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마이티 마우스’
러시아의 ‘마이티 마우스’
19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의 한 사무실. 창밖으로는 성 이삭 광장과 니콜라이 1세 황제의 멋진 승마 모습 조각상이 내려다보였다. 천장이 높은 이 방에서 작은 체구의 남자 두 명이 커다란 책상을 사이에 놓고 앉아 있었다. 나이가 좀 더 든 사람은, KGB 중령 출신의 터프가이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시장의 지시에 따라 민영화 업무를 담당했던 푸틴은 “늘 실무적이고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고 당시 그곳을 자주 방문했던 드미트리 렌코프 시의회 의원은 회상했다. 푸틴의 보좌관인 조용한 젊은 변호사의 이름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였다. 렌코프 의원은 “메드베데프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면서 “모든 결정은 푸틴이 내렸고, 메드베데프는 그 뒤처리를 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6년 뒤 푸틴은 자신의 옛 보좌관에게 러시아의 대통령직을 물려주기로 했다. 물론 오는 3월 2일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그러나 푸틴이 건설한 ‘민주적인 주권독립 국가’에서 메드베데프에게는 사실상 적수가 없다. 푸틴이 독립 언론을 질식시키고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면서 기반을 다져 놓았기 때문이다. 대다수 관측통은 메드베데프가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리라 전망한다. 그는 이미 푸틴을 차기 정부의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현직 대통령이 조직한 효율적인 팀”을 계속 유임시키겠다는 약속도 했다. 두 사람은 거의 20년지기다. 그러나 메드베데프는 지금도 자신의 상관을 지칭할 땐 공식 호칭인 ‘브이’(각하)를 사용한다. 크렘린의 고위 관리였던 한 인사는 두 사람 사이의 권력관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 이래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푸틴은 자신의 ‘꼬마’가 산 채로 먹히지 않게 하려고 필요한 만큼 권좌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의 얘기는 러시아가 푸틴의 비공식적인 3기 연임 체제로 가게 된다는 의미일까? 러시아 국민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하기야 푸틴의 인기도는 76%를 넘는다. 또 메드베데프가 취임 초기에 극적인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물론 두 사람은 과거를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이어 왔다. 그러나 두 사람 우정의 뿌리를 좀 더 들여다보면, 앞으로 언젠가는 서로 갈라설 가능성도 엿보인다. 두 사람의 차이점 중 일부는 피상적인 것들이다. 55세인 푸틴은 전형적인 러시아 터프가이다. 무술을 좋아하고 상스러운 욕설도 곧잘 한다. 지난주 그는 자신의 재산에 관한 언론의 비판적 기사를 두고 “누군가의 코에서 튀어나온 오물을 종이 위에 문질러 놓은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푸틴은 전쟁 영화를 즐겨 보고, 애국적인 러시아 록 음악을 듣는다. 이에 비해 42세의 메드베데프는 가냘픈 체격에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기업 전문 변호사다. 권위 있는 법률 교과서를 여러 권 집필하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수영이다. 그에게서 가장 거친 점을 들라면, 강렬한 사운드의 록그룹 블랙 사바스와 레드 제플린의 팬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차이점들은 좀 더 뚜렷하다.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 있는 노동자 계층 주거지의 거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 조립식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다. 2000년에 출간한 자서전 ‘퍼스트 퍼슨(First Person)’에서 푸틴은 꼬마들을 이끌고 계단통을 오르내리며 쥐를 잡아 죽이던 일을 회고했다. 그러나 당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 치하의 소련은 국력이 절정에 있었다. 푸틴은 공산주의의 마지막 신봉자 중 한 명으로 교육받았다. 그는 소련의 스파이 영화를 관람한 뒤 KGB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키웠다. 대통령이 된 뒤 푸틴은 소련의 붕괴에 대해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대재앙”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메드베데프는 레닌그라드의 지식인 계층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율리아는 러시아 언어와 문학을 가르쳤고, 아버지 아나톨리는 물리학자였다. 305호 학교에서 메드베데프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이리나 그리고로프스카야는 “그에게 아버지처럼 과학자가 돼야 한다고 설득하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당시 14세였던 메드베데프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다. 그는 법조계에 들어가고 싶다고 우겼다”고 회상한다. 1980년대 말의 레닌그라드는 소련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였다. 공산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할 때였다. ‘글라스노스트(개방)’의 열기 속에 대학생들은 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스탈린주의 비판 강의를 경청했다. 학생들은 한때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됐다가 다시 출간된 시집들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고 졸업한 메드베데프는 자신의 은사 중 한 명인 아나톨리 소브차크 교수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소브차크는 의회 선거에 출마했다. 메드베데프의 행보는 위험한 처신이었다. 자유 시장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소브차크의 사상은 당시로선 여전히 매우 이단적인 것이었다. KGB는 그의 유세용 인쇄물을 정치적으로 너무 선동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간주하고 압수했다. 그러나 메드베데프는 동료 지지자들과 함께 낡은 회전식 복사기를 이용해 또 다른 선거 전단을 밤새 복사했다. 소브차크의 미망인 라리사 나루소바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디마(메드베데프)가 나중에 내게 말했어요. 그 다음날 자신은 밤새 이스크라(공산당의 지하 신문)를 등사기로 찍어냈던 레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이죠.” 소브차크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푸틴은 그 격동의 시절을 대부분 동독에서 보냈다. ‘철의 장막’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봤다. 여러 해 전에 푸틴을 가르치기도 했던 소브차크는 그 전직 KGB 요원을 19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데려왔다. 소브차크가 시장이 된 후였다. 소브차크는 “이제 공직을 차지한 과거의 반체제 인사들과, 그들을 박해했던 KGB 출신들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앞서의 전직 크렘린 고위 관리는 말했다. 메드베데프는 푸틴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시정부 소유의 부동산과 사업체들을 매각하는 업무를 책임진 푸틴을 보좌하며 법률적 조언을 했다. 다른 한편, 메드베데프는 자본주의자 대열에 합류했다. 제지회사인 일림 펄프에 들어가 그 회사를 자산 수백만 달러짜리의 시장 선도 기업으로 키우는 데 일조했다. 그는 모교에서 법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제자였던 파벨 티모페예프는 메드베데프가 화려한 베르사체 의상을 입고 손에는 파커 만년필을 든 채 강의실에 들어오곤 했다고 회상한다. “그분은 사치품, 성공, 전문직업인을 상징했다. 우리 학생들은 그분처럼 부유하고 성공한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중용했다. 기업 업무에 관한 메드베데프의 지식을 활용하려고 그를 국영 에너지 독점회사인 가스프롬의 CEO로 앉혔다. 가스프롬에서 메드베데프는 구태의연한 경영진을 퇴출시키고, 회사의 재무구조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결정적인 기준은 충성심이었다. 메드베데프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불신한다는 점에서 푸틴과 생각이 같다. 일림 펄프에 근무할 때 메드베데프는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막기 위해 KGB와 군 첩보기구 출신자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또 푸틴이 외교술, 협박, 무력 시위 등의 방법을 혼합해 러시아의 위상을 부활시키고 조국에 새롭고 대담한 역할을 부여한 점을 인정한다. 지난달 메드베데프는 어느 연설에서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걸맞은 지위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메드베데프도 푸틴이 찬성하는 ‘거만한 민족주의’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는 입장이다.(최근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시스템을 유치하는 데 동의할 경우 러시아군의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겨냥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푸틴의 그 말에 대해 “비난 받아 마땅한 언사”라고 비판했다.) 메드베데프는 최근 연설에서 유럽에 공급하는 에너지와 관련해 러시아의 국익을 “조용히” 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뉴스위크 특파원은 메드베데프가 직접 수정한 연설문 원고를 봤다. 모스크바의 문화계 지도자 등을 상대로 행한 연설이었다. 두 단락이 삭제돼 있었다. 하나는 푸틴이 퇴임 후 러시아 의회에서 맡게 될 새로운 역할에 관한 언급이었다. 이것을 삭제한 것은 러시아에서 “정당제도가 더욱 정착돼 간다”는 신호였다. 또 다른 대목은 서방진영이 우크라이나에서 2004년에 일어난 오렌지 혁명과 비슷한 혁명을 다시 일으키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신 메드베데프는 이렇게 시인했다. “러시아처럼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태도가 만연된 나라는 유럽에는 없다.” 메드베데프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해도, 러시아의 정치체제를 개혁하려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푸틴의 집권 기간에 크렘린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인사들의 막강하고 은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러시아 부패추방위원회의 키릴 코바노프는 “메드베데프는 KGB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이들 세력과 싸워야만 할 것”이라면서 “그러지 않으면 국가의 정치구조 자체가 권력형 부정부패의 무게에 눌려 붕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옛 동지들이 대규모로 숙청되는 사태를 푸틴이 묵인할 가능성은 없다.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그는 퇴임 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러시아에서 행정수반은… 총리”라는 그의 발언은 불길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앞서의 전직 크렘린 고위 관리는 장기적으로는 희망을 가질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억해 보라. 우리는 모두 푸틴이 자신을 권좌에 앉힌 옐친 파벌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고들 말했다. 하지만 푸틴은 매우 신속하게 자신의 노선을 확립했다”면서 “러시아의 황실에서는 늘 마법 같은 일이 발생해 왔다… 메드베데프는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의 멘토인 푸틴이 누구보다도 놀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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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ANNA NEMTSOVA in St. Peter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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