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쿠자도 세계화한다
일본 조직폭력배들의 활동상을 보고 싶다면 매년 11월 토리노이치 축제가 열리는 도쿄 신주쿠(新宿) 거리에 가보면 된다. 악명 높은 폭력조직 야쿠자 단원들이 그곳 홍등가의 점포 주인들로부터 ‘조공’을 징수하러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들은 다음 해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고 군말 없이 현금 뭉치를 건네준다. 최소한 수십 년 된 관행이다. 오늘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조폭들이 컴퓨터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 수금 현황을 추적하고 문자메시지로 통보한다는 사실이다. 신주쿠의 그런 장면이 시사하듯, 일본의 조폭은 아직도 건재하며, 그중 일부는 번창한다. 다년간의 경기침체와 강제적인 구조조정, 그리고 치열해진 국제 경쟁 때문에 변한 게 일본 기업들의 사업 방식만이 아니다. 일본의 폭력조직들도 시대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과거 일본 경제가 번창할 때, 조폭들의 활동은 비교적 단순했다. 도박, 보호비 갈취, 약간의 마약 밀매 등으로도 안락한 생활이 보장됐다. 그러나 요즘은 단속 법규가 강화되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으며, 국내 시장은 축소되는 추세다. 그래서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폭력배들만 살아남아 번창한다. 그렇지 못한 폭력배들은 점차 가난해지거나 아예 도태된다. 일본의 폭력조직을 분석한 탁월한 저서 ‘야쿠자: 일본의 범죄 지하세계(Yakuza: Japan’s Criminal Underworld)’의 공동저자인 데이비드 카플란은 “암흑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합법적 경제계의 상황과 비슷하다”며 “조폭들도 불량 채권을 정리하는 등 세계화해야 했다”고 말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수합병’이다. 외국의 평판과 달리,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전, 일본 경제의 상당 부분은 마치 파편 조각들 같았다. 이는 외부세계와의 경쟁으로부터 국내 기업들을 보호하려는 정부 정책의 유산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경기가 후퇴했다. 동시에 경제가 점차 외부에 개방되면서 선별과 흡수 과정이 시작됐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경쟁업체에 인수됐다. 매우 유사한 과정이 암흑가에서도 진행됐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최대 승리자는 야마구치-구미(山口組)라는 야쿠자 조직이다. 경시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는 조직폭력배가 약 8만5000명 있다(40년 전의 18만 명에 비해 줄었다). 그들 중 약 절반은 야마구치-구미파 혹은 이 폭력단과 제휴한 파벌 소속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조폭의 대부분은 다른 두 개의 야쿠자 조직에 속한다. 이런 변화는 여러 방면에서 압력을 받은 결과다. 일본의 조폭은 ‘거품 경제’ 시절에 비대해졌다. 조폭의 영향력 확대는 결국 90년대 초 당국의 집중적인 단속을 초래했다. 1992년의 입법으로 야쿠자들은 공개적으로 활동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경찰과의 원만한 관계도 끝장났다(전통적으로 경찰은 야쿠자가 보통 시민을 해치지 않는 한 그들의 특정 활동, 예컨대 도박을 묵인했었다). 경찰의 압박으로 군소 야쿠자 조직들은 사라지고, 가장 독창적이고 무자비한 조직만이 살아남았다. 그때 이후 야마구치-구미파는 근거지인 일본 서부 항구도시 고베로부터 도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조폭들 간의 전쟁이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1990년대의 경기 침체는 야쿠자와 연계된 건설회사들의 밥줄인 공공부문의 공사계약 건수도 급감시켰다. 그러나 좀 더 영리한 야쿠자들은 이미 파산절차 사업 같은 성장산업에 주력했다. 카플란에 따르면, 야쿠자들은 서방세계의 변호사나 중재자처럼 채권 분쟁에서 해결사 역할을 한다. 또 투자업계의 큰손으로도 활동한다. 일본 사법당국자 출신인 스가누마 미쓰히로는 “거품 붕괴 후 골드먼삭스와 메릴린치 같은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일본에 들어와 골프장 같은 불량 자산들을 매입했는데, 야마구치-구미파도 똑같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또 야마구치파는 새로운 신용 사기 방법을 활용하는 데도 매우 독창적이다. 올해 초 경찰당국은 야마구치파와 제휴한 폭력조직원이 한 기술회사를 인수한 사건을 적발했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대학 동창생용 인맥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였다. 경찰은 그 조직원이 회사의 주가를 부풀린 뒤 매각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에는 중소기업들에 제공하는 정부의 신용 보장을 악용한 사기 사건과 관련해 야마구치파 조직원 두 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물론 금융 사기에는 많은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야쿠자 2.0 세대는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데도 능숙하다. 경시청의 조직범죄 전문가인 고지마 요헤이가 지적하듯, “문제는 야쿠자에게만 있지 않다. 기꺼이 야쿠자와 제휴하려는 사람들도 문제다.” 야쿠자가 금융계 진출을 확대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만한 조짐이 있다. 폭력조직이 선호하는 유형의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처하는 방법을 주제로 도쿄 증권거래소가 경찰을 상대로 세미나를 개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외국인과의 경쟁 문제도 있다. 근년 들어 일본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언론에선 야쿠자가 중국과 러시아 마피아에 밀려난다는 자극적인 보도가 잇따랐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야쿠자는 외국인들과 제휴해 왔다. 야쿠자를 다룬 책을 여러 권 저술한 미조구치 아쓰시는 “야쿠자한테 직접 들은 얘기인데, 그들은 영역을 침범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일본·중국·한국의 폭력조직이 서로 협력해 저지른 범죄 사건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된다. 지난여름 도쿄에서 한 여성이 납치된 사건도 그런 경우였다. 야쿠자는 외국인 갱단들이 틈새 사업을 벌이도록 기꺼이 허용한다. 예컨대 외국인 이민자들 사이에서의 마약 밀매처럼 야쿠자의 핵심 사업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서다. 이는 일본 기업들이 추구하는 전략과 다르지 않다. 경제계 지도자들은 외국 기업들의 일본 시장 진출을 허용하되, 외국인들이 일본 기업을 인수하려는 시도에는 선을 긋는다. 많은 일본 기업보다 해외 활동 경험이 더 많다는 사실은 야마구치파에 도움이 됐다. 사실 야마구치파는 조직범죄의 국제화에서 선구자였다. 그 과정은 1960~70년대 일본의 관광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시작됐다. 야마구치파는 동남아 일대에 섹스 관광과 마약밀매 조직을 구축했다. 오늘날 야마구치파는 러시아 마피아와 긴밀히 협력한다고 알려졌다. 야마구치파는 러시아 영해에서 불법 조업한 해산물을 구입해 큰 이윤을 남기며 일본 시장에서 판매한다. 야마구치파의 새로운 활동 영역 중 한 곳은 우즈베키스탄이다. 그곳에서 일본까지 직항 항공편을 전세 내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을 매춘 목적으로 수송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현대화한 폭력조직들은 여성과 어린이는 절대로 해치지 않는다는 야쿠자의 오랜 전통을 점차 무시해 간다고 일본 경찰은 우려한다. 그 결과 적어도 언론 보도를 보면 야쿠자 관련 폭력 사건이 최근 급증 추세다. 예컨대 지난해에는 평범한 주택가에서 야쿠자와 경찰 간 총격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일반대중이 야쿠자에 품었던 환상이 깨져간다는 사실이다. 이는 부분적으론 야쿠자의 잔혹성 때문이지만, 어려워진 경제 현실도 작용했다. 미조구치는 이렇게 설명했다. “거품 경제 시절엔 비행청소년들 사이에서 야쿠자의 이미지가 좋았다. 조폭들은 멋있는 옷을 입고, 고급 승용차를 몰며, 멋진 술집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야쿠자, 특히 야마구치파 이외의 조폭들은 가난하다. 그 결과 폭력단들은 신참 조직원을 충원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고 경찰 당국자들은 밝혔다. 미조구치에 따르면, 야마구치파는 최근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임시변통으로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신참 조직원들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고참 조직원들에게 연금 혜택을 줘서 물러나게 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야마구치파의 종말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야쿠자는 일본 사회의 한 부분으로 너무도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컴퓨터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할 정도면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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