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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건설 인수 중공업은 안 할 거요”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건설 인수 중공업은 안 할 거요”

▶‘가는 세월’을 열창하는 정주영 회장. 89년 5월의 모습이다.

현대건설 인수 문제는 분명 범(汎)현대가를 뒤흔들어 놓은 핵폭탄이다. 일반 국민은 단순히 세계적인 건설사 또는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정주영의 회사’ 정도로 여길 수 있겠지만 현대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충격파를 던진 사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건설은 정주영 회장의 뿌리였고 현대가의 상징 기업이었던 만큼 그 의미가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그것을 현정은 회장 측에서 인수를 공식화하고 나섰으니 보기에 따라서는 적통성(嫡統性)을 주장해 온 현대가의 주요 인물들이 군말 없이 머리를 숙여야 하는 문제로까지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대건설은 현정은 회장과 현대그룹이 인수하겠다고 선수를 치고 나왔고(본지 931호 참조) 핵폭탄의 뇌관을 잡아당긴 것도 현 회장인 셈이었다. 그러자 현대가의 대부나 다름없는 김영주 한국프랜지 명예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발끈하면서 인수전에 맞불을 놓았지만 그동안 정부의 현대건설 매각 문제가 수면 아래로 잠수하자 숨을 돌리며 관망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채권단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 민영화 발표와 1대주주인 외환은행의 매각 의지가 맞물리면서 다시 현대건설 매각 문제는 M&A 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급부상했고 범현대가의 움직임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현 정부가 조직을 안착시키고 여러 정책이 안정적인 틀을 잡은 이후에나 현대건설 매각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을까, 그래서 잘해야 연말께 논의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었거든? 근데 뭐 모든 게 속전속결로 진행되는지 산업은행 매각 계획이 발표되더니 불쑥 외환은행이 다시 주간사를 선정하겠다고 나왔단 말이에요. 그러니 김영주 회장님도 그렇겠지만 누구보다 정상영 회장님 기분이 상당히 착잡할 거란 말이지. 김영주 회장님은 연세도 많고 해서 예전처럼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실 테니까. 특히 정상영 회장님이 더 스트레스를 받으시겠지. 하여간 이게 뜨거운 감자는 뜨거운 감자요. 그럴 거 아니오. 다른 기업들이야 인수를 했을 때 돈이 되겠느냐 하는 생각만 하는 거지만 현대 가문에서는 정서적으로 벌써 (현대건설을) 다른 가문으로는 절대 시집 못 보낸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사업다각화 나서는 중공업 정상영 회장에게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른다는 L회장은 2005년에 첫 시도됐던 현대건설 인수 문제가 불발 상태로 잠복한 이후부터는 그쪽(현대가) 정보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의 움직임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더라는 말로 ‘현대가 남자들’도 바짝 신경을 쓰고 있지 않겠느냐는 귀띔을 했다. 또 다른 현대 출신 P회장도 유사한 얘기를 했다. “최근에 보니까 현대상선 사장이 나서서 현대건설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새로 부임한 김성만 현대상선 사장이 현 회장의 사돈(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처삼촌)이라고 하던데, 나는 모르겠어. 웬만하면 그쪽 사람들을 다 아는데. 그 사람이 현대에 있었던 사람은 아니야. 근데 문제는 현대건설 인수가 단순하지 않다는 거지요. 매각자금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있지만 범현대가에서 볼 때 인수자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이거지. 그런 점에서 보면 사장이 바뀐다거나 명예회장님 7주기 때라든가, 그런 계기가 있을 때마다 현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에 집념을 나타냈는데, 저쪽(현대가)에서는 그런 코멘트를 듣고도 가만히 있기만 했겠어요? 그건 아닐 거다 그거지요.” 결과적으로 현대건설 인수 문제와 관련해 여전히 현정은 회장이 주도하는 현대그룹과 정상영 명예회장이 주도하는 KCC그룹이 경영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얘기였다. 물론 정 명예회장의 행동반경 중심에는 김영주 명예회장의 뒷받침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그보다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주체는 MJ(정몽준 의원)가 주도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이라고 보는 것이 재계에서 갖고 있는 보편적인 시각이었다. 그래서 현 회장도 한때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것인데 L회장이나 P회장은 MJ도 포함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입장을 보면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목격된다. 그것은 지난 3월, 중공업그룹이 현대오일뱅크 인수를 강력히 표출하면서 사실상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대건설도 사업다각화 선상에 올려놓고 줄곧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무리겠느냐 그것이다. “그건 지나친 해석입니다. 원래 현대오일뱅크는 원주인이 현대중공업이었고 그게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는 건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인수하겠다고 나선 거지요.”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오일뱅크와 건설을 연계시켜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앞서간다면서 강력히 차단하려 했지만 실상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수익구조 면에서 볼 때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만큼 그룹 관계자의 해명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산업이 영원히 성장산업으로 남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한 해 20조원이 넘는 매출 가운데 선박용 엔진을 포함한 해양플랜트 사업과 전기전자시스템 같은 조선 분야가 60%를 넘는 수익구조를 고집한다는 것을 누가 현명하다고 하겠는가. 자칫 조선산업이 휘청거리거나 사양화한다면 그만큼 리스크가 크고 위험하게 된다는 얘기다. 거기다 현대삼호중공업과 미포조선을 포함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산만 해도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사업다각화의 필요성은 분명해지는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본다고 해도 이미 현대건설은 옛 현대그룹에 있었던 기업이라 생소하지도 않고 적통성까지 감안할 때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 아니냐고 분석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시종일관 현대건설엔 관심 없다고 했다. 그게 진정성이 담긴 발언일까? 그 의문의 일단이 이른바 ‘정주영 유훈’과 관련된 비화로 남겨져 있어 이코노미스트에 처음 공개한다. 물론 비화는 중공업 고위 관계자의 ‘현대건설 무관심’ 발언과 상통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MJ를 포함한 최고위 임원들이 현대건설 인수 문제를 놓고 암중모색하고 있는 전략이 있다면 그것과 배치될 수도 있지만, 비화의 핵심을 분석 없이 공개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증언자는 두 사람이었다. 현대중공업 최고위 임원을 지낸 P씨와 현대자동차그룹 최고위 임원을 지낸 K씨다. “그 무렵(2005년 12월, 현 회장이 인수 의사를 분명히 했을 때)이지, 점심 먹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이 양반(K씨는 정몽구 회장을 상징하듯 엄지손가락을 세웠다)에게서 콜이 오는 거요. 낮술이라도 한잔했으면 갈 뻔했지. 뭔가 싶어서 급히 올라가니까 빨리 파악해 보라 이거예요. 언론들이 가끔 소설을 쓰니까 진짜인지 직접 확인해 보라 이거지. 근데 알아보니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지만 이미 현 회장 밑에 태스크포스팀까지 만들어가지고 번쩍번쩍 움직여 왔더라고? 채권단도 접촉하고. 그러니까 신문에 발표했을 때는 시작이 아니고 벌써 여러 가지 알아본 뒤에 자신감이 붙으니까 (언론에) 발표한 걸로 보이는 거예요. 야, 현 회장 보기보다 빠르고 치밀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이해찬 전 총리가 용산고 동문들을 총리공관으로 초대해 만찬을 할 때 동문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도 참석했다. 왼쪽부터 정상영 회장, 이 총리, 이양섭 동문회장(명신산업 회장).



-현대건설 인수에 몽구 회장님이 왜 관심을 가졌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으면 얘기가 안 되지. 물론 인수하실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현 회장에게서 (현대건설이) 튀어나오니까 그랬는지 그 양반 깊은 속까지야 얘기를 합니까? 모르는 거지. 하여간 현 회장이 이미 준비해 온 것 같더라고 보고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사실 현대가문에 불이 붙은 거 아니오, 그게?”

-몽구 회장님이 건설도 크게 했고 현대차그룹에도 건설회사가 있으니까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겠군요. 적통성 문제를 떠나서라도.
“하여간 그런 와중에 나하고 또 한 사람이 있었지만 특명이 떨어지는 줄 알고 우린 바짝 신경 쓰고 있었다고. ‘뒤져 봐’ 하면 어떡할 거요. 상선부터 재무구조 다 살피고 날밤 새워야지 별수 있어요? 그랬는데 그 양반이 우리 같은 진돗개 순종들(현대자동차 출신)은 전부 솎아내고 ‘잡종’들로 친위부대 만들고 하시더니 비자금 폭로되고 검찰이 들이닥치고, 뭐 그러는 바람에 현 회장한테는 관심을 못 두셨는데, 그러다가 현대상선 지분 문제가 불거지고 결국은 MJ한테로 싸움이 넘어간 거 아니오.” 정몽구 회장의 관심은 비자금 문제 때문에 수면 아래로 잠수하고 그 대신 ‘현 회장이 정가(鄭家)에 도전하는 거야?’ 하는 못마땅한 심기를 MJ한테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현대중공업이 현대가를 대표하듯 부상했다는 것이다. P씨의 증언도 일맥상통했다. “그거(현대건설 인수 발언) 때문에 MJ가 눈에 날을 세우고 비상을 걸었지요. (어떻게 비상을 걸었느냐고 하자) MJ 성격을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화가 났다 하면 그게 벌써 비상이오. 그 양반은 한 번 눈 밖에 나면 조찬회의를 하면서 옆에 같이 앉아 있는데도 눈길 한 번 안 준다고. 아주 무섭고 차가워요. 그러니까 눈 밖에 안 나기 위해서도 뭔가 알아봐야 하는데, 비상을 거는 사람은 가만 있어도 비상이 걸리는 우리가 떠는 거지요. 빨리 파악해 보라 이거야. 내가 그때 상황을 잘 알지만 당시만 해도 MJ가 건설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집안 어른들이 있는데 현 회장이 선수치고 나왔다는 걸 되게 못마땅해 했던 거예요. 지나고 보니까 그래. 그래가지고 혹시 상선이나 현대그룹에 정보망을 가진 친구들 없는지 샅샅이 알아보고 말이야, 요란했지, 하하.” “아, 적통 싸움이구나 깨달아” 실제로 현대건설 인수전이 당초의 스케줄과 달리 채권단의 이견과 정국 변수가 맞물려 연기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때 현대중공업그룹과 현대그룹이 붙었으면 소위 왕자의 난은 아니더라도 엄청난 싸움이 전개됐을지 모른다고 했다. 비록 가설이 되긴 했지만 그만큼 실탄을 비축하는 작전이 펼쳐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정상영 회장의 움직임이 언론에 포착된 것도 그때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L회장의 앞서 증언과 일치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현대건설 M&A가 산업계와 재계의 판도를 재편할 수 있는 태풍의 핵이었다고 해도 정주영 회장의 뿌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돌격하듯이 부딪쳤을까요?
“솔직히 나중에 생각하니까 적자논쟁이구나 하는 걸 느꼈지. 그 당시 우리로서는 큰 덩어리 싸움이다, 그렇게만 봤어요. 중공업이나 상선이나 싸운다면 배 때문인데, 그때 백기사니 흑기사니 난데없이 배가 아니고 말이 달려 나오고 막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먹느냐만 생각했지 진짜 처음에는 몰랐다고요. 얼마 지나면서 보니까 언론에서도 그러고 아, 이게 적자분쟁이구나 한 거예요.” 당시를 되돌아보면 갈수록 양측의 대결은 예측을 불허하는 쪽으로 흘렀다. 물론 현대중공업그룹은 우호 차원의 지분 매입이라고 했지만 당황한 현대그룹은 백기사를 자처했다면 매집한 지분을 되팔라고 저항했다. 재계에서도 현대중공업그룹이 상선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것은 현대그룹에 현대건설이 넘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MJ의 경고며 못을 박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현대가 남자들’의 당시 심정은 풀기 어려운 매듭이 이미 꽁꽁 묶이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부족하고 안타까운 면이 있더라도 정몽헌 회장의 핏줄(아들)이 있음에도 현 회장의 어머니 김문희 여사와 현 회장이 현대그룹 전면에 나선 것은 현씨와 정씨 가문이 결별하겠다는 신호탄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김영주 한국프랜지 명예회장의 단호한 주문(정상영 명예회장에게 인수하라)으로도 확인이 됐다. 물론 현 회장은 오해라고 일축했었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난 겁니까. MJ의 입장은 뭐였습니까.
“현대중공업에서는 그거(현대건설) 인수 안 합니다. 안 할거요.” <계속>


바로잡습니다 931호 77쪽 사진은 금강산 첫 관광시찰단의 모습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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