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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하러 왔지 음악하러 왔나”

“경영하러 왔지 음악하러 왔나”

▶1967년 11월 한일은행 입행 1993년 1월 한일은행 남대문 지점장 1996년 2월 한일은행 최연소 상근이사 1997년 3월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상무 1999년 5월 한빛증권(현 우리증권) 대표이사 사장 2005년 6월~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

상전벽해(桑田碧海). 2005년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지난 3년’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찾자면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법인화 이전 서울시향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했다. 규모가 작다 보니 공연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도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었다. 법인화 이전인 2004년 서울시향의 성적표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연간 총 관람객 2만4363명, 총 연주회 61회, 자체 수입 1억3720만원. 국공립 예술단체로서 예술성, 공익성, 수익성 모든 면에서 초라한 성적표였다. 특히 열악한 영업수지는 서울시향의 발목을 잡는 족쇄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예술단체다 보니 영업수지 악화는 곧 ‘세금만 축낸다’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었던 것. 서울시향은 3년여가 지난 지금 ‘확’ 달라졌다. 2만여 명에 불과했던 관람객은 2007년 16만여 명으로 무려 8배 정도 늘었고, 연주회도 121회로 2배가량 증가했다. 또 자체 수입은 33억원으로 2400%나 성장했다. 내세울 것 없던 영세 문화단체가 우량 문화공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고속 성장한 서울시향은 2007년 말 기준 국내 최고 오케스트라로 불렸던 KBS교향악단마저 뛰어넘었다. 지난 3월 ‘예술의전당’ 조사 결과 서울시향은 KBS교향악단에 비해 전체 연주회(1.3배), 전체 관객(1.5배), 유료 관객(1.2배), 공연 수입(1.6배), 전체 예산(1.6배) 등에서 전부 앞서 전국 20개 오케스트라 중 1위를 차지했다. 수도 서울의 대표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오케스트라로 거듭난 것. 법인화 3년여 만에 서울시향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이룩한 셈이다.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졸속경영이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문화 공기업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향의 우수한 성적표 비밀은 무엇일까. 지난 4월 2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위치한 서울시향 이팔성(64) 대표이사를 찾아간 이유다. 이 대표는 다음 달 임기가 끝난다. 사실상 현역에서의 마지막 인터뷰를 기자와 한 셈이다. 이 대표는 “기업은 저마다 달라도 경영의 틀은 똑같다. 핵심은 기업 경영여건과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혁신과 변화를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향의 고속 성장을 진두지휘했던 이팔성 대표는 음악에 조예가 깊을까. 답은 ‘아니오’다. 스스로 음악엔 문외한이라고 말할 정도다. “음악이오? 잘 몰라요. 하물며 클랙식이야(웃음).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교사가 되길 원하셨는데 제가 음악을 너무 못해 포기했을 정도죠.” 사실 이 대표는 금융 전문가다. 서울시향 취임 이전 그는 38년간을 한일은행(현 우리은행)과 한빛증권(현 우리투자증권) 등에서 일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자사 제품도 잘 모르는 CEO가 어떻게 좋은 경영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2005년 6월 비전문가인 이 대표가 서울시향에 취임했을 당시에도 이런 질문과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답은 간단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경영하러 왔지, 음악하러 온 게 아니잖아요. 음악이야 잘 아는 전문가들이 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정명훈씨를 영입했죠.” 즉 제품(음악) 생산과 디자인은 전문가인 정명훈 지휘자에게 전권을 맡기고, 이 대표는 잘 만든 제품을 홍보하고 영업하는 경영에만 전념했다는 것이다. 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전문가 체제를 문화재단에 전격 도입한 셈이다.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서울시향의 고속성장은 운과 함께, 특히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씨의 역할이 컸다”며 공을 넘겼다. 하지만 여건이 좋고, 잘 만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잘 팔리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여건에서 1등과 꼴찌가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어떻게 마케팅하고 영업하느냐다. 서울시향의 성공 키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이팔성 대표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문화재단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공짜표 관행이다. 그는 공짜표를 과감하게 없앴다. 지인으로부터 오는 요청도 마다하고 최대한 유료 관객 확대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시리즈 티켓, 회원제 도입 등 새로운 영업 시스템을 만들어 가동했다. 또 기업 협찬에도 직접 나서 우리은행, 하나은행, 엘지생활건강 등을 협찬사로 유치했다. 결과는 수치로 곧장 나타났다. 취임 이듬해인 2006년 서울시향의 수입은 23억원 정도. 이는 재단법인 이전보다 무려 20배나 많은 수치다. 또 유료 관객은 2배로 늘어 유·무료 비율이 3 대 7에서 7 대 3으로 역전됐다. 최근에는 8 대 2까지 늘었다. 협찬 기업에 제공하는 무료 티켓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체 유료화가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향의 재정자립도는 기존 제로베이스에서 20% 이상으로 올라갔다.
공기업 혁신의 본보기 보인 것
그렇다고 그가 돈 버는 데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수익성과 함께 문화재단으로서 공익성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지난해 서울시향은 121회 공연 중 30% 이상을 ‘찾아가는 음악회’로 잘 알려진 무료 시민음악회로 진행했다. “서울시향이 수익성만 추구한다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겠죠. 하지만 기업도 수익성만 추구한다면 고객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아야죠. 더욱이 서울시향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익성만큼 공익성도 추구해야 합니다.” 이팔성 대표가 임기 3년간 이룩한 서울시향의 성공 신화는 전국 교향악단은 물론 공기업 및 공무원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심지어 세계적인 석학들의 논문 자료로 쓰일 정도다. 실제 서울시향은 2006년 문화예술단체로는 처음으로 행정자치부로부터 ‘혁신브랜드 사업’으로 선정됐다. 이후 27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공무원을 대상으로 혁신사례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상태다. 또 최근에는 컬럼비아대 비즈니스 스쿨의 번트 슈미트(Bernd Schmitt·50) 교수가 서울시향의 혁신과 창의적 성과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번트 교수는 직접 이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번트 교수는 ‘체험 마케팅’ 이론의 대가로 소니, 포드, IBM, 지멘스 등 세계 유명 기업과 한국 롯데그룹의 컨설팅을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일반 기업도 아닌 문화재단의 성공 혁신 사례라 세간의 관심이 더욱 많은 것 같다”며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 재단이나 공기업 혁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된 것 같아 3년간의 노력이 보람 있다”고 밝혔다. 이팔성 대표의 성공 신화는 서울시향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금융업계에서 혁신적인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한일은행 시절에는 튀는 영업전략과 친화력으로 서울 남대문 지점을 전국 은행 5500개 지점 중 여수신 1위에 올려놨다. 이를 기반으로 당시 그는 한일은행 최연소 임원이 됐다. 이후 우리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그의 혁신은 빛을 발했다. 임기 동안 순위권 밖에 있던 우리증권을 톱10에 올려놨고, 2000년 바이코리아 이후 증권 업계가 적자경영에 허덕일 때도 줄곧 흑자경영을 이어갔다. 최근에야 보편화된 BIB(은행 내 점포)도 우리증권 사장 시절 그가 만든 지점 모델이다. 최근 정부의 공기업 인적 쇄신 작업이 펼쳐지면서 이팔성 대표는 금융공기업 수장으로 하마평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하마평엔 금융 전문가이자 영세한 문화재단을 우량 문화 공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이력과 경영 능력이 한몫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팔성 대표 경영성과
관객 수 : 2만4363명 → 16만4645명으로 = 8배 증가

공연 횟수 : 61회 → 121회 = 2배 증가

자체 수입 : 1억3720만원 → 33억1729만원 = 2400% 성장

성장 순위 : 2007년 기준 전국 20개 오케스트라 중 1위 ※경영성과는 2004년과 2007년 비교, 성과 순위는 예술의 전당 조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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