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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초법행위 ‘법정 패배’

관타나모 초법행위 ‘법정 패배’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라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사법부는 전쟁 수행이나 국토 수호 같은 국가안보 문제에서 오래전부터 대통령과 의회의 결정을 존중했다. 9·11 사태 이후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체포한 용의자 처리 문제에서 사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부시 행정부는 쿠바 관타나모만에 있는 미 해군기지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했다. 그곳이 안전한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 사법부의 권한이 그곳엔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법원 판례도 그랬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골수 추종자들은 으레 그랬듯 이번에도 도를 지나쳤다. 레이건 행정부의 법무차관이었던 찰스 프라이드는 부시 행정부가 “지나치게 초법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부시와 측근들이 정의와 자유에 관한 평범한 원칙을 너무도 능멸하자 대법원도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게 됐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재소자들은 자신들이 부당하게 체포됐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정당한 법 절차를 밟게 해 달라는 그들의 주장을 묵살하든지, 아니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안별 판결을 내려 새로운 정치문제들을 야기하든지 양자택일을 하게 됐다. 바로 지난주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 마침내 대법원이 ‘부메딘 대(對) 부시’ 사건에 대해 재소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전쟁포로는 미국 법원에서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래도 전쟁이 끝나면 석방됐다.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엔 끝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테러범들은 군복을 착용하지 않기 때문에 적군인지 아닌지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1949년의 제네바 협약에 의하면 전쟁포로들은 어느 정도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9·11 이후 부시 행정부는 관타나모와 세계 도처의 비밀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이 “불법 전투원”이기 때문에 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압력을 받은 공화당 의회는 2005년과 2006년 테러 용의자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용의자들이 억류의 부당성을 법원에 제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적국의 전투원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초기의 군법회의에서 수감자들은 변호인 선임권이 없었다. 그들은 또 정부가 비밀로 간주하는 증거를 열람하거나 반박할 권리도 없었다. 억류자들이 불공정한 처우를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는 의미다. 결국 지난주 대법원은 그 연방법을 폐기했다. 테러 용의자들도 유서 깊은 인신보호율에 따라 연방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정부가 억류의 합법적 근거를 법원에 제시하지 않는 한 누구도 구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법관 9명의 결정은 찬성 5 대 반대 4였다. 다수의견을 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미국의 법률과 헌법은 비상시국에서도 유지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견을 달리한 앤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케네디와 그의 의견에 동조한 대법관들을 비판했다. 스칼리아는 이번 판결이 위험한 테러분자들을 석방하라는 뜻이라며 “이로써 더 많은 미국인의 희생이 거의 확실해졌다”고 경고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소수의견 편에 섰지만 스칼리아보다는 덜 비판적이었다. 그는 이번 판결 때문에 앞으로 유사한 재판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우려했다. 스칼리아와 로버츠,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보수파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이 사법부의 주도권 장악을 노린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로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이 수용소는 여론의 질타를 받아 왔다. 미군 당국은 이미 500여 명의 재소자를 다양한 이유로 석방했다. 대다수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나 30여 명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는 무고한 시민을 살해했다는 증거가 있다. 만약 관타나모 수용소가 폐쇄되면 남은 수감자 270명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올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차기 대통령은 가장 위험한 사람들로 간주되는 그 재소자들을 계속 가둬 둬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듯하다. 그러나 그들을 자기네 교도소에 수감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주(州)가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미군 당국은 잠재적인 전쟁포로들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기보다는 그들을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외국의 군사기지로 이송하는 방법을 택할지 모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그런 외국의 기지에도 적용되는지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아직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억류된 테러 용의자들에겐 어떤 권리를 부여해야 하나? 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비밀 증거를 보게 될 것인가? 그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전쟁터의 미군 병사들이나 외국인들을 미국 법정으로 소환해야 할까? 테러 용의자들이 자신의 무죄를 증언해 줄 친구와 이웃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논란이 계속되리란 점뿐이다. 부시 행정부는 애초부터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법적 보호를 회피하려 애썼다. 그 결과 다년간의 법적 공방을 확실히 보장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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