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못 벌면서 성과급은 ‘펑펑’
돈도 못 벌면서 성과급은 ‘펑펑’
▶한국투자공사의 방만한 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홍석주 KIC 사장. |
“안 하느니만 못하다.” 출범 3년째를 맞고 있는 KIC에 대한 자산운용시장의 평가다. 외환보유액 등 공공 부문의 여유자금을 운용해 국부를 늘리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자는 취지로 설립된 KIC가 이처럼 혹독한 평가를 받는 것은 방만한 경영과 기대에 못 미치는 운용 실적 때문이다. 실제 KIC의 경영 실태를 보면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를 의심할 정도로 심각하다. 자본금 1000억원으로 설립된 KIC는 출범 이후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설립 첫해인 2005년에는 17억8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무려 50억원이 넘는 돈을 날렸다. 2007년에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만 19억6000만원의 적자를 기록, 이대로라면 2007년 적자 규모는 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KIC는 출범 3년 만에 자본금의 14% 정도인 140억원을 까먹게 된 셈이다. KIC의 설립 자본금 1000억원은 정부가 전액 출자한 것으로 사실상 국민의 혈세다. 더 큰 문제는 KIC의 경영 부진이 임직원들의 높은 급여와 수당 등 복리후생이 한 원인이라는 점이다. KIC의 임직원 연봉 수준을 보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다. 2007년 10월 KIC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IC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복리후생비를 포함해 1억274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기업 최고 수준이다. 또 1인당 판매관리는 2억원으로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불리는 산업은행(1억7000만원)보다 많다.
일도 하기 전에 돈부터 챙겨 더욱이 KIC는 적자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매년 임직원들에게 높은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만한 경영 실태를 보여줬다. 설립 첫해인 2005년에는 임직원 1인당 평균 907만원, 적자가 늘어난 2006년에는 1141만6000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한 산업은행의 직원 평균 성과급보다 2배 많은 규모다. KIC가 2006년 말까지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성과급 총액은 6억8405억원. 이는 2007년 상반기까지 누적적자 88억7000만원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특히 성과급 지급 총액에서 투자운용본부장 부분은 빠져 있어 실제 지급된 총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관행상 외국인 자산운용전문가의 급여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KIC의 해명이다. 심상정(민주노동당, 국회 재정경제위 위원) 의원은 “매년 적자가 늘고 있는데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업적 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KIC 내부규정에 따르더라도 성과급 지급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한 것은 실제 영업(자산운용)을 시작하기도 전에 성과급이 지급됐다는 점이다. KIC가 한국은행과 재경부로부터 외환보유액을 위탁받아 자산운용을 시작한 것은 2006년 11월이다. 즉 영업을 하기도 전에 샴페인부터 터뜨린 것.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성과도 없는 데다 영업도 하기 전에 성과급부터 지급했다는 것은 경영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KIC가 무슨 근거로 그런 무리한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다. 접대비 한도액 초과사용, 운영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무리한 경비지출 등도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KIC는 운영위원회를 열면서 위원 1인당 참석비로 200만원을 지급했고, 해외 거주 위원에게는 항공료로 무려 2100만원이나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번의 회의에 식비를 포함한 부대경비만 3500만원에 달했다. KIC의 경영 부진과 모럴 해저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홍석주 KIC 사장은 지난 10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홍 사장은 적자 경영과 관련, “어떤 회사든 처음 설립하면 많은 비용이 들게 마련”이라며 “손실은 이러한 경영상의 비용에 의한 것일 뿐 자산운용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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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 능력도 함량미달? 이 때문에 KIC가 기존 외환보유액을 운용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외화자산운용팀과 별반 차이가 없고, 오히려 자산운용 비용(수수료)만 늘린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기존대로 한국은행이 운용하면 될 것을 KIC에 넘기는 바람에 비용만 2배로 들고, 외국 자산운용사들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KIC는 위탁받은 외환보유액 대부분을 해외펀드 등 간접투자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포트폴리오가 차별화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아닐 경우 비용만 늘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의 국부펀드와 마찬가지로 KIC의 자세한 자산운용 내역과 수익률은 관련법상 비공개가 원칙이다. 하지만 홍 사장은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원칙을 깨고 “자산운용 수익률은 연 7.2% 정도”라고 밝혔다. 경영 실적은 부진하지만 국부는 잘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KIC는 투자수익률 7.2%가 “처음치고는 잘한 것”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자산운용 전문가들은 “2007년 글로벌 자산이 오른 것을 감안하면 기대 이하”라는 평가다. 민간 자산운용사가 운용 중인 해외펀드(혼합형)는 물론 극히 보수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수익률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2007년 10월까지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은 9.33%였다. 국내외 민간 자산운용사가 운용하고 있는 해외혼합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21.25%나 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KIC는 돈 타령만 하고 있다. 자산운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외환보유액 추가 위탁 등 투자 규모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행은 “자산운용 능력부터 키우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외환보유액 추가 위탁은 KIC가 국제적인 수준의 자산운용기관으로 성장한 후에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공식 입장이다. 사실상 현재로서는 KIC의 자산운용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전문가들도 한국은행과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KIC가 세계 시장에서 여타 국부펀드와 경쟁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산 규모나 투자 대상을 따지기 전에 내부 전문인력 확보, 신속한 투자결정 시스템 마련 등이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부펀드나 자산운용기관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투자 규모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산운용 능력 등 내부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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