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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숨은 성장엔진

중국의 숨은 성장엔진

중국에서 인건비 상승으로 타격 받는 기업들이 늘어난다. 최근 왕지안핑은 중국 동부 해안지대에 있는 자신의 공장과 기계설비를 서쪽으로 옮겼다. 그곳은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해 물가 상승과 치열한 경쟁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경쟁업체들과 달리 왕지안핑은 중국 국경에서 멈추지 않았다. 훨씬 더 먼 나이지리아까지 진출했다. 인구 4400만 명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한 저장(浙江)성 출신의 제화업자인 왕은 2004년 이래 나이지리아에서 왕성하게 무역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사업이 아주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그가 경영하는 하산 신발 제조업체는 100여 개국에 신발을 수출한다. “지금처럼 잘됐던 적이 없다.” 저렴한 인건비의 농민 노동력이 무한정 공급되는 나이지리아에서 아웃소싱을 개척하는 일은 저장성 토박이에게 맡길 일이다. 저장성은 보다 효율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개척하는 일에서 중국의 어느 지역보다 앞선다. 1980년대 말 중국이 경제개혁에 적응됐을 무렵, 저장성은 이미 해외에 투자했으며, 중앙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음성적으로) 비상장기업들의 주식을 거래했다. 저장성은 한때 국가의 외면을 받았지만, 지금은 상향적 개발 모형과 대담무쌍한 해외 진출로 경제전문가들의 찬사를 받는다. 또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주목 받는다. 최근 몇 달간 저장성 투자자들은 거품투성이인 중국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한 뒤 그 돈으로 기록적으로 많은 서방 기업의 지분을 사들였다. 그리고 단순 소비재 제조에서 벗어나 정교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경제계의 먹이사슬에서 위쪽으로 이동 중이다. 지난 10월 저장성 당서기 출신의 시진핑(習近平)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사실상 중국의 차세대 최고 지도자로 내정됐다. 그는 중국 전체가 저장성의 개발 모형을 본받으라고 권장한다. 사실 저장성의 경제 발전은 사전 계획에 따른 게 아니라 생존 노력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저장성은 서쪽으론 산악지대, 동쪽으론 동중국해에 둘러싸인 고립 지역이다. 그리고 냉전시절에는 미국이 침공할 경우 최전선으로 간주돼 중앙정부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자원 부족에 시달렸다. 상업 중심지인 원저우(溫州)의 인민 정부 경제연구소 마진룽 소장은 “우리는 저장성과 해외의 민간 경제 분야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1970년대 말에는 중국에 훌륭한 사업감각을 지닌 성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리 저장성은 늘 사업감각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대부분 지역은 관료주의적인 국영 기업들이 경제를 주도한다. 반면 저장성은 경제 생산량의 약 75%와 세입의 절반 이상이 사기업에서 나온다. 저장성 경제를 주도하는 중소기업들은 복잡한 지하 금융망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채무 불이행 비율은 제로에 가깝다(채무자들은 이웃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역설적이게도 저장성의 지하 금융 시스템은 기업들의 재무상태를 다른 성들보다 훨씬 더 개방적으로 만들었다. 대체로 다른 성에서는 대출이 투명도 낮은 국영은행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저장성은 지금도 단추·양말·염료·섬유 제품을 만들어 세계에 공급하는 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첨단기술 산업 쪽으로도 나아간다. 저장성은 아직 실리콘 밸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저장성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는 2005년에 비해 47% 늘었다. 또 첨단기술 회사들의 자산가치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6% 증가했다. 최근 15억 달러 규모의 기업공개를 했던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는 1999년 저장성에서 설립됐다. 저장성은 중앙정부의 간섭을 안 받은 덕분에 국부(國富)의 상당 부분을 흡수했다. 인구 면에서는 중국의 33개 성·자치구 중에서 11위지만, 전체 교역량에서는 4위다. 1978년 이래 저장성의 경제는 국가 전체의 성장률보다 3%포인트 높은 연평균 13% 이상씩 성장해 왔다. 올해는 14.7% 성장이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원저우의 은행 예금액은 최근 외지로부터의 송금이 많아지면서 크게 늘어났다. 저장성 출신들이 베이징과 상하이의 과열된 주식시장에서 투자금을 빼내 고향으로 보내는 돈인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저장성에서도 빠져나간다. 원저우의 의류 제조업자인 왕지는 지난해 회사 이윤폭이 10%에서 제로로 떨어졌다면서 “이윤이 나지 않으면 조만간 전체 생산라인을 재정비하거나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우려했다. 임금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저장성 기업인들은 벌써부터 공장을 남부의 장시(江西)성이나 중부의 쓰촨(四川)성 같은 오지로 이전했다. 혹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같은 외국으로 옮기기도 한다. 저장성의 해외 직접투자는 2005년 이래 두 배로 늘어나 10억 달러가 됐다. 중국의 모든 성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성이다. “우리는 해외 진출의 선봉에 서 왔다. 저장성이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중국의 나머지 지역이 모두 따라온다”고 왕지는 말했다. 저장성 기업인들은 또 서방세계에서도 인수합병을 추진한다. 아시아는 저장성의 해외 투자에서 약 40%를 차지하는데, 유럽과 북미는 각각 37%와 27%다. 지난해 항저우 기계 공구 집단공사는 독일의 유명한 첨단 연삭기 제조업체인 ‘aba Z&B 슐라이프마쉬넨 GmbH’의 지분 60%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저장성의 다른 많은 기업인처럼 항저우 집단공사는 그 독일 기업의 R&D 능력을 국내외에서 활용할 생각이다. 또 지난해 9월 저장 화예 로지스틱스라는 회사는 두바이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걸프 지역의 떠오르는 물류 집산지인 두바이에서 투자기회를 잡으려는 노력이다. 아웃소싱과 인수합병의 중심지로서 저장성의 성공은 야심 있는 정치인들에게도 소중한 자산이 됐다. 시진핑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권력 계승자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 데는 저장성 당서기 시절의 치적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저장성의 풀뿌리 자유시장이 번창하는 데 그가 관여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외면 속에 번영했던 저장성이 이제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번영의 귀감이 됐다. 그리고 시진핑의 격려 속에 저장성은 공격적인 서방공정과 대외 확장에 나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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