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로 돌아가는 이집트 대중문화
백옥 같은 피부, 흑단 같은 머리채, 도톰한 입술, 풍만한 몸매로 유명한 아비르 사브리는 이집트의 도발적인 TV 방송 쇼와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그런 그가 몇 해 전 인기 절정기에 갑작스레 사라졌다. 적어도 얼굴은 그랬다. 그런 그녀가 최근 사우디인이 소유한 종교방송 채널에 출연했다. 얼굴을 가린 채 코란 구절을 독송했다. 보수적인 사우디 전주들이 점잖게 굴기만 하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주기로 했다고 한다. “와하브파 투자자들”이라고 그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엄격한 수니 이슬람을 가리켜 말했다. “전에는 테러에 투자했던 그들이 이제는 문화와 예술에 돈을 쓴다.” 이집트인들은 자국 문화가 사우디화한다고 통탄한다. 이집트는 오래전부터 모로코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중동의 공연예술을 지배해 왔다. 이제는 오일 달러로 주머니를 채운 사우디 투자자들이 가수와 배우들을 독차지하고 방송과 영화산업을 재편하면서 자유분방한 이집트 가치관보다 엄격한 사우디 가치관에 뿌리를 둔 미디어 문화를 만들어간다. “현재 이것이 중동의 최대 문제”라고 이집트의 이동전화 재벌 나큅 사위리스가 말했다. “이집트는 항상 매우 자유스럽고 매우 세속적이며 매우 현대적이었다. 이제는….” 그는 카이로 사무실의 26층 창가에서 밖을 가리켰다. “더 이상 우리나라가 아니라 마치 외국이 된 듯하다.” 나일강을 따라 1.6㎞ 상류에 있는 5성급 호텔 그랜드하얏트카이로의 사우디인 소유주는 지난 5월 1일부로 술을 금지했다. 상징적 조치로 140만 달러 상당의 술 재고를 하수구에 버리라고 지시했다. “술 없는 이집트 호텔이란 바다 없는 해변과 마찬가지”라고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사 스튜디오 마스르의 회장 알리 무라드가 말했다. 그는 자기네 나라에 극장 하나 없는 사우디인들이 이집트에서 만드는 영화 95%의 제작비를 댄다고 말했다. “그들은 돈은 주겠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실은 몇 가지가 넘는다. 영화제작자들끼리 말하는 35가지 규정이 있다. 화면에 포옹, 키스, 음주 행위가 나오면 안 된다는 등의 뻔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빈 침대를 보여줘도 안 된다. 누가 거기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암시를 주기 때문이다. 사우디인들이 소유한 위성채널들이 이집트의 영화필름 보관소들을 사들이면서 어떤 옛 영화는 심하게 검열하고 어떤 영화는 아예 방영 자체를 막는다. 일부 이집트인은 이처럼 바뀐 분위기가 순전히 사우디인들 책임은 아니라고 말했다. “영화가 더욱 보수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사회 전반이 보수화하기 때문”이라고 영화제작자 마리안 코우리가 말했다. 그녀는 사우디 돈이 80년 된 이집트 영화산업의 생명줄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영화사들은 연간 100편 이상을 만들던 1960년대와 70년대의 정점을 거쳐 90년대에는 연간 대여섯 편으로 제작물량을 크게 줄였다. 사우디 투자자들 덕분에 지금은 40편 정도가 됐다. “그들이 지원을 중단하면 이집트 영화는 존립하지 못한다”고 코우리가 말했다. 적어도 일부 이집트인의 생각은 다르다. 결국 변하는 나라는 사우디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집트는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이집트에 남은 몇 안 되는 토박이 벨리댄서 디나가 말했다. 동성애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2006년 드라마 ‘야쿠비안 빌딩’의 제작비는 사우디 제작사가 댔다. 이집트의 이동전화 재벌 사위리스는 자기 돈으로 인기 있는 위성채널을 출범시키고 미국 영화를 삭제하지 않고 보여줬다. 반드시 싸워 이기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정도의 억만장자는 이집트에서 그 혼자뿐이다. 반면 사우디에는 그런 부자가 수없이 많다.
With GAMEELA ISMAIL in Ca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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