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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현 케네디가의 좌장 격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지지를 확보했다. |
케네디가는 멋과 열정과 용기로 유명했다. 1962년 말 존 F 케네디 대통령(JFK)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 해병대라면 하루에 80km 행군은 가능해야 한다고 선언한 편지를 발견했다. JFK는 현대의 해병대 장교라면 똑같은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동시에 자신의 참모들에게도 슬쩍 체력 검진표를 제출토록 했다. 그러자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RFK) 법무장관이 덥석 미끼를 물었다. RFK는 정장 구두를 신고 영하 7도의 날씨에 자신보다 더 건장한 측근들과 함께 워싱턴DC에서 메릴랜드주로 이어지는 꽁꽁 얼어붙은 옛 운하를 따라 80km 행군에 나섰다. 결국 자신만 완주에 성공한 RFK는 56km 지점에서 주저앉은 최후의 측근에게 나직하게 “형이 미국 대통령이 아니어서 좋겠다”고 속삭였다. JFK도 자신의 방식대로 80km 행군에 응했다. 그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친구 2명에게 그들은 80km 행군을 못할 거라며 내기를 걸었다.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자신은 캐딜락 무개차에 몸을 실은 채 조그만 성조기를 흔들고 럼주 칵테일을 마시며 그들 뒤를 2~3km 정도 따라가다가 그만뒀다. JFK는 매력적인 초연함과 힘들이지 않고도 풍겨 나오는 품격, 그리고 겉으론 열심히 일하는 듯 보이지 않는데도 위대한 성취를 이뤄내는 정치인의 상징이다. 기품 있고 유창하며, 지적이고 재치도 있지만 한 발치 너머에 있는 듯한 사람이었다. 반면 동생 RFK는 열정적이었다. 맹렬하고, 공격적이며, 가차 없고, 화를 내며, 감정이 풍부했다. 두 형제는 서로 그토록 닮은꼴이면서도 그토록 달랐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의 표현을 빌리자면 JFK는 “낭만주의자로 탁월하게 위장한 현실주의자”였지만 RFK는 “현실주의자로 확고하게 위장한 낭만주의자”였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이 재탈환을 갈망하는 ‘캐멀롯 신화’를 고취시켰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각기 케네디의 유산을 자기 소유로 만들고 싶어 한다. 199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빌 클린턴은 상징적인 사진 한 장을 자랑했다. 자신이 10대일 때 미 재향군인회가 매년 여는 훈련캠프에서 자신의 영웅인 JFK와 악수하는 사진이다. 클린턴 부부는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서 케네디가 사람들과 함께 요트를 즐겼다. 그러나 지난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딸 캐롤라인을 대동하고 오바마 지지를 표명하는 대사건이 일어났다(캐롤라인도 오바마 지지를 표시했다). 케네디 의원의 지지를 얻으려 로비한 힐러리도 소득은 있었다. RFK의 자녀 중 3명(전직 메릴랜드주 부지사 출신인 장녀 캐슬린 케네디 타운센드 포함)의 지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네디가의 횃불은 공식적으로는 오바마에게 건네진 듯하다. 지난해 여름 한 모금행사장에서 RFK의 미망인 에셀은 오바마를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불렀다. 오바마는 JFK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젊고, 날렵하고, 잘생겼으며 청중을 동경과 향수에 젖게 해 울먹이게 만드는 연설도 가능하다. 게다가 똑똑하고, 하버드대에서 수학했으며, 모든 인종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겨준다. 1960년만 해도 보스턴의 상점들에 붙었던 “아일랜드계 구직 사양”이란 구호가 사라진 지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고, 미국 일부 지역에서도 가톨릭 신자를 바라보는 편견이 여전히 강했다. 그런 시절에 정치적 장벽을 허문 JFK의 능력은 오늘날 오바마의 능력 못지 않게 놀랍다. 그러나 JFK는 오바마에겐 없는 뭔가가 있었다. RFK다. JFK가 그 모든 난리에도 살아남은 이유는 막후에서 궂은 일(때론 역겹고 지저분한 일까지)을 맡는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에겐 대리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RFK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능숙하게 또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는 그런 대리인을 둔 후보는 없다. JFK가 계속 빛을 발하고 순수성을 유지하는 동안 RFK는 추한 집행자였다. 선거운동본부에서 타성에 젖은 직원들을 몰아내고 실적에 따라 보상이 돌아가도록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JFK는 케네디가의 우두머리인 부친 조셉 케네디가 특히 자신의 아들 중 한 명(또는 그 이상)을 공직에 당선시키려 구축한 강력한 정치 조직이 있었다. 선거자금 조달이 거의 규제 받지 않던 시절 케네디가는 기꺼이 편법을 쓰려 했다. 조셉 케네디가 “범죄 조직”과 관련을 맺게 된 과정을 다룬 기사를 굳이 믿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JFK는 자신의 1952년 매사추세츠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 유세에서 부친이 보스턴의 한 신문사를 ‘매수’해야 했다고 룩 매거진 기자에게 가볍게 말하기도 했다(그 신문은 지금은 폐간된 보스턴 포스트지로 JFK의 부친은 신문 소유주에게 수십만 달러를 ‘융자’했다). 오바마 진영은 조직력도 비교적 뛰어나고, 모금 상황도 넉넉하다. 그러나 오바마는 승리를 목표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인파이터는 아닌 듯 보인다. RFK는 “가혹하다”는 비판을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고, 그런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오바마는 간혹 클린턴 부부에게 반격을 가하려 애쓰지만 그런 일엔 별 흥미가 없는 듯하다. 케네디가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강단 있다”는 말이었다. 오바마가 앞으로 부닥치게 될 공격을 견뎌내려면 케네디가처럼 강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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