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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항공사는 순항할까

국적 항공사는 순항할까

미국의 거대 항공사들이 고질적인 적자 누적으로 고전하지만 한국 항공산업은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또 한번의 비약을 꿈꾼다. 호재와 악재가 동시에 상존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미국 비자 면제를 호재로 꼽는다면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 고유가의 지속은 악재다. 호재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악재는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것이 국내 항공산업이 풀어야 할 숙제다. 올 연말 미국행 비자 면제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인의 미국 여행 수요가 3∼4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 같은 특수에 대비하기 위해 하계 시즌부터 증편을 계획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인천~댈러스 노선을 주 3회에서 4회로, 인천~샌프란시스코는 주 4회에서 7회로 늘린다. 아시아나항공도 올 하계 시즌에 인천~LA 노선을 주 12회에서 14회로 늘리고 인천~뉴욕 노선은 주 3회에서 7회로 증편한다. 미국 노선에 투입되는 기종이 350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B747과 같은 대형 기종이란 점을 감안하면 주 3회 이상 증편은 파격적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의 두 국적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올해와 내년 각별한 생일을 맞는다. 대한항공이 내년 창립 40주년,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20주년이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대한항공은 ‘2010년 세계 10대 항공사 진입’을 외치고 있고 20세 성년이 된 아시아나항공은 유럽 노선 확장과 화물 운송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대한항공은 고품격 서비스를 위해 기내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비약적인 시너지 효과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은 1969년 설립 이후 지난 40년간 엄청난 집약 성장을 이뤘다. 1969년 보유 항공기 8대는 현재 132대로 17배 성장했다. 매출은 첫해 17억원에서 8조8120억원으로 무려 5183배가 증가했다. 연간 수송 여객 수는 69만5000명에서 2401만7000명으로 늘었고, 화물 수송량은 2700t에서 228만5000t으로 846배나 뛰었다. 특히 대한항공의 화물운송 분야 실적은 탁월하다. 전체 매출의 30% 정도를 화물사업본부에서 올리고 있는 대한항공은 국제 화물 수송 부문에서 4년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1970년 화물기 1대로 시작한 화물사업이 세계 최대의 화물항공사로 성장한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올 초 임원 세미나에서 “창사 40주년을 맞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10-10-10 경영’(매출 10% 증대, 생산성 10% 향상, 비용 10% 감소)의 지속과 함께 ‘고품격을 추구하는 하이엔드 마케팅’의 필요성을 주문한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한항공은 올해 기내 좌석에 주문형 오디오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시트를 갖추는 등 객석 업그레이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에는 ‘꿈의 항공기’로 불리는 B787 10대를, 2010년에는 525석을 갖춘 초대형 여객기인 A380 8대를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동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신시장 개척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시장 개척은 구체적인 결실을 목전에 두고 있다. 중국 최대 물류회사인 시노트랜스와 합작으로 화물항공사 ‘그랜드스타’를 설립해 상반기 취항을 예고했다. 별도 법인으로 설립한 저가 항공사 ‘에어코리아’도 5월 취항이 예약돼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정부의 제2 국적 항공사 취항 정책이 낳은 옥동자였다. 올해 20세 성년이 된 아시아나항공은 3월 말 숙원이었던 프랑스 파리 취항을 앞두고 있다. 2008년 초에는 영국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항공산업전문 리서치기관인 영국 스카이트랙스(skytrax)가 발표한 항공사 등급 순위에서 최고 등급인 ‘파이브 스타(five star)’항공사에 2년 연속 선정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를 ‘500년 영속기업의 기반을 구축하는 해’로 정하고 ‘뉴 테이크 오프(New Take-off) 2008’이라는 경영방침을 발표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하게 된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항공운송과 대한통운의 육상운송이 결합된 ‘연계수송’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주로 국내와 아시아권에 머물던 아시아나항공의 영역이 프랑스 파리로 확대된 것도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그간 일본, 중국, 동남아, 동북아에 집중됐던 해외 노선을 유럽과 미주 장거리 노선에 확대한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임원은 “파리 취항은 새로운 도약의 상징”으로 규정하면서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를 잇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저가항공시장도 본격적인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경쟁도 치열하다. 기존 제주항공과 한성항공 외에 에어코리아(대한항공 자회사), 에어부산(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영남에어, 중부항공, 서울항공, 대양항공, 이스타 항공 등 모두 12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국내 업체와 합작, 한국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외국 저가항공사도 5∼6개에 이른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은 저가항공사업 진출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 14일 부산국제항공(현 에어부산)에 대한 230억원 투자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최근 외국 저가항공사의 무차별 공략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영역을 포함한 국내 항공시장이 위협 받기 시작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상반기 취항이 불투명했던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사 에어코리아는 이르면 오는 5월 취항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주무부서인 국토해양부는 운항 능력이 검증된 신생 저가항공사의 경우 인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기업규제 완화와 시장 경쟁력 강화를 주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기업 마인드가 작용한 결과다. 현재 항공사 신설시 정기 항공운송 면허 검증에만 3개월, 운항증명(AOC)을 받으려면 6개월이 추가로 소요된다. 유럽인들은 운임이 단돈 몇 십 유로에 불과한 저가항공사의 비행기를 ‘가볍게’ 잡아 타고 로마나 바르셀로나 같은 관광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한국 사람들이 이 같은 ‘값싼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작년 11월 건설교통부가 ‘국내선 2년, 2만 회 이상 무사고 운항’을 한 항공사에만 국제선 취항을 허가한다는 기준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2005년과 2006년 각기 국내선에 취항한 한성항공과 제주항공은 올여름 건교부 기준을 충족시키자마자 국제선을 띄우겠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저가항공사들은 아직 법인 설립단계에 있기 때문에 2011년이 지나야 다양한 노선과 상품을 구비한 ‘진정한 저가항공 시대’가 개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저가항공사의 미래가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손익을 맞출 수 있는 국제선 취항까지의 기간과 과정은 너무도 가혹하다. 현실적으로 국내선 운항이 적자를 면키 어렵기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저가항공사가 2만 회 운항까지는 통상 3년 이상이 걸리며, 그 기간 누적 적자는 700억∼80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고유가와 과당 경쟁 환경 속에서 자본력이 없는 영세 항공사들이 버티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저가항공사의 대거 출현을 ‘난립’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경제 규모 면에서 우리보다 처지는 필리핀이 50개, 대만과 싱가포르가 각각 20개 이상의 항공사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9위의 항공 수요를 가진 우리나라가 2개의 국적 항공을 포함해 4개의 항공사만으로 항공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정상은 아니란 지적이다. 아일랜드의 항공사 ‘라이언에어’는 연간 3500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는 유럽 최대의 저가항공사로 성장했다. 보잉 737-800 신형 기종 100대 이상을 보유한 이 회사는 최근 놀랍게도 같은 기종을 125대나 추가 주문해 2012년까지 수송 인원을 7000만 명으로 늘린다는 야망을 실현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저가항공의 ‘허브’ 회사를 만들 수만 있다면 이 분야의 잠재적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는 관측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한국 항공사의 가장 무거운 짐은 고유가 문제다. 유가 100달러 시대에 진입하면서 항공업계의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1달러 오를 경우 대한항공은 연간 30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144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항공사는 물론 이 손해를 스스로 보전하지 않는다. 유가 인상분에 대한 유류할증료를 올려 그 상당부분을 승객들에게 부담케 한다. 실상을 공개하진 않지만 항공사들이 유가 부담을 덜기 위한 기법은 또 있다. 이른바 ‘유가헤지’다. 헤지는 가격변동이나 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미리 일정기간 동안 정해진 금액으로 거래키로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고정가격으로 항공유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 유가 인상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애널리스트 송재학씨는 “한·미, 한·EU FTA 추진으로 중장기 항공화물 수요가 급증할 것이며,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으로 환승 여객 증가도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노쇠해진 미국 거대 항공사의 실패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한국 항공사들의 새로운 비전과 도약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필자는 월간중앙에서 일했고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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