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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주판은 엎어놓고 시작한 거야”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주판은 엎어놓고 시작한 거야”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날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양봉웅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은 대형 교량건설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건설업계에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은 저마다 각 분야에서 특별한 노하우와 흉내 낼 수 없는 기술로 대접받는데 그는 교량공사 분야의 정상급이었다. 그러나 건설부 과장에서 현대건설 현장소장으로 스카우트되어 당장 시급한 당재터널 공사에 투입됐으면 터널공사에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 ‘건설쟁이’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훗날 정주영 회장의 4남(당시) 정몽우 회장 자살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자신의 집(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괴한에게 피습 당한 사건이 발생해 여러 가지 풍문으로 시달리기도 했지만 건설인으로서 맡은 일만큼은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철저히 했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항상 정 회장처럼 헐렁한 옷차림으로 현장에 나타나는 양 회장이 고려산업개발 재직 때 고속도로공사 시절을 회고한 내용은 그가 얼마나 혹독하게 일과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인데, 지금도 이렇게 마른 체구입니다만 이런 체구 가지고 하루 4시간도 채 못 잤어요. 그러고도 공기를 맞췄다는 걸 생각하면 정신, ‘깡다구’로 버틴 거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몸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매일 현장을 독려하면서도 결재 도장 찍어야지, 아무리 적은 날도 하루 사오백 개씩 도장을 찍어야 됩니다. 그것도 현장 때문에 심야에 혼자 남아서 도장 찍고. 그때 사무실 뒤에 숙소를 지어놨는데 저녁에는 사무실에 사람들이 많아 복잡합니다. 그러면 숙소에 들어가서 자다가 12시 지나면 조용하니까 그때 사무실로 나와서 밤을 새우며 결재 서류를 보지요. 그러면서 다시 현장 다 돌아다니고.현장은 24시간 떠날 수 없어요. 기능직들이 24시간 일하는데 책임자들이 얼굴을 안 보이면 됩니까. 자다가도 일어나서 현장 돌아다니고 그러는 거죠.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얘기일 겁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근로 조건이 어떻다느니 복지가 어떻다느니, 심지어 가정이 직장보다 우선이다 어쩌고 하는데 기막힌 얘기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을 해요? 세계 어느 선진국이 선진국 되기 전에 복지 따지고 근로조건 따졌습니까? 선진국은 멀었는데 최고 선진국 대우부터 요구하고 있으니 정신상태부터 글렀어요. 우리 세대에 선진국 되기는 틀린 것 같아.” 양 회장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선진국은 상대적인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 된다면 다른 선진국들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상대평가를 한다면 생산성부터 이대로는 어림없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당재터널이 관통되지 않으면 고속도로 전체 구간 개통이 되지 않고, 날짜는 잡혀 있고, 정 회장께는 어떤 방법을 건의했습니까?
“그것도 암반이 제대로 안 나와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가 없으니까 건의를 드렸는데, 이 상태로 가다가는 공기 내에 끝내지 못한다고 그랬죠. 암질이 나빠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이지요. 별짓 다 해봤거든요. 그걸 명예회장님도 보셨으니까 알고 계신단 말입니다. 그래서 끝을 보려면 조강(早强)시멘트를 쓰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그랬어요. 조강시멘트를 써야지 일반시멘트 가지고는 콘크리트를 쳐봐야 마르기 전에 또 무너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도저히 공기 내에 끝낼 수가 없다고 그랬죠.” 대개 일반 콘크리트는 타설을 하고 일주일 정도는 지나야 굳기 때문에 다음 단계인 발파를 하자면 물리적으로 1주일은 필요했다. 그러나 조강시멘트는 12시간 만에 발파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시멘트의 질이 달랐다. 입자가 곱고 굽는 온도가 높아서 강도도 일반시멘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고 생산량이 제한적이라는 데 있었다.

-건의를 받고 정 회장께서는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한참을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때 느낌이 명예회장님도 조강시멘트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오신 것 같아요. 근데 워낙 당재터널에서 낙반사고가 많으니까 그것도 확신이 안 서고, 시멘트 가격도 장난이 아니니까 고민을 좀 하셨는데, 건의를 드리니까 탁 그러시는 겁니다. ‘조강(시멘트)을 갖다 주면 사고 없이 공기 내에 끝낼 자신 있어?’ 네가 그렇게 판단을 하느냐는 말씀이지요. 그 말씀 들으니까 그 다음엔 내가 겁이 덜컥 나고 식은땀이 솟습디다. 현장소장이 뱉은 말은 신용을 잃으면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개통 전에 끝내겠습니다.’ ‘그럼 진작 얘기했어야지!’ 됐다 싶었는지 웃으시더라고요. 근데 그 다음 말씀이 정말 극적이었고 나도 감동했었는데, ‘고속도로 시작할 때 이미 주판은 엎어놓고 한 거야. 중단할 수는 없잖아. 타산을 못 맞출 바에는 공기라도 맞춰야 되겠어. 단양시멘트 공장장 당장 불러!’ 야, 그때 표정이 너무 결연하고 강해요. 공장장 세워놓고 명예회장님이 직접 지시를 하는 겁니다. ‘현재 생산하는 시멘트는 중단하고 당장 조강시멘트 생산 체제로 돌려!’ 그 소릴 듣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말이죠, 그게 생명수였어요.”

▶경부고속도로 최대의 난관이었던 문제의 당재터널. 지금은 옥천터널이라고 불린다.

“내가 안 보이면 요령 피운다”

-현대시멘트가 단양시멘트에서 상호를 바꾼 건데, 난데없이 단양시멘트 공장도 비상이 걸렸겠군요.
“단양에선 난리가 났지요. 생산 중단하고 조강체제로 바꿔야 하니까 오죽했겠어요? 그런데 조강시멘트를 생산하라는 것까지는 좋았죠. 생각지도 않게 공장장이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감히 명예회장님 앞에서는 누구도 다른 얘기를 못하는데 공장장이 당차게 나오더라고. ‘저희는 생산만 하면 됩니까?’ 이 소리를 한 거예요. 공장장 말이 맞지. 명예회장님도 잠시 멍해지고 나도 멍해지고. 수송을 생각 못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당시는 철도 화차를 배당 받아야 되잖아요? 그걸 알아봤더니 그게 또 안 된다 이거죠. 회장님이 성질이 났어요. ‘화차 배당이 안 되면 육로로 해!’ 어차피 주판을 엎어놓고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건 엄청난 겁니다. 돈으로는 환산을 못할 정도예요. 시멘트를 수송하는 차가 어디 놀고 있나요? 다른 공사장에 가야 할 차들이 전부 동원돼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공사장은 어떻게 됩니까? 올 스톱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 그 손해가 얼맙니까. 그런데도 육로로 하라는 거지요.” 단양에서 옥천까지는 무려 190여km에 이른다. 특정인을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니까 포장된 길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비포장 190여km를 달려 단양에서 공사현장까지 육로수송을 하도록 했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강시멘트로 효과는 나타났습니까?
“12시간 만에 발파하고 진척이 빨라진 거지요. 나 역시 조마조마했던 건 사실이지만 낙반사고 한 번 없이 해낸 겁니다. 조강을 치지 않았으면 절대 공기 내에 할 수도 없었고 개통식을 연기해야만 했을 겁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터널이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그때 금전적인 손해는 계산도 못해 봤어요. 하여간 그렇게 힘들고 주판까지 엎어놓고 하고 있는데 계속 건설부에서는 초조하니까 감사실장 보내고, 기획실장 보내고, 건설국장 보내고, 전부 내려 보내서 묻는 거예요. 그 당시에 김용석씨라고 도로국장이 있었는데 찾아왔어요. ‘어떻게 되는 거냐, 각하 스케줄 때문에 죽을 노릇이다.’ 공무원들은 개통보다 솔직히 자기 목이 더 걱정이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안전하게 끝낸다. 끝내는데 6월 30일을 D-데이로 해서 다른 공사 구간보다 단 하루라도 먼저 끝낸다. 그러니 예정 공기 안에 끝난다고 보고해라.’ 그랬더니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정말이냐는 거지요. 근데 내가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느냐, 기업주가 주판을 엎어놓고 한다고 할 땐 안 될 게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6월 28일 새벽 1시에 끝냈으니까요. 그러니까 3일을 앞당긴 겁니다. 그래가지고 개통식이 7월 7일인데 6일 저녁에 보니까 대구에서 왜간 구간은 그때까지도 일이 덜 끝나가지고 기름 방망이 들고 야간작업 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어요, 하하하.”

-훗날이지만 정 회장께서도 사실은 초조했고 며칠씩 밤을 새웠다고 하던데 그럴 땐 중역들도 전부 같이 현장을 지킵니까?
“어휴…. 누구 눈치 봐서 일하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명을 걸고 했다는 게 맞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즐겁게 타고 달리지만 그냥 태어난 게 아니에요. 정 회장님뿐입니까? 김영주 회장님은 아예 십장처럼 악을 쓰시면서 다그치고 그랬지요. 완전히 전쟁이었고 계급장이 다 날아갔다고 그랬을 정도로 일손을 보탰습니다. 명예회장님은 스케줄이 워낙 빡빡한 분이니까 서울 가시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도 ‘내가 안 보이면 이놈들이 요령 피운다’고 밤늦게까지 계시다가 올라가세요. 이건 에피소드지만 하루는 비가 왔어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우의 입고 장화 신고 다닙니다. 명예회장님은 우의를 드려도 안 입을 분이고. 그날은 서울에서 운동화를 신고 오셨는데 그 엄청난 비에 운동화가 젖어 계속 터덕거리고 다니시는 겁니다. 그러니 보기에도 안 됐잖아요? 그래서 운전수 시켜 대전 나가면 시장이 있을 테니 하나 사오라고 했어요. 발이 어찌나 큰지 최소 12문 반 이상은 돼야 합니다. 근데 대전에서 11문 반짜리는 있는데 12문 반짜리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내 돌아다니다가 결국 못 사고 그냥 왔어요. 그러니 어떡해요. 하루 종일 젖은 운동화 신고 다니시다가 나중에 올라가실 때 보니까 차 안에서 신발도 벗어 던지고 양말도 벗어 던지고 맨발로 타고 가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온몸으로 했습니다.” 공사 중 현장에서만 77명 순직 물론 현대건설만 전사적으로 매달린 건 아닐 것이다. 옥천에 세워진 위령탑에는 순직한 삼환기업 공구 소장 이름이 올라 있다. 그 공구 소장은 밤 10시가 넘어서 작업을 끝내고 서울에 갔다가 다음날 눈이 내리자 다시 현장으로 급히 내려오다 수원∼오산 사이의 중앙분리대에서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눈이 오면 사실상 현장은 작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눈이 쌓이니까 가 봐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황급히 오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양 회장도 그 소장을 알고 있었다. “참 안타까웠고, 인명은 재천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해가 떠오르고 낮에만 내려왔어도 불행을 면했을지 모르는데 눈이 오니까 일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현장 걱정이 돼서 내려오는 거예요. 정말 사명감이 아니면 그럴 수가 없는 거지요.” 모두가 명을 걸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만 77명이 순직했다. 그만큼 거대한 역사(役事)였고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물론 경부고속도로를 내용적으로 봤을 때 국제시방서 규정에 맞는 완벽한 공사였던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규정대로라면 표층을 2.5cm, 중간층을 5cm로 해서 7.5cm 두께의 아스팔트 포장층을 형성하고 기층을 15cm로 해야 했지만 정부의 재정 문제로 아스팔트콘크리트 기층을 7cm 정도로 덮었으니까 국제규격에 미달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개통 후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경부고속도로는 건설비보다 보수 유지비가 더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공사현장을 수시로 방문하고 독려하지 않았습니까?
“아이구,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시공하는 도중에 박 대통령이 직접 지프를 타고 경호원도 없이 현장에 여러 번 다녀가셨는데 한번은 덤프트럭 때문에 식은땀을 흘렸어요. 현장에서는 내가 소장이지만 소장 차건 중역 차건 따질 것 없이 현장 작업차가 최우선입니다. 작업차가 오면 다 피해 줘요. 그렇게 작업차를 최우선으로 해야 공사가 빠릅니다. 그래서 작업차들은 막 달려요. 근데 대통령이 지프로 오셨다 이겁니다. 기사들이 그게 현장 차인지 뭔지 압니까? 대통령 차가 올라오는데 흙을 잔뜩 싣고 막 달려오던 덤프가 빨리 비키라고 빵빵 울려대면서 손가락질에 욕까지 막 하네? 아이구…. 숨이 콱 막히데요. 정말 식은땀이 흐릅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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