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근육 풀고 ‘눈으로 말해요’
스타 강연자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가 운영하는 ‘아트 스피치’ 강좌를 찾아가 보니 20여 명의 CEO가 저녁 8시가 넘도록 남훈 브랜드 매니저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구본천 LG 벤처투자 사장, 서동수 두산중공업 부사장, 원희룡 국회의원 등이 이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이들은 왜 스피치 강좌를 들을까. CEO가 부하직원에게 존경 받고 싶으면 잘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말’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가 CEO가 꼭 알아야 할 스피치 잘하는 법을 소개한다.
#1. 뻔하지만 듣게 하려면? 한 편의 영화처럼 이야기하라 대체로 CEO가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뻔하다. ‘지난해 수고했습니다’ ‘올해도 잘해 봅시다’ 같은 말들이다. 자칫 20년 전 뙤약볕 아래서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시처럼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똑같은 신데렐라 스토리라도 흥행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법이다. 공통점은 ‘스토리 자체가 탄탄하다는 것’이다. 영화 ‘실미도’의 작가 김희재 추계예술대 교수가 말하는 청중을 잡아당기는 스토리텔링의 비법은 뭘까. 그는 “일단 뻔한 얘기가 좋다”고 말한다. 대체로 연설할 때 폭탄선언을 하기 위해 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연설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청중도 원하는 것이다. 청중은 공감하기 위해 강연을 듣는다. 이것이 흥행영화의 기본법칙이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이야기처럼 신선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설명하지 말고 설득하면 흥행에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설명은 추상적인 단어들의 나열이요, 설득은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것이다. ‘무엇을 하라’는 것만 말하지 말고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라는 얘기다. 대중은 풍부한 사례를 통해 주장에 도달하면 동의하고 싶어지고, 동의하게 된다. 연설하기 위해 연단에 선 사람에게 계란을 던지기 위해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비전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문제는 ‘믿습니까!’라는 마지막 결정타를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CEO는 ‘나를 따르라’나 ‘믿습니까’만 외친다. 김 교수는 또 유머 감각을 강조했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과 유머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정적’을 택하는 편이 낫다. 영화에서도 잠시 쉬어가는 샷이 있게 마련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눈맞춤을 시도한다면 청중은 집중할 것이다.
#2. 언론과 인터뷰를 한다면? 유도 질문에 넘어가지 마라 언론과의 인터뷰는 구력이 높은 CEO에게도 부담이 된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 당장 내일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경험이 없는 CEO라면 떨리지 않을 수 없다. 허경호 경희대 교수는 “좋은 인상을 형성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기자나 앵커)과 만나는 순간부터가 인터뷰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인터뷰 시작 전 유쾌한 인사, 적절한 악수, 눈맞춤을 많이 한다면 좋은 인상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맞춤도 역시 중요하다. 보통 기자와 함께 오는 것이 카메라인데 카메라의 위치를 바로 옆에 오도록 해 카메라를 보지 않고 질문하는 사람을 보며 대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때 다리를 꼰다거나, 팔짱을 낀다거나, 고개가 기운 상태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또 카메라에 부담을 느끼는 CEO가 많은데 반복해서 찍을 것을 요구하기 전에 첫 인터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하다 보면 더 어색할 수 있다. 기자가 질문할 내용을 사전에 알 수 있는 경우, 질문에 따른 답을 준비해 두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어떤 취지로 이야기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낫다. 꼭 질문지대로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답은 2~3가지 정도로 요약해 정리하거나 기억해 둔다. 미리 어느 선까지 이야기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둔다면 유도 질문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다. 유도 질문을 피하겠다고 자신이 무리하게 인터뷰를 끌어갈 필요도 없다. 인터뷰는 보통 요청하는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고 CEO는 적절한 대답을 해 주면 된다.
#3. 서툰 영어로 연설한다면? 당황하지 말고 SMILE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힘든데 영어로 하라면 죽을 맛이다. CEO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어디에 가서도 기 죽지 않고 당당하게, 심지어 웃기기까지 하는 MB식 영어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영어스피치 컨설턴트 조이스 백은 MB식 영어의 장점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보디 랭귀지(body language)’에 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구사하는 영어단어 수는 많지 않지만 핵심을 찌르거나,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셋째, 격식 안 따지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 준다. 백씨는 “일단 표정관리부터 할 것”을 주문했다. 영어로 말한다고 하면 긴장된 얼굴로 청중을 불안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피치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디 랭귀지도 포함돼 있으므로 표정부터 부드럽게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는 또 “영어로 말할 때 외국인들은 완벽한 문법과 발음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딱딱한 표현과 전문용어를 사용하기보다 쉽고 간단한 평소 생활에 쓰는 말들을 하면 좋다.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는 여러 번 큰소리로 연습하고 이름, 지역, 회사 이름의 발음이 틀리지 않도록 미리 알아둔다. 한마디로 ‘KISS’ (Keep it short and simple)다. 그래도 백지 상태에서 갑자기 영어로 연설하라면 말문부터 막히기 쉽다. 원고는 외워두는 것이 좋은데, 시간이 없어 미처 외우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백씨는 “항상 첫 몇 문장은 외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요한 표현을 외워두면 좋다. 이야기 흐름이 바뀌는 부분을 신경 써서 외워 두면 말하는 도중 말문이 막힐 확률이 낮아진다. 전환문구(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등)를 사용하면 스피치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청중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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