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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 방지하는 한국의 전통 식단

불임 방지하는 한국의 전통 식단

한국도 불임 부부가 늘어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을 기준으로 불임 부부가 140만 쌍이었고, 기혼여성의 불임률이 13.5%로 나타났다. 2002년에는 10만6887명(여성 9만539명, 남성 1만6348명)이던 불임환자가 2006년에는 15만7652명(여성 13만3653명, 남성 2만3999명)으로 50%가량 증가했다. 최근 결혼하는 부부 열 쌍 중 두세 쌍은 불임으로 고통 받는다. 특히 요즘은 자궁의 기형, 나팔관 폐쇄 같은 눈에 보이는 구조적 결함보다 배란과 생리를 조절하는 기능의 조화가 깨져 생기는 ‘기능성’ 불임이 늘어났다. 이런 불임이 증가한 까닭은 한국인의 몸속에 불임 유전자가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다. 몸이 바뀌기 이전에 몸을 둘러싼 바깥 환경, 즉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자연 환경의 변화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사람 몸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음식이 20년 전에 비해 사뭇 달라졌다. 첫째, 공장에서 가공된 음식이 많아졌다. 대량 생산된 음식이 장기간 보존되면서 유통되려면 반드시 가공돼야 하며, 그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첨가될 수밖에 없다. 자연의 소산인 ‘식물’이 ‘식품’으로 바뀌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식품도 많아졌다. 둘째, 음식이 점점 달고 기름지게 변한다. 설탕과 유지의 소비량이 하염없이 늘어나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식, 튀겨낸 음식들의 인기가 수그러들 줄 모른다. 셋째, 식물과 동물의 생장 과정 역시 부자연스러워졌다. 식물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수퍼 농작물로 변신하고, 동물은 빨리 자라고 쉽게 살찌는 방식으로 사육된다. ‘더 싸게, 더 많이, 더 빨리’라는 자본주의 구호 아래, 우리의 음식은 점점 더 자연과 멀어진다. 많은 불임 여성이 “임신이 잘되려면 무엇을 먹어야 돼요? 무슨 차가 좋아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항상 “무엇을 먹는가보다 무엇을 먹지 않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해준다. 그럼 과연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 답은 저질 지방과 정제당이다. 저질 지방이란 포화지방산과 트랜스지방을 말한다. 동물에 들어있는 지방은 주로 포화지방산이며, 식물 지방 중에서도 라면이나 과자를 튀길 때 쓰는 야자유는 포화지방산이다. 또 튀김 요리에 쓰이는 쇼트닝 종류의 기름에는 트랜스지방이 잔뜩 들어 있다. 트랜스지방은 기름의 보존 상태를 용이하게 하려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지방으로,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기형 지방이다. 이러한 저질 지방들은 몸속에 들어와 염증성 열(熱)을 일으키고 몸 안의 정기(正氣), 즉 면역력, 자정능력 같은 바른 기운을 빼앗는다. 저질지방은 피를 탁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수태 능력을 끌어올리려면 이런 저질 지방을 멀리해야 한다. 그러나 오해는 말자. 지방이 결코 ‘공공의 적’은 아니다. 지방은 인간의 생명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영양소며, 여성호르몬의 중요한 원료가 된다. 경계해야 할 적은 ‘저질 지방’일 뿐이지 지방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은 반드시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더욱이 전통적인 한국의 식단은 서양에 비해 지방이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부족한 지방을 동물성 포화지방이나 유제품으로 채우면 곤란하다. 식물의 종자(콩, 깨, 견과류), 해조류, 그리고 생선에 많이 들어 있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여성호르몬의 생산이 활발해지고 피가 맑아지며, 몸 안에 건강한 온기(溫氣)가 돌게 된다. 일례로, 강남의 한 IT 회사에 근무하던 32세 기혼여성 김 모씨는 168㎝의 키에 몸무게가 48㎏에 불과했다. 그녀는 사회생활의 자신감을 얻으려고 지난 반년간 8㎏을 감량한 상태였다. 김씨는 지방을 다이어트의 ‘적’이라 여기고 일절 입에 대지 않으려 했고, 저칼로리 음식만으로 소식을 하려 애썼다. 결과적으로 뭇 여성이 부러워하는 가녀린 체격을 가졌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탄력 없이 늘어지고 칙칙한 피부에, 뼈가 얇은 ‘불건강’ 상태였다. 또 그런 몸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동안, 규칙적이었던 생리가 끊겼고 배란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약이 아니라 “보약이 되는 일상 음식”이 필요했다. 필자는 그녀에게 당장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적절한 지방 섭취와 충분한 영양식을 하길 권했다. 식탁이 회복되자 그녀의 체중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혈색과 피부가 좋아졌고, 스스로 느끼는 컨디션도 개선됐다. 이내 생리가 다시 규칙적으로 되어 필자를 만난 지 6개월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탄수화물은 흔히 필수 영양소로서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지만, 저질 지방만큼 경계해야 할 ‘나쁜’ 탄수화물도 있다. 바로 단순정제당이다. 정제당의 대표 격인 흰설탕은 아주 빠른 속도로 흡수된다. 빠른 속도로 흡수된 당분은 몸을 과열시키고 쉽게 지치게 만든다. 너무 빨리 쏟아져 들어온 당분을 처리하느라 인슐린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이 부산하게 움직여야 하고, 결국 호르몬 체계에 과부하가 걸려 균형을 잃기 쉽다. 흔히 생리불순, 배란불순, 불임 등의 문제가 생기면 여성호르몬만을 생각하나 우리 몸은 결코 각각의 기관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영향을 끼치는 단일 팀이다. 흰설탕은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 식물들은 탄수화물과 더불어 비타민, 미네랄 등의 미량 영양소를 모두 함유한 영양소 꾸러미다. 그러나 사람은 식물에서 섬유질, 비타민, 미네랄은 제거하고 당분만 쏙 뽑아내 정제당을 만들었고,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달고 부드러운 빵, 음료수, 아이스크림, 사탕, 과자, 초콜릿 등이 모두 대표적인 정제당 식품이며 그 외에도 많은 음식에 과도한 양의 설탕이 첨가된다(물론 앞 기사에서 언급했듯 고급 아이스크림의 유지방이 배란을 돕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스크림이 흡수가 빠른 당분과 인공 색소, 향료를 함유하기 때문에 굳이 찾아 먹을 필요는 없다). 이런 음식을 멀리하는 일이 임신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탄수화물 역시 지방처럼 사람이 힘을 내며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연료다. 따라서 빠르게 타버리는 종잇장 같은 단순정제당은 멀리하되, 천천히 오래 타는 연탄과 같은 탄수화물은 꼭 섭취해야 한다.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까지 풍부하게 함유된 음식이라면 금상첨화다. 통곡물(whole grain), 야채, 해조류가 여기 해당된다. 결국 불임 극복에는 전통적인 한국 식단이 최고다. 양질의 지방만 충분히 섭취하도록 주의하면 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식탁은 곡물을 주식으로 다양한 나물과 채소로 채워졌다. 특히 콩밥, 콩나물, 청국장, 두부, 콩자반, 콩떡, 콩국 등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콩은 빠질 수 없는 식재료다. 부족해지기 쉬운 지방과 단백질을 콩으로 보충한 선조들의 지혜였다. 또 나물을 무칠 때는 불포화지방산이 가득한 참기름과 들기름으로 영양의 조화를 맞췄다. 고기를 먹긴 해도, 닭고기는 푹 삶아 백숙으로, 돼지고기도 푹 삶아 김치와 함께, 소고기 역시 국에 넣어 푹 삶아 먹는 게 우리 음식문화다. 밥상을 차릴 때는 다양한 색깔과 열매, 줄기, 잎, 뿌리 등 여러 부위의 식재료로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노르스름한 현미에 검은콩이 들어간 밥, 빨간 토마토, 미강유(쌀겨에서 추출한 식용유로 필수 지방산과 비타민 E 함유)에 살짝 볶은 주황색 당근, 하얀 연근과 잘 담근 된장, 초록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열무김치, 깨를 뿌려 무친 고춧잎 나물, 보라색의 가지 나물, 바다의 미네랄을 머금은 쌈 다시마 몇 장, 그리고 꽁치조림 한 토막이다. 이런 식탁은 자연 안에 깃든 생명력을 흡수하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 한의학에는 자연과 사람이 서로 상응한다는 천인상응론(天人相應論)과 자연과 사람은 하나며,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는 천인합일론(天人合一論)이라는 기본 전제가 있다. 사람 몸은 끊임없이 자연과 호흡하면서 유기적으로 존재하므로, 사람에 의한 인공적인 먹거리 양산은 결국 자연계에 부조화를 초래한다. 자연이 가진 가장 큰 힘이 바로 생명력이다. 자연이 침해 당할 때 그 생명력도 침해 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몸이 조화와 균형을 회복해 생명을 재생산하는 자연의 일부가 되려면, 자연을 닮은 우리의 음식문화를 되찾는 게 우선이다. [필자는 한의학 박사로 MBC 라디오 동의보감 진행자를 지냈다. 현재 생활건강연구소장, 풀무원건강생활 고문을 맡고 있다(www.ihopebab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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