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외국인들 읽을거리가 없다
앞으로 서울 시내 가판대에 새 신문 하나가 얼굴을 내밀지 모른다. 11월 28일 갓 창간된 아주일보다. 중국어 조간신문으로 발행되는 아주일보는 국내 일간지 출신 언론인들이 모여 만든다. 곽영길 대표이사는 아시아경제신문과 파이낸셜뉴스 대표이사를 지냈고, 최필규 편집국장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에는 중국인 46만 명이 머무른다. 매주 항공기 804편이 한국의 6개 도시와 중국의 30여 개 도시를 운항하며 매년 480만 명을 실어 나른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도 줄을 섰다. 아주일보는 이들을 겨냥했다. 최 편집국장은 “인구 4800만 명인 한국에 중앙의 종합일간지만 10개, 지방에도 수십 개의 일간지가 나온다. 이제 중국어 일간지가 자리 잡을 때도 됐다”고 말했다. 아주일보 창간은 국내 체류 외국인 100만 명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올 9월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101만8000명이다. 이 중 2003년 23만7000명이던 중국인(중국 국적 조선족 포함)은 올 9월 말 현재 46만3000명으로 갑절로 늘었다. 전체 외국인의 거의 절반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중국어 일간지 발행이 그리 만만한 사업은 아니다. 1964년 문화관광부에 일간지로 등록한 한중일보가 올 상반기 재정난을 못 이기고 끝내 발행을 중단했다. 한중일보는 2만5000여 대만 출신 화교를 대상으로 배포되던 일간지로 국내 유일의 중국어 일간지였다. 하지만 화교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인터넷 보급으로 대만 뉴스를 온라인으로 접하는 독자가 증가하면서 더 이상 설 곳을 찾지 못하게 됐다. 최근까지 한중일보 사장을 지낸 유국흥씨는 중국어 일간지 사업의 어려움을 잘 안다. 그는 독자와 배달망 확보 모두 어렵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광고 유치라고 강조했다. “국내 체류 중국인이 아무리 증가한다 한들, 광고를 유치하지 못하거나 광고효과를 못 내면 순항을 장담키 어렵다.” 중국인뿐 아니라 최근 여러 나라 출신의 국내 체류 외국인이 증가해 왔다. 2002년부터 올 9월 말까지 베트남인(2만4908명→6만7117명), 필리핀인(3만2451명→5만1052명), 태국인(2만7545명→4만3945명), 몽골인(1만6824명→3만1713명) 등 다른 아시아계 근로자도 급증했다. 반면 미국인(10만6390명→11만5204명)과 일본인(4만2504명→3만7254명)은 답보상태거나 줄어드는 추세다. 국내 외국어 미디어 시장은 외국인 증감 추이와 따로 돌아간다. 영어와 일본어가 중심이다. 한국잡지협회는 국내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격월간지, 계간지, 반년간지 등을 발행기관으로부터 납본 받는다. 11월 현재 이 기관에 납본되는 외국어 잡지는 총 87종이라고 이대규 과장은 밝혔다. 이 중 중국어 잡지 5종과 다개국어 잡지 1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영어와 일본어 잡지다. 주간지나 격주간지를 납본 받는 한국전문신문협회에 납본되는 외국어 잡지는 7종이다. 영어가 6종이고, 중국어가 1종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국내 케이블 채널과 전 세계 8개 위성을 통해 송출되는 아리랑 TV는 영어 전용이다. 물론 중동 지역에 위성으로 방송되는 매일 5시간 분량은 아랍어로 나가지만 국내에서는 100% 영어로 나간다. 내년 2월부터는 순차적으로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말레이어 자막을 해당 국가에 내보내지만 국내 TV에서는 그 자막을 보지 못한다. 비교적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CNN, BBC World, AFN, Star TV 등도 외국에서 만드는 영어전용 방송이다. 아리랑 TV 홍보심의팀 최정희 차장은 “국내에서 종합 편성되는 외국어 방송은 아리랑 TV가 유일하며, 국내 시청자에게는 영어로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외국어 미디어가 영어 등 몇몇 언어에 국한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동남아 출신들은 대부분 일터에 얽매여 있거나 결혼 이주 여성이어서 구매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최현모 사무처장은 분석했다. 독자적으로 매체를 발행할 만한 여건이나 주도 세력 형성이 안 된다는 말이다. 또 미국, 중국, 일본과 달리 여타 아시아권 국가들은 한국과의 경제교류 규모가 영세한 편이다. 최 처장은 “아시아권 국가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까닭에 매체 발행도 안 된다”고 말했다. 영어, 일어, 중국어 등 3개 국어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발행되는 외국어 미디어는 손에 꼽을 정도다. 현재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국가 언어로 정기간행물을 제공하는 기관은 3곳 정도다. 노동부가 사단법인 지구촌 사랑나눔에 위탁해 운영하는 서울 가리봉동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자국어 소식지를 매월 무료로 발행한다. ‘Migrant OK’ 제하의 이 소식지는 한국어를 비롯해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10개국 언어로 4만 부를 찍는다. 노동부가 지원하는 안산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도 12월 외국어 소식지를 발간하기 시작한다. 소식지 제호는 ‘이주’이며, 2000부를 계간으로 발행할 계획이다. 9개국 언어로 된 소식지를 한데 묶어 총 80쪽 분량으로 배포한다. 정부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행하는 기관도 있다. NGO 단체인 ‘부산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은 1997년부터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외국어 신문 ‘ASIAN WORKERS NEWS’를 발행해 왔다. 영어는 격주로 1400부,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는 매월 한 번 각 400부씩 찍어낸다. 파키스탄어, 스리랑카어, 중국어 소식지는 부정기적으로 만든다. 용지와 인쇄 비용은 후원자로 나선 인쇄소에서 부담하고, 기사 작성과 번역은 자원봉사자 몫이다. 따라서 제작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우편요금은 구독자들이 미리 납입하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민간의 후원금으로 메운다. 이들 소식지는 변변한 정보 통로가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단비와 같다. 노동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소식지 발행기관을 모두 5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동부 외국인력고용팀 이문규 사무관은 “정부 지원 외국인 근로자 소식지 발행 기관을 현행 2곳에서 5곳으로 늘리는 방안을 기획예산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재외 한국인들의 한국어 매체 발행은 활발하기 그지없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한글로 발행되는 한인 신문과 소식지는 문화관광부 집계 결과 총 72개에 달했다. 미국의 경우 뉴욕(14개)과 LA(10)에만 24개, 중국 역시 상하이와 베이징에만도 18개에 달했다. 독일 7개, 영국 6개, 베트남 5개, 러시아 4개, 프랑스 3개 등 주요 국가에 골고루 퍼져 있다. 이처럼 외국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소식지를 만들어야 가장 이상적이다. 국내에서도 그런 시도가 있었다. 안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단체에 따르면 몇 년 전 이곳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고 자국어 소식지 발행을 추진했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주도 세력이 귀국하고 재정난에 직면하면서 사업이 흐지부지됐다.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자기네 소식에 얼마나 목말라 할까? 정밀한 통계 조사자료는 없지만 어림짐작은 가능하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내 MNTV는 2005년부터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인터넷 방송을 해 왔다. 중국어, 영어, 베트남어, 러시아어, 필리핀어 등 7개국 언어로 방송한다. 영상 뉴스는 매주 한 번 10분 안팎의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진다. 베트남어로 진행되는 영상 뉴스는 어떨 땐 클릭 수가 3000회 이상이다. 국내 체류 베트남인이 6만4000명임을 감안하면 시청률 5%대의 무시 못할 파급력이다. MNTV의 김현숙 팀장은 “베트남인들처럼 결속력이 강한 외국인일수록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국무총리 산하 외국인정책위원회가 지난 7월 작성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10여 년 후엔 국내 체류 외국인 300만 명 시대가 온다. 외국인정책위원회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10년 133만 명, 2020년 361만 명에 달한다고 예상했다. 이는 최근 5년 간 국내 체류 외국인 평균 증가율에다 미래에 예측되는 증가 혹은 감소 요인을 함께 고려해 가장 적게 잡은 규모다. 한국 인구는 2018년 4934만 명으로 정점에 오른 뒤 2020년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선다고 통계청은 추정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3년 후엔 남한 전체 인구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의 2%에서 7%까지 증가한다. 다가올 다문화 사회에 대비하자면 외국인들이 모국어로 유창하게 표현하고, 그들의 언어로 된 매체를 가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양대 다문화연구소 오경석 박사는 강조했다. 오 박사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늘어날수록 ‘언어의 민주주의’ 문제가 부각되게 마련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의 외국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소통하고 표현하려는 시대가 오게 마련인데 정부와 관련 NGO들이 어떤 대비책을 강구 중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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