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야채 장수 한숨 속 ‘나 홀로 출근’
[양재찬의 프리즘] 야채 장수 한숨 속 ‘나 홀로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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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도무지 멈출 줄 모른다. 5월 22일 장중 배럴당 135달러도 넘어섰다. 이미 지난해 이맘때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하반기 중 150달러 돌파에 이어 2년 내 200달러 설까지 나왔다. 고유가 쇼크로 세계 경제가 비틀거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1일 올해 미국 경제의 성장률을 지난 1월에 제시했던 1.3~2%보다 최고 1%포인트 낮은 0.3~1.2%로 낮춰 잡았다. 다급해진 미국 의회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산유국에 대해 석유 공급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행정부는 국가 비상시를 대비해 저장하는 전략 비축유 구매를 5월 16일부터 6개월 동안 중단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겨온 미국인의 생활과 의식구조도 변했다. 고급 백화점이 파리를 날리는 가운데 99센트 스토어와 아웃렛, 할인점은 손님들로 북적댄다. ‘휴일은 놀러 나가는 날이 아니라 집에서 쉬는 날’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승객 수하물에 4월부터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석유 소비가 많기도 하지만 매장량도 풍부한 미국이 이럴진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원유 수입 규모가 세계 5위인 한국은 천하태평이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 이용 승객이 늘긴 했어도 여전히 나 홀로 차량이 많고 찜질방과 유흥업소는 심야영업을 계속한다. 정부는 “소득이나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아직 2차 오일쇼크 수준은 아니다”며 느긋해 하고, 국민은 “언젠가 떨어지겠지”하며 막연히 기다리는 모습이다. 정부나 국민이나 집단 무감각증에 빠져 있다. 연간 원유 수입량이 8억 배럴이므로 단순 계산하면 유가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수입액이 80억 달러 늘어나는 데도 말이다. 그동안 MB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게 실내 냉난방 온도 제한, 연비 1등급 차량 통행료 할인 등 4월 24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 발표한 에너지 절약 방안인데 시행에 들어가기도 전에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건물 에너지 효율 등급제를 확대 시행한다는 것 정도가 현실적인 대책으로 평가 받을 정도다. 이런 판에 주유소에서 파는 경유 값이 휘발유보다 비싼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5월 21일부터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경유 가격을 사상 처음으로 휘발유보다 높인 데 따른 것이다. 정유사는 휘발유보다 비싼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시장의 경유 시세를 반영해 주유소 공급가격을 결정한다. 5월 첫째 주(5~9일) 국제 경유 가격은 배럴당 149.89달러, 휘발유 가격은 124.57달러였다. 이것이 둘째 주(12~16일)에는 각각 162.75달러, 129.48달러로 올랐다. 국제 경유 가격이 휘발유 시세보다 3배 가까이 뛰었다. 국제 경유 가격은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고도 성장에 지진 피해 복구용 수요가 가세했고, 인도·브라질 등 신흥 공업국의 수요가 급증해서다. RV나 SUV 차량 소유자야 불편해도 차량 운행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오늘 저녁 퇴근길에도 마주친 1t 트럭에 과일·야채·생선 등을 싣고 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경유는 산업용 기름이자 서민의 생업수단과 직결되는 연료다. 지난해 7월 경유에 붙는 세금을 ℓ당 34.5원 올린 2차 에너지 세제개편의 목표가 휘발유 대비 경유 가격이 100 대 85인 만큼 경유 값은 세금 인하를 통해 낮춰야 한다. 아울러 국제유가 오름세의 장기화에 대비해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가 있는 대책을 짜 실행해야 한다. 연료를 적게 먹는 경차와 소형차 보급을 더욱 장려하고, 하이브리드나 연료전지차 등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의 개발·보급도 서두르자. 산업체는 에너지를 덜 쓰는 설비로 바꿔가고,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에너지 절감 방안을 범국민운동으로 펼쳐 나가자. 정부와 국민의 집단 무감각증이 유가 폭등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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