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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五感을 만족한다

차 안에서 五感을 만족한다

▶울산 효문공단에 있는 한일이화 전경.

국경과 체제가 사라진 세계시장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유일한 생존의 힘은 제품 경쟁력이다. 무자년(戊子年) 새해의 화두도 단연 경제로 모아지고 있다. 그만큼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새해부터 산업자원부와 공동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군 중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부품 업체들을 찾아 경쟁력의 핵심과 그 파괴력의 변화를 직접 확인하는 현장 리서치를 연재한다. 첫 번째로 자동차 부품 분야의 독보적 기업인 한일이화를 싣는다.
겨울 안개가 엷게 깔린 울산 효문공단. 자동차 부품 공장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청결하고 정돈된 모습으로 3만여 평 부지에 앉아 있는 한일이화(주)를 찾았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들의 지나친 불친절이 보안 문제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렇더라도 직선보다는 곡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철보다는 첨단 섬유 소재를 추구하는 한일이화라면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도 살벌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것은 근간에 빈발하는 기술유출 사건으로 매우 경직된 탓인가 싶기도 했다.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한 집 건너 한 집이라고 할 만큼 크고 작은 업체들이 자웅을 겨루고 있는 공단의 수많은 회사 가운데 한일이화는 선두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품질과 디자인을 혁명에 가까울 만큼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도입한 ‘5스타 인증제도’ 실시 후 370여 1차 협력업체 중 13개가 선정됐다. 그중 선정기준의 핵심인 품질·기술·납기 등 3개 부문을 가장 먼저 통과한 업체가 바로 한일이화였다. ‘5스타 인증제’는 현대자동차가 세계 초일류 자동차 회사가 되기 위해 세계적인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2002년부터 모든 1차 벤더(Vendor)를 대상으로 실시한 부품 품질평가의 총체적 채점에 대한 인증이다. 이 때문에 같은 1차 협력사라 하더라도 ‘다섯 개의 별’을 아직 달지 못한 업체에는 5스타 업체가 되는 것이 지상목표로 되어 있으며,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혹독한 기술개발과 품질 향상에 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심적인 자료가 될 수도 있는 5스타 인증제에 대해 부품업체를 총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정연국 전무는 이렇게 설명했다. “현대, 기아차의 품질을 빨리 끌어올려야 세계에서 경쟁이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동차의 품질은 사실 완성차 업체가 조립과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결국 70%가량을 외주로 조달하는 부품이 결정하는데, 그 품질이 상향되지 않으면 자동차 품질은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죠. 그래서 협력사의 부품 품질, 관리 능력, 기술개발 능력, 기술의 독자성 확보, 규모의 대형화, 전문화, 이런 부분을 아주 중점적으로 역점을 두고 독려해 왔고 그것을 놓고 평가했던 겁니다.”

-그것이 2002년부터였습니까?
“그렇습니다. 품질 ‘5스타 인증제’라는 것이 현대차가 처음 만들어낸 고유 명칭입니다만 사실 처음에는 기준을 설정하기가 상당히 모호하고 하루가 다르게 특허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과연 어느 수준까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느냐, 품질관리 기법은 도대체 무엇으로 하느냐, 이런 문제들에 봉착해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1차 협력사들에 제시하고 평가하자면 객관적 데이터와 세계 각국의 평가 기준도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거기다 현재의 국내 품질 수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 향후 어떤 식으로 진행돼야 하는지, 가령 전기자동차만 해도 방향을 잡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유럽을 포함한 선진자동차 메이커들을 벤치마킹하는 등 참 많이 고생했죠. 결국 장점만 따서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객관적으로 품질 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품질 5스타가 탄생한 건데, 그렇게 하다 보니 또 문제점이 생겨요. 5스타는 1차 벤더에 적용되지만 1차 벤더도 결국 2차 벤더로부터 부품을 조달 받아 우리한테 납품하잖습니까. 그때부터 2차 벤더들의 품질관리 능력도 중요하다, 그래서 2차 벤더까지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겁니다.”

-5스타 인증제에 대한 결과에 만족하십니까?
“만족이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세계적인 자동차 품질 평가기관인 JD파워라든가, IQS 기준으로 소비자 만족지수라든가 하는 평가에서 5스타를 인정받은 국내 부품업체들이 세계 3위로 도약해 있으니 그게 우연한 결과가 아니고 끊임없이 집중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보면 흐뭇하지요. 부품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경쟁력 기준에서 어느 정도까지 왔느냐 했을 때 선두에 설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연구소부터 빨리 만들라 그러소”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규모는 기껏해야 연간 120만~130만 대 정도다. 그러나 GM, 르노, 쌍용까지 합쳐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체 규모는 500만~600만 대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소모할 수 있는 자동차는 20% 미만이라는 얘기가 된다. 나머지는 수출하지 않으면 참혹한 현실에 부닥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기아차는 80% 이상 수출해야 하고, 현대차 역시 75% 정도를 해외시장으로 밀어내야만 전체 공장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만큼 내수기반이 취약해 수출 주도형으로 이끌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산업도 없다고 할 정도다. 결국 경쟁은 국내시장이 아니라 미국의 빅3, 도요타를 포함한 일본의 빅3, 유럽의 역사 깊은 자동차 메이커 등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일류 메이커들과 해야 한다고 볼 때 바로 부품의 경쟁력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극명해지는 것이다. 충남 아산에 제2 생산공장과 산학협동의 모델로 꼽힐 만큼 첨단 실험시설을 갖춘 대규모 기술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 한일이화는 200여 명의 연구원과 880여 명의 종업원이 연 5172억원(2006년)의 매출(2007년 추정 매출 5500억원)을 기록하고 있는 거대 부품 업체다. 이 회사는 한국 자동차산업과 거의 동시대에 출발한 부품업계 1세대 리더인 유희춘(77) 회장이 1972년 4월 창업했다. 고 정세영 전 현대차 회장과 보성고 동기생이기도 한 유 회장은 68년 현대건설과 인연을 맺어 관리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줄곧 관심의 표적은 자동차산업이었다고 했다. 현대차가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를 생산하자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대였음에도 어디서 무엇을 보았는지 당시 ‘정주영·정세영’ 두 인물과 집안 형제처럼 지내던 고 윤주원 전 덕양산업 회장을 붙잡고 “정세영 사장이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아서 그런지 동창인데도 내 말을 안 듣는데, 연구소부터 빨리 만들라고 그러소! 옆구리 자꾸 찔러서라도 부품 연구소 만들어야지 그게 안 되고는 영영 자동차 종 노릇 해요”라고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생전에 윤주원 회장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골 때린 사람이 셋 있소. 그중 한 사람이 유희춘 회장님인데, (그때만 해도)자동차도 모르는 사람이 정말 밤잠 설치면서 울산에 있는지, 미국에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를 정도로 바빠 정신이 없는데 나만 보면 연구소 타령이고, 그 소리가 정 회장님(정세영)을 통해 또 나한테 와요. 그 당시로 보면 정신 나간 소리지, 자동차가 부품을 조립해서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부품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어요? 그건 누구한테도 뻥끗 못하지. 어떻게 설명을 해요. 부품 자체를 어떻게 연구하는지도 모르는데. 하여간 유 회장님은 그런 양반이었고….” 부품업체 중에 연구소로서 한일이화의 중앙연구소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도 창업주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겠지만 무엇보다 한일이화를 주목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도어트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어트림은 일반적으로 차량의 문짝을 중심으로 모든 첨단소재와 기능이 합쳐진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토털 인테리어가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비행기의 조종간처럼 자동차의 실내 모든 인테리어를 합친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다. 김철주 대표이사 사장은 한일이화의 도어트림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간단히 짚어냈다. “도어트림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차 실내를 아름답게 하고, 편의를 제공해 주고, 사고 때 안전을 최대한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종합부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어트림만을 놓고 얘기한다면 그건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문짝이니까요. 핵심은 어떻게, 무엇으로 만드느냐지요. 그리고 도어트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량 내부의 인테리어하고 연계되니까 차 내부 전체가 얼마나 인체에 유해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느냐, 거기에 최고의 경쟁력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오감(五感)을 만족시킨다는 얘기입니다.”
세계 최강의 ‘도어트림’ 기술

▶한일이화 김철주 사장.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의 아름다움도 오감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자동차에서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세기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기술적인 설명을 요청하자 김 사장은 한일이화 중앙연구소 전오환 소장에게 전문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듣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저희 회사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우선 ‘가격 대비 품질효과’에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해외 경쟁사들, 또는 해외 최고의 선진 회사들, 자동차 인테리어 회사들이 탐내는 모든 신기술을 다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그걸 일반 고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자면 ‘오감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오감은 일단 차를 탔을 때 받는 느낌, 예를 들면 촉감이라든지, 부품 간의 매칭, 컬러·냄새·소리 그런 것들이지요. 그래서 감성품질이 우수할수록 고급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는 얘기로 국내 소형 저가 차량하고 벤츠나 BMW의 차량 내부가 같을 수 없잖습니까. 바로 그런 차이를 우리가 ‘가격에서는 3분의 1, 품질은 동격’으로 극복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사들보다 탁월한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다는 얘깁니다.”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야말로 오감이라서 설명이 어렵겠는데, 가령 냄새는 어떤 것이 인체에 좋은지, 그것까지도 연구되고 개발된 겁니까?
“매우 예민한 질문인데요, 소리라고 하면 뚜껑 닫히는 소리도 품질이기 때문에 연구해서 정말 맑은 소리로 만들었다고 쉽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근데 냄새는 지금까지 없애는 쪽으로 개발되어 왔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차를 탔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할까를 연구합니다. 좋은 향수를 맡듯이 무작정 자극적이어도 안 되고, 지속적으로 나와도 코가 마비되니까 선진국에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실 아예 냄새를 없애는 쪽으로 개발해 왔던 거지요.”

-아니 새 차를 사게 되면 특유한 차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게 좋지 않다는 겁니까?
“이것 참, 그래서 예민한 질문이라고 했던 건데요, 이렇게 답변 드리지요. 한일이화에서 납품하는 고급 차량의 도어트림과 내부 인테리어에서는 전혀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덧붙여 말씀 드리면, 새집증후군처럼 신차증후군이라고 해서 휘발성 화합물, 접착제, 연소제, 화학제품을 쓰다 보니 발생하게 되는 10여 종의 유해가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새 차 냄새가 납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법제화했고 우리나라도 아마 준비 때문에 2009년 말 정도가 되면 법적으로 규제하게 될 겁니다. 물론 우리 회사는 벌써 대체 기술을 다 개발해 놨습니다만 솔직히 눈치를 봐야 하는 곳이 많잖습니까.” 한일이화를 일반적인 개념의 중소기업에 불과한 정도로 여겼다가는 큰 실례를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세계적인 제품을 개발하고도 국내 자동차에는 아직 적용하지 못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외압이 강하게 누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산자부의 지원을 받아 생산단계에 이미 도달한 과제도 몇 년째 ‘99% 완성’이라는 대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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