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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강남 구간 공사 고위층 때문에 지연”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강남 구간 공사 고위층 때문에 지연”

▶주베일 항만공사를 위해 높이 375m, 무게 4만t의 해양구조물을 바지선에 싣고 걸프만으로 떠나느 광경.

박정희 대통령의 현장 독려나 관심은 철저하고 절대적이었다. 공화당 시절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용태 전 장관에 의하면 대통령은 침실 머리맡에 공사 진척 상황표를 붙여놓고 매일 전화를 하거나 직접 현장을 둘려보며 점검한 결과를 그 상황표에 표시했다고 한다. 그만큼 경제개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겠다는 각오였다는 얘기다. 양봉웅 회장이 전하는 에피소드는 당시의 일면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번은 평택에서 공사를 하는데 대통령이 순시를 오셨다가 안산까지 내려가셨어요. 그때 안산경찰서장이 하는 말이, 자기가 경찰 생활 삼십 몇 년을 했대요. 그런데 오늘처럼 혼나 본 적이 없다 이거예요. 오실 때는 예고 없이 오셨지만 갈 때는 안내를 해 드렸는데, 현장에서는 작업차 위주잖아요? 작업차가 달려오면 소장 차든 중역 차든 옆으로 다 피해 주고 우리 명예회장님이 오셔도 작업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런데 트럭 운전사들이 대통령 차인지 어찌 압니까? 대통령 지프가 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오니까 서장으로서는 굉장히 당황하지요. 다급히 덤프 앞으로 뛰어나가 옆으로 비켜서 서행하라고 수신호를 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트럭 운전사들이 오히려 웬 미친 놈이 길을 막느냐고 삿대질을 하고 더 험악하게 몰아대더라는 거죠. 그러니 서장이 어땠겠어요. 근데 그걸 보고 박 대통령 차가 옆으로 피해 주고 덤프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면서 더 흐뭇해 하시더라는 겁니다. 돌멩이들은 마구 날아오는데. 그만큼 대통령께서 관심을 보이니 공사가 제대로 안 될 리가 있습니까? 서장으로서는 혼이 났겠지만, 하하.” 물론 박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가 고속도로 건설로서만 조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궁금해지는 것은 국가 경영자가 아닌 정주영 회장의 경우다. 박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가 아니었어도 ‘주판을 엎어놓고 한다’고 했을 정도로 고속도로에 전사적으로 덤볐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도 그랬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게 정 회장 측근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왕 회장, 거스름돈 꼭 세어봐 기업인으로서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소신이 확고하고 사명의식이 동하면 고속도로 건설뿐 아니라 어떤 일이라도 주판을 엎어놓고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비화지만 92년 대선에 출마한 것도 국가 경제를 위해서였다고 했다. 핏줄이라는 핏줄은 모두 반대를 하고, 특히 지근에서 끝까지 정 회장을 지켰던 형제들까지 반대할 때도 “반대하려고 왔으면 돌아가라”고 했을 만큼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선 그 무렵에 정 회장이 했던 말이 있다. 다소 격정적으로 거침없는 내용들을 토해 냈지만 그 속에는 기업인으로서 경제를 우려하는 심각한 심정이 녹아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김동조 장관(전 외무부 장관)을 만나서 들어봤어. 나하고 사돈 아니야? 원로 정치인들도 만나고 여러 분야 전문가들도 만나서 들어봤는데, 정부가 해야 할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경제를 생각해 보면 ‘외교경제’가 전혀 안 되고 있는 거예요. 외교경제도 예를 들어서 말하는 거지만 정부가 볼 때 경제성장이 이대로는 지속성장이 어렵다는 단계에 왔고, 내수만 가지고는 더 이상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섰단 말이야. 그러면 두 가지예요.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게 과감한 정책이 뒷받침되도록 정치를 잘해야 되고, 세계를 무대로 외교경제를 하지 않으면 볼륨이 클 수가 없어. 그건 뭐 선진국이 된 나라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소련도 가고 중국도 가고 북한도 가면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기업을 잘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어. 근데 기업하는 사람 힘으로 될 일은 한계가 있는 거야. 그런 얘기를 공산권 다녀와서 무수히 했어. 안 돼. 못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꼼짝도 안 해. 정책도 안 바뀌고 법도 안 고쳐지고. 내가 돈을 엄청나게 벌었는데 엄청나게 정치하는 것들한테 바쳤어. 노태우한테만 200억원을 줬어. 국회의원들한테는 얼마가 갔는지 기억에 담아두지도 않았지만 그렇게나 주면서 돈이 없어서 못하는 일이라면 내가 뒷받침해 줄 테니 정책 제대로 세우고 정치를 좀 잘해 달라고 신신 부탁했단 말이야. 기업인이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고 정치가 뒷받침을 안 하고 잘못하면 경제가 일어설 수가 없게 돼 있다, 기업을 키우기가 정말 어려운 지경이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지 기업가들 다 데리고 나갈 테니 얘기 좀 듣고 정말 좀 잘해 달라, 수십 번도 더 부탁했어. 근데 이 자식들이 한 일이 뭐야. 이래서는 나라가 안 돼. 나는 돈 안 먹고 깨끗한 정치 해서 이 나라를 확 고치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자신이 있단 말이야. 이번에 총선(14대 국회) 출마한 사람들한테 어디 가서 손 내밀지 말라고 전부 2억6000만원씩 줬어요.” 정 회장은 기업을 못할 정도로 썩어서 출마를 결심했다 했고 창당 4개월 만에 지역구 26명과 전국구를 합해 30명을 당선시켰지만 본인의 얘기대로 대선 출마를 결심했을 때는 기업가의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도전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봉웅 회장이 남기는 인상적인 기록들이 어쩌면 2000년대와 70년대 정치적인 분위기를 비교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제3한강교를 끝으로 경부고속도로는 완전 개통됐지만 이 무렵의 각료나 정치인들은 사심을 버렸던 것 같다고 했다.

-제3한강교는 처음부터 공사를 하기로 계획에 잡혔다가 중단되고 가장 늦게 시공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연결되지 않으면 말 그대로 ‘경부고속’이 안 되는데, 왜 공사를 중단했습니까? 항간에 떠돌았던 고위층 부동산과 관계가 있었습니까?
“사실 고위층 때문에 중단됐죠. 중단이 아니라 공사 뒷순위가 된 거지요. 그 당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는데, 그때 장기영씨가 부총리였습니다. 그분이 강남에 땅이 상당히 있었고 마침 3차 공사를 해야 하는 그 지역에 장 부총리의 땅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3차 공사로 강남이 개발되고 땅값이 폭등하면 오해를 받을 것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당초엔 강남부터 밀고 나가려 했는데 오해 받기 싫다고 자기가 공직에 있는 동안에는 안 한다, 그 바람에 계획을 미룬 셈이지요. 노선은 누구 땅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통령하고 정 회장님이 사실상 확정했던 거니까 부총리는 전혀 몰랐거든요. 그래도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미뤄놨다가 수원∼오산 간 도로를 완공해 나가면서 맨 나중에 제3한강교도 완공했어요. 한강교가 완공이 안 되면 고속도로 개통이 안 되잖습니까.”

▶텍스트

장 부총리는 공직에 있는 동안 주변 정리를 누구보다 깨끗이 하려 했고 특히 기자 경영인으로서도 기인에 가까운 행적을 남겼지만 5·16 직후 박정희 의장의 경제 가정교사로서 조언을 하면서부터는 대범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청탁과 부동산을 멀리했던 일화가 있기도 하다.

-정 회장님과 오랫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해 오셨는데, 인간적으로 특이한 분이라고 느낀 일화가 있으면 한 가지만 소개해 주시지요.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서산에 모시고 다닐 때인데 참 놀라운 것은, 흔히 우리가 손님을 모시고 가게에 갈 경우 현금이 없으면 10만원짜리 수표 하나 내잖아요? 그러면 거스름돈을 받고 그냥 주머니에 넣는다고요. 손님 모시고 있으면서 돈을 세어 보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명예회장님은 꼭 세어 봅니다. 그 정도로 철저해요. 엄청난 대기업 총수지만 지방에 가면 아무 곰탕집이나 들어가서 곰탕을 드세요. 지나다가 기사식당에 가서도 잡숴요.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하시는 법이 없어요. 그런 건 특히 배울 점이에요. 그래서 회장님을 따라간다? 잘 얻어먹겠구나 생각하면 말짱 헛거고 그림의 떡이지, 하하하.” 현대건설의 부흥기라고 한다면 단연 중동 진출 시점을 꼽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주베일 항만공사를 수주했을 때가 절정이었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976년에 발주한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결과적으로 현대그룹의 급성장을 견인한 동시에 내부적으로 보면 정씨 형제가 분가를 함으로써 한국의 건설시장이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로자 해외 파견에서 첫 대형 스트라이크를 경험하면서 노무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운 것도 비록 오점을 남긴 기록의 역사가 되기도 했지만 길게 보면 좋은 수확이 되는 셈이었다. 주베일 항만공사 수주는 무엇보다 국가적으로 오일쇼크와 외환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OPEC은 영원한 황제 아니야” 정주영 회장은 주베일 산업항 프로젝트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에 담아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수주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총체적인 문제점이 보였고, 그게 도전정신 결여였다면서 당시를 정리했다. “주베일 항만공사? 그거 우리 (현대건설)내부에서는 전부 반대했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어떻게 하든 극복하는 저력이 있고 요령도 가지고 있는데 새로운 도전, 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아주 주춤거리고 두려워해. 사장부터 전부 그랬어. 해 보지도 않고 말이야. 기업을 해 보면 말이지, 영원한 1등도 없고 영원한 불황도 없다는 말을 수차례 하게 되는데, 그건 반드시 도전을 하고 시련을 경험해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가령 1차든 2차든 오일쇼크 이후를 한번 보세요. 거기서 우리가 많은 걸 배워야 돼요. 영원한 불황이 없다는 것도 거기서 답이 나와요. 전 세계가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온통 소동을 벌이다시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아주 열심히 했지요. 그런데 오펙(OPEC)회원국들은 고유가 시대가 왔다고 유전개발을 더 열심히 했어요. 말하자면 석유수출국기구가 산유량을 막 늘렸다 그거지요. 그렇게 되니까 한쪽에서는 대체에너지다, 절약이다, 열심히 노력하는데 한쪽에서는 열심히 퍼내니 이게 어떻게 되겠어요. 공급과잉 상태가 되는 거야. 간단히 말하면 그런 구조가 된 거야. 그러니 세계 석유시장이 구매자 시장으로 바뀌게 되고 기존의 유가 구조가 붕괴하는 단계까지 가는 거지요. 그니까 오펙이 영원한 황제도 아니고 비산유국이라고 영원히 불황에서 허덕거리는 게 아니다 그 말이야. 감히 비산유국이 어떻게 오펙에 도전한다는 생각을 해요. 근데 도전하니까 20달러 이하로 막 떨어지던 때가 있었잖아요. 결국 뭐냐, 사우디에서 우리가 주베일 항만공사를 먹어야 한다고 했던 것도 그런 걸 내다봤기 때문에 모든 노력을 쏟았던 거야.” 훗날의 기록이 보여주고 있듯이 현대건설이 급성장의 그래프를 보여주는 것은 모두 위기를 극복하고 도전으로 얻은 성취였다. 태국 진출에서는 다소 손해를 봤지만 결과적으로는 고속도로 공사에 대한 국제 규정이라는 것을 터득해 경부고속도로 성공으로 이어졌고, 조선 산업에 뛰어든 후 중동으로 진출할 때는 그야말로 위기와 맞붙은 최대의 결단이었다. 아끼던 동생 정인영 회장(전 한라그룹)과 갈라서게 되는 것도 주베일 항만공사를 놓고 도전이냐 위기냐에 대한 선택의 마찰 때문이었지만 결국은 도전으로 그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현대는 급성장의 돌파구를 열었던 것이다. 이른바 중동신화의 서막을 열었다고 했던 주베일 항만공사는 공사금액만으로도 당시 우리나라 예산액의 25%에 달하는 9억3114만 달러로 ‘20세기 최대의 역사’라고 했던 프로젝트였다. 물론 수주에 성공한 이후 철 구조물 재킷 하나에 1억 달러가 넘고 모든 기자재와 콘크리트 슬래브를 울산조선소에서 제작해 가져가지 않으면 공기단축을 포함해 수익을 낼 수 없다는 현실 문제에 직면하자 급기야 필리핀 해양을 지나 걸프만까지 대형 바지선으로 운반하는 ‘정주영 결단’을 만들어낸 것도 건설사에 남아 있는 놀라운 도전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런 모든 것이 ‘주베일 항만공사’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정주영)그때 산업항 주 공사만 10억 달러에 가까운 세계적인 공사였고 모든 건설사가 현대가 해낼 수 있겠느냐고 주시했어요. 재킷 하나가 1억 달러라서 화제가 된 게 아니고, 그걸 우리 중공업에서 제작했는데 울산에서 주베일까지 배로 끌고 가면서 보험을 한 푼도 들지 말라고 했거든? 그게 화제가 됐던 거예요. 보험에 들면 보험을 믿고 정신상태가 해이해지고 긴장을 풀 거란 말이야. 그냥 떠나라고 소리를 질렀지, 하하항. 그게 성공을 했는데 결국은 정신을 어떻게 가지느냐에서 모든 사업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을 일깨워주려고 그랬던 거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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