업 변호사’ 시장이다. 기업은 변호사 시장에서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불린다. 지난해 사업연수원을 수료한 975명 중 46명이 기업을 택했지만, 해마다 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국내 100대 기업 중 절반 가까이는 사내 변호사가 없는 실정이지만, 앞으로 수요는 대폭 늘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법률 리스크’가 증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상장기업의 피소 건수는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게다가 증권집단소송제, 소비자 단체소송, 제조물책임법 제정 등 기업 관련 소송제도가 급증하고 있어 기업이 법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양세영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기업경영 활성화를 위한 법률 서비스 개선은 기업의 법률 리스크 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기업 파트너로서 변호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불거진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폭로 사건’으로 사내 변호사에 대한 기업 경영진의 ‘부정적 인식’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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