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불교의 ‘반란’
남아시아 불교의 ‘반란’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의 성난 종교인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나와 정치 구호들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정부의 부패를 규탄하고, 서구식 가치의 유입을 비난하고, 전통 윤리의 쇠퇴를 개탄한다. 대중 원조단체들의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되면서 이들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일부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무기를 들었다. 익숙히 듣던 얘기라고? 하지만 이런 문제에 신념을 지닌 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보수 기독교도들만은 아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조용한 종교로 꼽히는 불교 신도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불교라면 흔히 평화주의와 명상을 연상시키는 종교 아니던가. 옛날 얘기일 뿐이다. 종교 열기로 뜨거운 요즘 아시아 전역에서는 불교가 부활하면서 승려 운동가들이 등장하고 정치적 목소리도 점차 높아진다. 그중 일부는 다른 종교의 원리주의자와 같은 경직성을 보인다. 그렇다. 대만의 대규모 츠지(慈濟) 운동처럼 대부분의 불교 단체는 여전히 비폭력과 무소유를 실천한다. 이런 명상적인 매력 덕분에 인도·중국 등지에서는 도시의 전문직업인들이 불교에 귀의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단체들은 혼탁한 현실정치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지난해 승려들이 주도한 버마 시위도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2006년 태국에서는 극단적 보수주의 불교 계파의 영향으로 탁신 친나왓 총리가 실각했다. 인도에서는 불교의 지원을 받는 정당이 급속히 세를 불리며 그 정당의 대중인기영합적인 지도자가 장래 총리감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더 극적인 사례는 스리랑카의 급진적 민족주의 자티카 헬라 우루마야(JHU)당처럼 불교도들이 폭력을 옹호한 것이다. 태국 남부에서도 총을 잡는 불교도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정치적 행동주의 불교가 등장한 현상에 대해 “전 세계에서 종교의 정치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우인 칼리지 종교학과의 짐 홀트 교수는 말했다. “ ‘불교 원리주의’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호전성이 강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의 탈피와 모든 생명에의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는 2500년 전에 탄생한 이래 전 세계 신도 수가 3억5000만 명에 달한다. 아직 테러리즘에 기대는 불교도가 없는 것은 폭력을 금하는 가르침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새로이 현실적인 입장을 취하는 불교도가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그 숫자로 증명된다. 이 종교는 빠르게 세를 불려간다. 정확한 숫자를 꼽기 어렵지만 중국에만 현재 1억 명에 달하는 불교도가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부처의 출생지인 인도는 2001년 800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대략 3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만의 불교도 수도 2001년 550만 명에서 2006년 800만 명으로 늘었다. 이 같은 성장세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중국과 대만의 신도 수 증가는 정치 규제의 완화를 반영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당국은 모든 종교에 대한 통제를 대폭 완화했다. 문화혁명 당시 척결의 대상이었던 종교적 가치가 지금은 정부가 내세우는 ‘조화로운 사회’의 버팀목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편 아시아 사회에서도 물질주의가 팽배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신흥 중산층들이 늘고 있다. 예컨대 뉴델리의 금융회사 직원 아카시 수리(25)는 한때 옷, 외식, 휴가여행에 돈을 안 아끼는 방탕한 생활을 누려왔다. 그러나 2년 전 “이렇게 호화롭게 살아도 행복하기는커녕 근심 걱정만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불교에 귀의했다. 인도인들에게 불교는 또 다른 강력한 동기를 준다. 바로 억압적인 계급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수단이다. 특히 1억7000만 명에 달한다는 천민계급인 달리트에 호소력을 지닌다. 마하라슈트라주의 주민 후쿰 다스(22)도 지난해 다른 5000명과 함께 뭄바이에서 집단 개종식에 참가했다. “더 이상 동물 취급을 받기 싫다”고 그는 말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10년 새 개종한 달리트가 100만 명을 넘는다. 불도 수가 급격히 늘면서 정치세력화하기도 한다. 중국 당국은 여기에 가장 불안한 입장이다. 중국의 지배에 맞선 봉기 49주년을 기념해 티베트인 수백 명이 이달 가두행진을 시도한다. 망명정부가 자리 잡은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수도 라싸까지 긴 행진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 비슷한 시위가 잇따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불교의 성장은 공산당 지배에 대한 오랜 도전으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다. 중국 불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티베트 불교로 개종하거나 탁발승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의식을 치르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다. 국가가 인정한 사원 밖이라서 당국의 통제로부터도 자유롭다. 이들 ‘생불’ 중 다수는 오늘날 중국사회의 병폐를 비판한다고 리치먼드대의 가레트 피셔 교수는 말했다. 그중에는 관료조직의 부패나 환경파괴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들도 포함된다. 한편 인도에서는 부활한 불교 운동이 곧장 현실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7년 전 불교로 개종해 정당을 설립한 달리트 우디트 라지는 “달리트는 억압의 족쇄들을 스스로 벗어던져야 한다. 불교가 해방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달리트 계급 다수가 그의 뜻을 따라 바후잔 사마지 당(BSP)으로 몰려들었다. BSP당은 현재 인도에서 가장 큰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다수당으로 이 정당의 지도자 마야와티 쿠마리는 포퓰리즘적인 정책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당을 이끌어 주의회 403석 중 206석을 차지해 정치권에 충격을 던졌다. 그녀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는지 확고하다. 우타르 프라데시주 전역에 불교 기념물을 세우려는 야심찬 계획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는 부처가 열반한 쿠시나가르에 2억5000만 달러를 들여 150m 높이의 부처 동상을 세운다는 계획도 들어있다. 불교도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스리랑카에서는 1983년부터 불교를 섬기는 다수파 싱할리스족이 소수파인 힌두 타밀족과 간헐적으로 내전을 벌였다. 승려들은 급진 민족주의 정당인 JHU당 기치 아래 의회활동을 조종해 왔다. 지금까지 JHU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225석 중 9석)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의 집권 연합에 합류해 스리랑카의 가장 국수주의적 종족인 싱할리스족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정부가 타밀 분리주의자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한다. JHU는 불교에서 가르치는 관용의 전통을 거부하고 전면적인 군사작전을 통해 타밀 전사들을 소탕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외세의 중재로 이뤄진 휴전을 철회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의 포교를 금지하는 법을 추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불교의 호전적인 측면은 태국에서도 뚜렷이 엿볼 수 있다. 이 불교신자는 인구 6200만 명 가운데 90%를 훌쩍 넘는다. 태국에서 승려들은 국회에 들어갈 수 없지만 산티 아소케라는 소규모 불교 종파와 연관된 다르마군(軍)이란 단체에서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2년 전 탁신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르마군의 지도자는 장성 출신으로 방콕 시장을 지낸 카리스마 넘치는 잠롱 스리무앙이다. 그 금욕주의 단체(성생활을 하지 않으며 하루 한 끼만 먹는다)를 일사불란하고 주의·주장이 강한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국가가 지원하는 성직자 사회의 비리와 부패를 공격한다. 이 단체는 탁신의 부패와 권력 남용을 비판하기도 했다. “재계 지도층과 군부가 탁신에게 등을 돌렸을 때 그들에게 결정적인 힘을 실어준 것이 다르마군”이라고 보스턴 소재 시몬스 칼리지 정치학과의 자카리 아부자 교수가 말했다. 태국의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대중인기영합주의를 가리킨 말이다. 지난해 여러 불교 종파가 불교를 국가종교로 지정하려는 운동을 벌인 것도 정서적으로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 단체는 태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외국 풍속의 침투를 막기 위해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태국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서구문화를 모방한다”고 대학 교수이자 불교 운동가인 디라위트 피뇨나타가른은 말했다. “우리의 근본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만약 그것이 현실화하면 태국의 500만 무슬림은 불같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결국 태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왕실이 나서서 그런 움직임을 누그러뜨렸지만 ‘태국 불교 네트워크’(총괄 조직)와 불교보호센터 같은 단체들은 수만 명의 시위군중을 쉽게 끌어모을 힘이 있다. 분명히 이 문제는 다시 터져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한편 4년 간이나 무슬림들이 반정부운동을 벌여온 태국 남부에서는 많은 불교도가 정부 지원을 받아 군대에 가까운 ‘자위단’을 조직했다. 이 단체들은 명목상 종파와 무관하지만 무슬림 회원이 거의 없으며 종종 불교 사원에서 훈련한다. 7000명의 자원자 대부분은 총 대신 봉을 이용해 훈련하지만 한 전문가에 따르면(정보원의 안전을 위해 이름은 안밝힌다) 지난여름 태국 정부가 이들을 무장하려고 러시아산 엽총을 다량 구입했다. 아시아의 행동주의 불교도들이 모두 부처의 반폭력 가르침을 잊은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1960년대 틱낫한이 설립한 ‘참여불교’ 운동이다. 베트남 승려인 그는 베트남전 때 운동가로 변신했다가 결국 공산당 통치자들에게 쫓겨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 후 2005년과 2007년 귀국했는데 두 번 모두 국민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 비폭력과 사회활동을 강조하는 참여불교는 아시아 전역에서 꾸준히 종교적 관용 운동을 벌여왔다. 가장 활동이 두드러진 나라가 스리랑카다. 이곳의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 단체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종파를 초월한 반전 시위를 개최한다. 이 단체는 또 1만5000개 지역사회에서 도로를 깔고 깨끗한 물을 찾고 유치원 운영을 도왔다고 제임스 매디슨 대학에서 종교와 철학을 가르치는 샐리 킹 교수는 말했다. 참여불교는 특히 대만에서 뚜렷한 활동을 벌여왔다. 최근 수십년 동안 츠지를 비롯한 유사한 단체들이 우후죽숙처럼 생겨났다. 대만의 불교 부흥 추세에 힘입어 츠지는 전 세계에서 1000만 명의 추종자를 끌어들였다. 1966년 비구니승이 설립한 츠지는 정치와 거리를 두지만 자신들의 활동을 홍보하는 데는 적극적이다. 자체 TV 방송국과 간행물을 통해 대만인들에게 이타적인 삶의 비전을 일깨운다. 현재 츠지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효과적인 원조기구로 손꼽힌다. 독특한 유니폼 덕분에 ‘푸른 천사’로도 불리는 구호대원들은 2004년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의 지진해일 피해자들을 도왔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본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도 원조활동을 벌였다. 츠지는 비정치적인 성향 덕분에 베이징 당국의 격려를 받으면서 중국 본토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구이저우(貴州)성 같은 가난한 내륙 지역에서 학교, 양로원을 만들고 어떤 때는 마을 전체를 조성했다. 그러나 타 지역에서 불교가 정치화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중국이 츠지의 활동을 계속 허용하리란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대만에서조차 불교의 정치성향이 노골화된다. 산추앙 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쉬차오훼이는 1993년 생명보존협회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그 후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낙태 반대, 카지노 설치 반대 운동을 벌인다. “우리는 이슈가 중심이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그녀는 말했다.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하고 더 나아가 싸워서라도 권리를 지키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불교도가 계속 늘어나면 언젠가 막강한 중국 정부조차 그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With SUDIP MAZUMDAR in New Delhi, JONATHAN ADAMS in Taipei and WANG ZHENRU in Beijing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신한투자증권, ‘3인 사장 체제’로…‘책무구조도’ 최초 도입 박차
2가상화폐거래소 하이퍼리퀴드서 대규모 자금 유출…"北 해커 활동 의혹"
3길정섭 NH-Amundi자산운용 신임 대표이사 선임
4뉴발란스 국내 매출 1조 돌파...16년만에 40배 성장
5포스코 육성 벤처, ‘K-스타트업’ 대회서 대거 수상
6한화자산운용, ’PLUS 한화그룹주’ ETF 상장
7한남3구역, 6천세대 '미니 신도시급'으로 탈바꿈
8포스코, 1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
9‘집중투표제’ 카드 꺼낸 최윤범…고려아연 분쟁 뒤집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