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사르코지의 ‘기행’
브레이크 없는 사르코지의 ‘기행’
프랑스 만화가들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장난끼 많고 호색적인 ‘사치’의 제왕으로 그리며 그를 맘껏 조롱한다. 호기 어린 모험과 스릴이 가득한 이 작품들은 ‘니콜라 사르코지의 모험’이라 불릴 만하다. 물론 사르코지 자신이 기막힌 소재를 제공했다. 매력적인 부인과 이혼하고 역시 매력적인 모델과 재혼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직접 아프리카 차드까지 가서 수감된 프랑스 기자들을 석방시켰다. 그리고 지난주엔 콜롬비아 정글에서 게릴라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잉그리드 베탕쿠르(콜롬비아의 전 대통령 후보)를 구할 의사가 있다고 선언했다. 사르코지는 능률적인 정부의 지도자라기보다는 벨기에의 인기 만화 ‘땡땡이의 모험’ 같은 장편만화의 주인공에 더 가까워 보인다. 프랑스 경제를 향상시키고, 주 35시간 근무에 익숙해진 프랑스에 일하는 문화를 부활시켜 ‘구매력을 증대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지 1년도 채 안 됐다. 그는 취임 초기 강도 높은 개혁에 착수했다. 일부 공공부문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특혜 폐지와 좀 더 융통성 있는 근로계약 등을 골자로 했다. 하지만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제들보다 훨씬 더 크거나[신(神)], 훨씬 더 작은(택시 요금 등) 문제에 매달리느라 약속을 못 지켰다. 사르코지는 정교분리를 굳건히 신봉해 온 프랑스의 지도자면서도 툭하면 이유 없이 ‘초월적인 신’을 들먹이곤 했다. 또 마치 프랑스의 대통령이 아니라 시장(市長)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문제에 직접 나섰다. 프랑스 요리를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도록 신청하는 문제에 개입했고 지난달에는 프랑스 담배제조업자 연합을 엘리제 궁으로 초청해 카페와 술집에서 담배를 파는 흡연실 설치를 허용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는 동안 목표했던 예상 경제성장률이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율은 상승했으며 소비자신뢰지수는 1987년 측정을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프랑스에는 과거에도 사사건건 나서서 잘난 체하는 대통령이 많았지만 사르코지처럼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는 대통령은 없었다. 세세한 문제는 총리에게 맡기고, 일이 잘못될 경우 비난도 총리에게 돌아가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현재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사르코지보다 지지율이 훨씬 더 높다(66% 대 41%). 프랑스 현대 역사상 대통령과 총리의 지지율이 이렇게 크게 벌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사르코지의 지나친 행동은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갈수록 그가 제멋대로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지난해 여름 이후 사르코지의 신뢰도는 30%포인트나 떨어졌다. 여론조사에서 현재 사르코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반면 56%는 그가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3월 9일과 16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어느 정도는 사르코지에 대한 신임투표라고 볼 수 있다) 후보들은 사르코지를 유세에 초청하지도 않았다. 사르코지의 총선 승리 이후 혼란을 겪어온 야당(사회당)은 우파의 거점인 마르세유 같은 지역에서까지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과 접전을 벌이고 있어 결국 전국적인 승리가 예상된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BVA의 조사관 가엘 슬리망은 “블루 칼라든 화이트 칼라든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유권자가 베탕쿠르의 구출에 신경 쓸 이유가 뭔가?”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게 나쁜 일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르코지가 약간의 점수를 딸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유권자들은 사르코지가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걸 좋지 않게 본다.” 사르코지의 말 많은 스타일은 그동안 그늘에 머무르던 대통령 보좌관들한테도 앞으로 나설 용기를 준 듯하다. 그들 중 일부는 각료들과 논쟁을 벌여가며 세간의 주목을 끌려고 한다. 심지어 사르코지보다 더 도발적인 노선을 택하기도 한다. 최근 프랑스의 한 잡지는 사르코지의 수석보좌관이자 종교담당 보좌관인 에마뉘엘 미뇽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잡지에 따르면 미뇽은 다양한 사교가 프랑스 사회에 위험한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세간의 인식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보도는 주류에서 벗어난 신앙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프랑스인들에게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미뇽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잡아뗐지만 잡지사 측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사르코지 대통령이 사교가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악영향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강조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사르코지의 보좌관 중 가장 큰 우려의 대상으로 떠오른 인물은 연설문 작성 책임자인 앙리 귀에노다. 그는 대선 당시 사르코지의 연설문 대부분을 작성했지만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가장 많은 인물로 알려졌다. 현재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사르코지가 유럽연합(EU)의 자유시장과 예산의 규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귀에노는 유럽의 경쟁 정책을 “터무니없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또 프랑스 정부에 예산의 엄격한 적용을 종용하려는 정책을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정책”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말 많은 보좌관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는커녕 노련한 외무장관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제쳐놓고 그들에게 외교 임무를 맡겼다. 지난해 사르코지는 대통령 비서실장인 클로드 게앙을 리비아에 보내 사형 선고를 받게 된 불가리아 의료진의 석방 협상을 돕도록 했다. 또 시리아와의 화해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그를 다마스쿠스에 파견해 쿠슈네르를 실망시키기도 했다. 이런 대통령 특사의 파견이 효과를 보았다면 논란이 덜했을지 모른다. 지난 2월 사르코지는 귀에노를 베를린에 보냈다. EU와 별개의 독립적인 기구로 운영될 지중해연합(MU)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다. 메르켈은 이 모호한 계획이 EU의 강화를 저해할 것으로 본다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했다. 독일 외교협회의 프랑스 전문가 마르틴 쿠프만에 따르면 메르켈의 보좌관들은 귀에노가 융통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같은 말만 되풀이해 독일 정부에 “큰 실망”을 안겼다. 지난주 독일을 방문한 사르코지는 MU를 EU와는 별개인 독립적 기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한다고 말해 메르켈과의 관계 회복을 꾀했다. 심지어 사르코지의 정부와 정당 내부에서도 보좌관들의 월권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장-피에르 주예 유럽담당 국무장관은 대통령 보좌관들이 장관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우려했다. 사르코지의 정당인 UMP 소속 의원이자 유럽의회 의원인 알랭 라마수르는 “프랑스 정부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주범은 귀에노를 비롯한 대통령 보좌관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문제에서는 특히 귀에노가 말썽이다.” 사르코지는 2006년 대선 당시 귀에노를 영입했다. 그가 대서양주의자(친미파)이자 경제적 자유주의자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려 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에노는 논란만 가중시켰다. 지난해 여름 사르코지는 세네갈에서 귀에노가 써준 연설문을 바탕으로 연설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당시 연설문 중 “아프리카 사람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보려는 의지가 없다”는 대목을 들어 사르코지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귀에노는 레비를 “잘난 체하는 바보”라고 맞받아쳤다. 또 지난달 파리 농업전시회에서 사르코지가 자신의 악수 요청을 거부한 시민에게 “꺼져 버려, 머저리야”라고 말했을 때 한 만화가는 귀에노가 그 구절을 써주었다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다.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말이 맞다. 지난 2월 사르코지는 초등학교 5학년생들을 대상으로 나치에게 학살 당한 프랑스 어린이들을 조사하는 숙제를 통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교육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최소한의 검토도 거치지 않은 듯한 그 제안은 신랄한 비판을 불렀다. 사르코지의 충실한 지지자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시몬 베일 전 사회부 장관은 사르코지가 그 제안을 내놓았을 때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린 학생들에게 나치의 손에 학살 당한 어린이들을 조사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경악했다.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르코지는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자크 아탈리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출마한 첫 선거에서 당선되자 “실패 없이 권력을 쟁취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패할 가능성을 자각하게 되면 그런 감정은 자연히 누그러진다는 설명이다. 지방선거 결과 대대적인 내각 개편이 불가피하게 되면 당장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사르코지의 지지자 중 일부는 현 상황을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취임 초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내부적 갈등으로 내각 개편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클린턴의 전기를 쓴 프랑스 작가 질 델라폰은 두 대통령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클린턴은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고 그는 말했다. “사르코지에게 그런 학습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취임 초기의 클린턴은 워싱턴 정가의 질서를 몰랐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질서를 알면서도 따를 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사르코지와 그의 성격에 달려 있다.” 만약 사르코지가 상황 타개에 실패한다면 역사 역시 그를 만화처럼 기록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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