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 PEOPLE] “골프도 인생도 남을 배려해야”
[GOLF & PEOPLE] “골프도 인생도 남을 배려해야”
▶1946년 경남 진주 生 경기고·고려대 경영학·스탠퍼드 경영대학원 MBA 69년 제12회 한국오픈 아마추어 부문 우승 74년 제21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84년 제4회 동해오픈 아마추어부 우승 87년 한국나이키사장, 89년 삼양인터내셔날 사장 90년 삼양통상 사장, 98년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2003년 영국왕립골프협회(R&A) 회원 2004년 대한골프협회 부회장 2007년 아시아태평양골프협회 회장 |
“2000년까지는 아시아태평양골프협회(APGC)가 기린오픈을 열었어요. 일본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없어졌는데, 2008년부터 살리는 방안을 놓고 일본골프협회와 협의 중입니다. 마쓰시타(松下) 의 후원으로 아시아태평양파나소닉오픈, 또는 아시아태평양내셔널오픈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대회를 통해 재원이 넉넉지 않아 참가하지 못하는 국가와 선수들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허광수(61)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이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소박한 포부”라며 밝힌 APGC의 사업 계획이다. 허 회장은 2007년 10월 1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에서 열린 APGC 총회에서 2년 임기의 새 회장으로 선출됐다. 허 회장은 “현재 29개국인 회원국 수와 골프 인구를 늘리고 이 지역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세계 무대에서 잘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들려줬다. 1958년 설립돼 약 50년의 역사를 가진 아태골프협회에서 회장은 그동안 주로 일본과 호주가, 가끔은 뉴질랜드에서 맡았다. 한국인이 회장으로 선출되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한국인 회장은 바로 허 회장의 부친인 고(故) 허정구(1911~99) 삼양통상 회장이었다. 허정구 회장은 83~85년 아태골프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허광수 회장은 “개인 능력보다는 선친의 후광에 힘입었고, 우리나라 골프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에 회장이 됐다”고 말했다. 허 회장이 부친의 족적을 따라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허정구 회장에 이어 2003년 말에 영국왕립골프협회(R&A갧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의 종신회원으로 지명됐다. R&A는 골프인에겐 명예의 전당이다. 1754년에 세워진 세계 최고 역사의 골프클럽으로 미국골프협회(USGA)와 함께 골프 규칙을 만들고 심사·관리한다. R&A의 회원이 되려면 골프 매너와 인격, 골프에 대한 기여 등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가입 절차도 까다롭다. 기존 회원이 후보를 추천하고, 모든 회원이 그 후보의 가입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 현재 종신회원 수는 약 2,000명. 허 회장은 부친에게 영예를 돌렸다. “제가 골프를 좋아했고, 여러 시합에서 우승하기도 했고, 대한골프협회 일을 하면서 해외 인사들을 만나기도 한 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멤버가 되는 건 아니에요. 다 선친의 후광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선친과 교류하던 분들이 저를 추천해서 된 거죠.” R&A가 특히 중점을 두고 살펴보는 부분이 매너를 잘 지키는지 여부다. 매너에 비하면 골프 핸디캡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허 회장은 회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전 R&A 회장과 말레이시아에서 라운딩한 일화를 들려줬다.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면서도 18홀 내내 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요. 매너를 잘 지키는지. 나중에 회장이 내게 ‘당신은 멤버가 되는 데 있어서 다른 건 완벽한데 하나 핸디캡이 있다. 골프를 너무 잘 치는 것’이라고 농담하더군요.” R&A 회원 또한 부친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다. 현재 한국인은 허 회장이 유일하다. 일본인 회원은 네 명이다. 기존 회원은 가입한 지 5년이 지나야 신규회원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허 회장에겐 내년 말부터 추천 자격이 주어진다. 세 번째 한국인 R&A 회원은 언제 나올 수 있을까. 허 회장은 올해엔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R&A에서 내게 (한국인 신규회원 후보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어요. 젊은 사람인데…. 내가 추천할 자격은 없지만, 그 사람 같으면 괜찮겠다고 했어요.”
▶(좌) 한국오픈(1969년) 아마추어 부문에서 우승하고. (우)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74년) 우승 뒤 허정구 회장(왼쪽)과 함께. |
아버지 이은 골프 CEO 골프는 허 회장에게 운동 이상의 활동이었다. 그리고 그의 부친 허정구 회장은 그를 골프로 이끈 스승이자 후원자요, 친구 같은 골프 동반자였다. 허정구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조홍제 효성 회장과 함께 삼성을 세워 경영했다. 제일제당 전무, 삼성물산 사장 등으로 일한 뒤 57년 삼양통상을 창업해 독립했다. 76년부터 85년까지 9년 동안 대한골프협회 회장으로 3연임하며 한국 골프의 기반을 다졌다. 허 회장이 신설한 국가대표 상비군 제도는 한국 골프 발전의 도약대가 됐다. 허정구 회장은 재계의 골프 1인자였다. 59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했다. 74세 때인 85년에는 남서울컨트리클럽에서 72타를 쳐 에이지슈팅을 기록했다. <마지막 라운드> 란 책이 있다. 투병 중인 아버지와의 마지막 골프여행에서 인생의 의미와 부자지간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담은 논픽션이다. 허 회장도 그 책을 읽어 봤다고 했다. “저는 아버지와 참 가깝게 지냈습니다. 늘 친구처럼 지냈죠. 건강하실 때 더 자주 골프를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부친과의 마지막 골프를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가 잠겨 들었다. “선친께선 94년 폐암 수술을 받은 뒤 5년을 더 사셨어요. 수술 일 년 뒤 회복되셔서 일본에 가와나 컨트리클럽이란 명문 골프장에 모시고 갔어요. 선친도 가보고 싶어하셨고 나도 가보고 싶었죠. 도쿄(東京)에서 동쪽으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어요. 아버지는 골프장을 걸어 다니시긴 했지만 거의 못 치셨어요.” 그는 “아버지 얘기를 하면 감정이 복받친다”며 가장 즐거웠던 라운딩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69) 나이키 회장이 80년대 중반 허 회장을 프로암 대회에 초청했다. “낸시 로페즈나 로라 보와 한 팀에서 치게 해주면 가겠다고 했어요.” 로페즈는 당시 연승가도를 달리던 골퍼였고, 보는 미모가 빼어난 선수였다. 허 회장은 로페즈와 한 팀이 됐다. 경기는 팀 대항으로 가장 좋은 위치의 공을 치는 ‘베스트 볼’ 방식이었다. “마지막 홀에서 우리가 이글을 했어요. 내가 친 세컨드 샷을 로페즈가 홀에 넣었죠. 서로 껴안고 난리가 났어요. 하하.” 나이트 회장은 허 회장의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선배다. 두 사람은 동문으로서 골프를 하면서 알게 됐다. 허 회장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MBA를 받았다. 당시 한국에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은 꽤 있었지만,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MBA는 한 명도 없었다. 허 회장은 “아름다운 캠퍼스와 캠퍼스 내에 있는 좋은 골프장에 끌리기도 했지만 국내 처음으로 도전해 보자는 욕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70년만 해도 한국 유학생은 ‘촌놈’이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골프 실력으로 동급생들과 사귀었다. 동급생들은 그를 골프 모임에 불렀고 집으로도 초대했다. 그는 “나이트 회장이 지금은 재산 100억 달러로 미국 30위의 억만장자이지만 그때는 처음 신발을 만들던 시기였다”고 들려줬다. 나이트 회장과의 인연으로 그는 한국나이키 사장으로 일했고, 삼양통상은 나이키 신발을 생산했다. 삼양인터내셔날은 수입 담배·골프용품·윤활유 등을 판매하고 임대사업도 하고 있다.
▶(좌) 허정구 한국프로골프협회 초대회장(왼쪽 두 번째)과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75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시니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 허정구배는 54년에 국내 아마추어골프대회 중 최초로 열렸다. |
나이키의 나이트 회장은 골프 친구 허 회장이 초등학생 때였다. 허정구 회장은 새벽마다 성균관대 뒤 운동장에서 드라이버 연습을 했다. 그는 새벽 6시쯤 공을 들고 부친을 따라 나섰다. 그는 고무 티에 공을 하나하나 올려 드렸고, 공이 다 떨어진 다음엔 주워 왔다. 중학교 때부터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처음 드라이버를 잡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공은 제법 멀리 날아갔고, 허정구 회장은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연습을 계속 하라”고 격려해줬다. 그는 고교 졸업 뒤부터 본격적으로 골프에 빠져들었다. 군자리(지금의 서울 군자동) 서울CC에서 하루에 700~800개의 연습공을 치고 18홀을 돌곤 했다. 그렇게 해서 일 년 만에 핸디 6이 됐다. 그는 “아이스하키도 스틱을 휘둘러 임팩트를 주는 운동이기 때문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곧 아마추어의 정상에 오른다. 대학 졸업 후 69년 제12회 한국오픈(안양CC)의 아마추어 부문에서 우승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74년 제21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관악CC)에서 1위에 올랐다. 84년엔 제4회 동해오픈 아마추어부에서 우승했다. 그의 부친은 그에게 프로로 진출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권했다. 그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골프를 너무 늦게 시작했고, 나의 한계를 스스로 알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남서울컨트리클럽은 고 허정구 회장이 71년에 만든 골프장이다. 허광수 회장이 부친에 이어 남서울CC의 회장도 맡고 있다. 골프는 한 주에 두 번 정도 한다. 레귤러 티에서 74~75타를 넘기지 않는다. 70대까지 이 스코어를 지키는 게 목표라고 했다. 요가로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가끔 체력 단련도 해 드라이버 샷을 평균 270야드 날린다. 겨울에는 스키를 즐긴다. 허 회장은 “골프를 잘 하려면 겸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가 잘 풀려 버디가 연달아 나오면 ‘오늘 4언더, 5언더 쳐야겠다’는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홀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겸손하게 공략해야 합니다. ‘이 홀에서는 편안하게 파를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먹지 않으면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가 금방 나옵니다.” 그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겸손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올라갈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허광수 회장은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맏형은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둘째 형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과는 동서지간이다. 부인 김영자 씨가 고 김동조 외무부 장관의 3녀로, 정 회장의 부인인 김영명 씨의 언니. 허 회장은 중앙일보·조선일보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장녀 유정 씨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장남 준오 씨, 장남 서홍 씨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고명딸 정현 씨와 결혼해 스탠퍼드 경영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명망 높은 집안의 일원으로서 허 회장은 조용히 사회공헌 활동을 펴고 있다. 그와 그의 형님들 3형제는 부친이 20억원을 고려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뜻을 받들어 2003년부터 기금을 추가로 기탁해오고 있다. ‘보현장학기금’은 이제 32억원으로 불어났다. 허 회장은 또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산업연수생과 외국 어린이에게 의료비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 그는 “지금은 소소하게 여기 도와주고 저기 도와주고 한다”며 겸손해했다. 이어 “때가 되면 (체계적인 사회공헌 방안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역지사지의 몸가짐 부친에게서 배워 허광수 회장과의 인터뷰는 삼양인터내셔날의 서울 재동 본사에서 이뤄졌다. ‘보헌빌딩’이란 이름의 재동 사옥은 북촌한옥보존지구에 들어선 탓에 지상으로는 3층 반만 올라갔다. 보헌빌딩은 중정(中庭)을 두는 등 효율보다는 여유와 쾌적함에 중점을 두고 설계됐다. 또 기와로 담장을 두르고 주위 공간과의 조화를 꾀해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인터뷰는 애초 11월 20일로 잡혀 있었다. 허 회장은 그 일 주일 전에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집안 행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미안하지만 인터뷰를 며칠 미루면 안 되겠느냐”고 간곡하게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11월 22일에 허 회장과 만나게 됐다. 기자에게는 허 회장이 직접 연락한 일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인터뷰 상대방은 기자에게 직접 전화하는 대신 비서실이나 홍보실을 통해 연락한다. 사실 처음 인터뷰 날짜도 허 회장이 기자와 통화해 잡은 것이었다. 기자는 이 과정을 통해 허 회장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역지사지’다. 허 회장은 역지사지의 몸가짐 역시 부친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역지사지 얘기는 골프 매너로 이어졌다. “티 그라운드에서 남이 칠 때 조용히 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매너입니다. 페어웨이에서는 제가 항상 아쉬워 하는 게, 디봇을 꼭 메워 줘야 합니다. 원 상태로 복구해 줄 의무가 있고, 자신의 다음에 오는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다. 벙커 정리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아예 고르지 않는 사람, 형식적으로만 하는 사람. 정리한다고 남긴 자국에 공이 들어가면 정말 화가 나거든요.” 허 회장은 아울러 그린에서 공 자국을 메워 줘야 하고 캐디를 동반자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이기는 더티 위너(dirty winner)보다 공정하게 승부를 겨루는 굿 루저(good loser)가 더 낫다고 주장했다. “차라리 굿 루저가 되는 것이 다음에 이기기 위한 거름이라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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