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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경제블록 뜬다

실크로드 경제블록 뜬다

▶세계에서 가장 자금이 풍부한 중국과 중동 간 교역이 급증하며 ‘비단길’이 다시 열렸다.

인간의 사업은 가장 실제적일 때 가장 생산적인 경향을 보인다. 전설의 실크로드를 따라 약 1600년간 상거래가 번창한 때도 그랬다. 각료나 정치인들이 아닌 상인 간의 거래였기 때문이다. 민족국가와 그것을 정한 국경보다도 먼저 생겨난 이 세계 상업의 대동맥은 세금과 규제가 가벼웠으며 오늘날의 자유무역 협정들에 장애가 되는 정치적 지원책과 보조금도 없었다. 좋든 나쁘든 근로자들의 최저 생계비를 요구하는 노조도 없었고 높은 배출기준을 외치는 환경단체와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하는 인권단체도 없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운 세대의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고대의 향신료 거래를 부활시키고 일단의 현대적인 제품들로 실크로드를 다시 세계 상거래의 중심으로 복원했다. 미국에서 기회의 문이 닫혀 있는 동안(미국의 경기가 둔화되고 투자환경이 갈수록 아랍인들과 중국인들에게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시아와 페르시아만 사이에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 중국과 아프리카 간의 유대강화는 자원 제국주의의 성격이 강하다고 공격받았지만 베이징과 중동의 유대 강화는 대등한 결합이다. 새로 부를 축적한 중국 제조업체들과 중국만큼이나 오랫동안 제약을 받지 않고 왕성하게 장사해 온 돈 많은 석유 왕족들 간의 거래다. 처음엔 아랍의 석유와 중국의 자본 간 단순한 맞교환으로 시작됐지만 그후 금융, 부동산 개발, 공업, 관광 분야에서의 쌍방향 교역망으로 확대됐다. 세계에서 가장 자금이 풍부한 두 지역 경제가 새로운 상업 블록을 형성하며 세계 경제의 균형을 바꾼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경기침체 위기에 처해 있지만 중국과 중동은 성장을 계속하며 빠른 속도로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아직도 확실히 대서양을 넘나드는 구미(歐美) 간 통상 루트가 세계의 주요 무역 채널 중 가장 규모가 크다(작년 무역과 투자 규모 1조5000억 달러). 그리고 유럽연합과 미국은 여전히 중국과 상당수 중동 석유부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그러나 신(新)실크로드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두바이 국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중국과 중동 간의 교역 규모가 2000년 이후 2400억 달러로 갑절이 됐으며 향후 10년 동안 그 몇 배가 더 증가할 전망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아랍에미리트(UAE)의 대(對)중국 교역규모는 2006년 142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1000억 달러로 7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우리는 세계 경제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고 미국의 대형 사모펀드 칼라일의 공동설립자 데이비드 루빈스타인은 최근 한 투자포럼에서 말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중동과 아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상품과 석유의 거래뿐 아니다. 아시아와 중동은 세계에서 잉여자금 보유액이 가장 많으며 그중 상당액을 세계 10대 국영펀드 중 6개가 운용한다. 따라서 미래의 초대형 금융거래는 신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컨설팅업체 JL 맥그리거는 이번 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중동 자금 규모가 앞으로 5년 새 2500억 달러에 달할 걸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또 그 금액을 2003년 이후 미국으로부터 빠져나간 중동 투자자금 2000억 달러와 비교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의심스러운 자금흐름을 차단하고 아랍의 투자자금을 적대시한 결과다. 지구온난화부터 식량부족 등 모든 문제를 무역 탓으로 돌리는 상황에서 신실크로드는 성가신 NGO(비정부기구)의 제약도 크게 받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오로지 돈이 최고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콜롬비아·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과의 시시한 자유무역협정(민주주의와 미국 국가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부시는 주장한다)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얻으려 애쓰는 동안 아랍과 중국의 사업가들은 자유 경쟁을 통한 거래를 한 번 할 때마다 매번 가공할 만한 경제블록을 쌓아올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업은 가장 열려 있는 시장으로 흐르는 법이다. 게다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외국인(특히 아랍과 중국) 투자가 역풍을 맞았다. 2006년 이후 중국의 유명한 두 기업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안보 우려를 앞세운 정치 공세 때문에 미국 기업의 지분 인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두바이 항만(Dubai Ports World)도 비슷한 시비로 미국에서 손을 털고 나와야 했다. 세 회사가 모두 그뒤로 사업환경이 더욱 우호적인 신실크로드를 찾아간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올초 두바이 항만은 중국 톈진(天津)에서 컨테이너항을 공동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만 해도 CNOOC와 화웨이는 각각 카타르와 UAE에서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지나가는 사업가 아무나 붙들고 미국에서의 사업에 관해 물어보라”고 UAE의 국영 투자기구 무바달라의 아슈라프 함디 푸아드 고문은 말했다. “그러면 ‘시간낭비다. 미국인들이 이번 고비를 넘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두바이 인터내셔널 캐피털과 홍콩의 퍼스트 이스턴 인베스트먼트 그룹은 지난달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를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기업의 아랍 증시 상장에 대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는 중동 자본시장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확실한 신임투표였다. 이 펀드는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다. 페르시아만 자본시장은 상장기업과 유동성을 새로 확보하는 반면 중국 기업은 국내의 기업상장을 지연시키는 관료적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똑같이 역동적인 경제에서 자금원을 새로 확보하기 때문이다. “중국 증시에서 상장을 기다리는 현지 기업이 약 50만 개에 달하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아부다비의 호화로운 에미리트 궁전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의 강연 막간에 퍼스트 이스턴의 엘리자베스 칸 상무가 말했다. “이들 기업 중 일부를 페르시아만 증시에 상장할 수 있다면 몇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일부 경제전문가의 주장대로 개도국들이 실제로 자생력을 갖춘 지역경제권 네트워크로 성장한다면 그런 과정의 진앙지는 필시 중국-아랍 축이 될 것이다. 양쪽 모두 교역 규모는 유럽이나 미국보다 작지만 증가율은 훨씬 더 높다(미-중 간 교역 증가율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낮다). 중국과 아프리카 간 교역은 활발하고 빠르게 성장하지만 자금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 중국은 자원이 풍부한 라틴 아메리카 시장의 비중도 높여가려 하지만 이 통상 채널의 규모는 작년 300억 달러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유가가 폭락하면 페르시아만 국가를 중국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 만든 자금줄이 끊기면서 중국-중동 무역의 불씨도 꺼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중동의 재무회계는 불투명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돈이 그 지역에서 유통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자금을 활용할 만한 채권시장도 아직 없다. 물가는 위태로운 수준까지 올랐다. 높은 소비수준뿐 아니라 중국 위안화와 페르시아만 지역의 통화가 연동된 달러가 약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시아-중동 루트가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이지만 여전히 세계의 성장동력인 미국의 소비가 급감하면 언제 제동이 걸릴지 모른다. 중국과 페르시아만 지역의 교역 상대국들엔 다행스럽게도 신흥 중국-아랍 블록은 대체로 세계 신용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둘 다 큰 빚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아랍세계의 대다수 민간기업과 국영기업들은 부채가 없으며 소비자들도 대부분 신용위기를 초래한 복잡한 파생 금융상품은 말할 것도 없이 은행계좌, 연금펀드 또는 증권계좌조차 없다. 페르시아만 국가와 중국의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투기꾼들은 거덜날지도 모른다. 시장 참여자들이 비교적 적은 탓에 가격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이후 아랍 지역 주가는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두 번이나 곤두박질했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실질 경제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아 양 지역 경제는 계속 탄탄한 성장세를 보인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뭐든 위협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좋게 말해 워싱턴과의 관계가 ‘복잡한’ 중국과 중동 두 지역의 상업적 통합에 이미 워싱턴은 경계하는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한때 씀씀이가 헤펐지만 지금은 몸을 사리는 미국인 소비자들에 오랫동안 의존했던 세계 경제에 새로운 성장엔진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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