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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색깔이 더 푸를까

누구 색깔이 더 푸를까

미국인들은 이제 기후변화를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통령 후보를 원한다. 지구가 위험에 빠졌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문제의 핵심을 “편견 없이 탐구하겠다”고 말하는 후보, “과학에 철저히 기초한” 규제를 지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후보를 말한다. 어쩌면 조지 W 부시 같은 사람일지 모른다. 그는 2000년 대선에서 바로 그런 언급으로 선거운동의 중대한 이슈로 삼았던 지구온난화 위기 해결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유권자들에게 확신시켰다. 그러나 막상 취임하고 나자 유권자들은 실망했다. 부시는 지난 7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부시는 지난해 말 기자회견에서 “저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합니다”고 말했다. 물론 2000년 당시에도 환경단체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앨 고어 후보와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생각했다. 고어는 자신의 뜻을 계속 견지해 지구온난화 저지 캠페인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는 환경단체 지도자들이 유권자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보통 환경 문제는 유권자들의 관심사 중에서 ‘규제개혁’과 비슷한 순위에 들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여론조사 전문가 존 조그비에 따르면 지난해 유권자 30% 이상이 후보자의 환경보호 실적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2005년만 해도 11%에 불과했다. “경선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번 선거운동은 환경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는 점이 확실했다”고 미국 최대의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데이브 윌릿 대변인이 말했다. “유권자들의 질문이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였다.” 기후변화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은 지구온난화 위기를 언론이 조작한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환경보존유권자연맹(LCV)은 후보들이 TV토론이나 인터뷰에서 환경 문제에 관한 질문을 얼마나 받느냐를 조사하는데, 4월 중순 현재 5대 네트워크 방송사의 기자들이 후보들에게 던진 질문 3231가지 중 정확히 8가지만이 지구온난화와 관련됐다. 따라서 언론이 위기를 과장한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LCV는 국내 정치에 관한 한 주요 환경단체의 생각을 대개 그대로 따른다. 이 단체는 아직 2008년 대선의 지지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구체적인 지구온난화 계획을 내놓기를 기다리면서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LCV가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하면 엄청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1980년 대선 후보 지지를 시작한 이래 한 번도 공화당을 선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07년 상원의 표결 실적(농업보조금, 자동차 연비, 생물연료 기준 등을 포함한 15가지 주요 환경 문제 사안)에 근거한 LCV 평가에서는 대다수 민주당 의원이 상위 절반에 들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몇몇 경우(메인주의 수전 콜린스와 올림피아 스노이)를 제외하고는 전부 하위 절반을 차지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환경 문제를 중시하는 후보로 간주된다. LCV는 연례 순위뿐 아니라 개인별 누적 종합 평가도 실시한다. 그런 평가가 단 한 해의 표결 행위에 기초한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오바마는 누적 평가에서 96%를 기록했다. 힐러리는 90%였고, 2006년 상원의원 재선 운동에서 LCV에 의해 ‘환경 챔피언’으로 지명됐다. “두 사람 모두 표결 실적으로 볼 때 에너지 효율성과 지구온난화 완화를 적극 지지한다”고 이 연맹의 대변인 제이 나톨리가 말했다. “누구의 정책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비슷하다. 매케인의 경우 정책이 강력하지는 않지만 환경을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법안을 입안하고 지지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아직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대다수 환경운동가는 매케인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듯하다(물론 그랬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주요 공화당 경선 후보자들 중에서 그래도 매케인이 가장 환경의식이 높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탄소배출 제한의 필요성에 관해 부시 행정부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공화당 후보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교수인 댄 캐먼이 말했다. 그는 에너지 정책의 권위자로 매케인, 오바마, 힐러리 후보 모두에게 조언을 했으며 현재는 오바마를 위해 일한다. “환경 문제에 관한 한 후보 서로 간의 이견보다는 현 정부와의 이견이 더 크다.” 물론 2007년 LCV가 채점한 매케인의 환경평가 점수는 ‘0%’였다. 지구온난화를 전면 부인하는 제임스 인호프를 포함해 다른 공화당 상원의원 8명과 같은 실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케인이 15가지 주요 사안에 대한 표결 전부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LCV는 표결 ‘불참’을 ‘반대’로 간주한다. 물론 매케인은 지난해부터 대선 운동을 했다. 하지만 오바마와 힐러리 등 다른 민주당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매케인이 예비선거에서 필요한 보수적인 유권자들이나 오는 11월 결선에서 필요한 온건한 유권자들 두 부류 중 하나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표결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의미 있는 통계인 누적 실적에서 매케인은 26%를 기록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평균은 16%였다. 2004년 108대 의회에서 그의 점수는 56%에 달했다. 그래서 LCV는 그의 재선을 지지했다. 매케인이 일부 환경운동가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은 서부 애리조나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으로서 때때로 진정한 신념에서 공화당의 공식 노선과 의견을 달리한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2003년 매케인은 코네티컷주의 조 리버먼 상원의원과 함께 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최초의 법안을 발의했다. 물론 통과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요즘 환경운동가들은 더 새롭고 강력한 법안을 지지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획기적인 법안이었다. 또 매케인은 국립북극야생보호구역을 보존하는 문제와 자동차 연비 기준에서도 환경운동가들의 편에 섰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같은 애리조나주 출신의 민주당 하원의원 모 우달에게서 환경 의식을 전수 받았다고 말한다. “모와 나는 애리조나주 전역을 자동차로 돌아다니며 인디언들을 만나고 자연을 살폈다”고 그는 2005년 멘즈 저널지에 말했다. 환경운동가들은 모 우달을 거의 ‘성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매케인이 우달과 함께 다니며 환경의식을 키웠다는 얘기는 앨라배마주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민권에 관해 배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상원 표결 실적이 민주당 하위그룹과 같은 순위에 드는 매케인이 민주당 후보들보다 환경에 관해 더 열정적이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민주당 후보들은 당의 공식노선을 따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결 실적은 여러 가지 고려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환경단체들은 올해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도 평가한다. 그 점에서 환경운동가들은 민주당의 두 후보 오바마와 힐러리가 매케인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힐러리와 오바마 둘 다 똑같이 탄소 배출 종량거래제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촉구한다.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경매한 뒤 기업들 사이에서 이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두 후보는 똑같이 2050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80% 감축을 목표로 한다. 대다수 과학자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를 막으려면 최소한 그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케인의 계획도 비슷하다. 그러나 좀 더 낮은 목표를 설정했다. 또 환경운동가들이 별로 환영하지 않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우리는 그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전에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기 기다린다”고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 대변인 닉 버닝이 말했다. “아직 기회가 있다.” 힐러리와 오바마 둘 다 2025년까지 재생가능 에너지원에서 전체 전기의 25%를 얻고, 2030년까지 연간 생물연료 600억 갤런을 생산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매케인은 핵 발전에 좀 더 적극적이다. 환경운동가들이 경계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부는 화석연료를 더 태우느니 핵 발전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기 정책을 의회에서 그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강조점이나 문구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널리 공감대가 형성되는 환경운동의 부상이 더 중요하다. 해안의 호화 별장을 갖고 있으면서 해수면 상승 효과를 우려하는 엘리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정책은 별 의미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흑인 정치인들이 환경 문제를 말할 때면 대부분 납 성분이 든 페인트와 도심의 대기오염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오바마는 고향 하와이의 산호초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얘기를 한다. 그 산호초들은 지구온난화로 위협받고 있다. 힐러리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에 속하는 공장 근로자들은 한때 환경운동이라고 하면 자기가 다니던 공장을 폐쇄하려는 음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제니퍼 그랜홈 미시간 주지사와 데비 스테이브나우 상원의원 같은 공업지대 출신 정치인들은 풍력 터빈을 제조하는 ‘그린 칼라(green collar)’ 산업을 유치하고 싶어 한다. 또 ‘에너지 독립’ 주창자들은 한때 미국 본토나 인근 해역에서 더 많은 석유를 퍼내는 것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도 환경보존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UC 버클리의 캐먼은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든 취임 첫 100일 동안의 의제로서 강력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오는 11월 선출하는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한다. 기한이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지구온난화 국제협약이 논의되는 해다. 그 협약은 21세기 전반부의 에너지와 기술 변화의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미국이 그 과정에서 목소리를 가지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친환경 노선을 포용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금 경쟁하는 후보들의 입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엿보인다.


With DANIEL STONE in Washington and KAREN BRESLAU in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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