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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 찾아나선 걸프 산유국

‘미래산업’ 찾아나선 걸프 산유국

걸프만 국가들엔 기록적으로 높은 에너지 가격이 축복이다. 주요 6개국의 확인된 석유 매장량은 62조 달러어치나 된다.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친 액수보다 많다. 이 지역의 국부펀드들은 이 엄청난 오일달러를 투자할 곳을 찾느라 분주하다. 이들 나라가 지난 5년간 거둬들인 석유 관련 수익만도 약 1조 달러나 된다. 그러나 걸프 지역 지도자들은 에너지에 편중된 경제구조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원유 값이 오를수록 횡재에 길들여진 타성을 깨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듯하다. 리야드부터 두바이까지 요즘 이 지역에선 경제 다각화가 화두다. 1970년대엔 엄청난 석유 수익을 현명하게 활용하지 못했다. 걸프 지역의 군주국과 토후국들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최근의 석유수익을 관광·금융·의학·교육 등 새로운 산업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다. 아울러 외국인 투자에도 문호를 더 개방했다. 특히 석유 채굴 이외의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환영한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석유화학제품과 비료 생산 같은 탄화수소 관련 산업이다. 이 산업은 석유와 천연가스 정제 과정의 부산물과 잔류물을 사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식시장 감독기관인 자본시장청(CMA) 책임자인 압둘라만 알투와이즈리는 “석유 부문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이나 되지만, 자본집약적 산업이라 고용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역·공업·석유화학 같은 분야”라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상장기업인 사우디 베이직 인더스트리스 코프(약칭 사빅[Sabic])는 중동의 떠오르는 스타 기업 중 하나다. 사빅은 시장가치 기준으론 이미 세계 최대의 석유화학 회사다. 또한 걸프 지역의 화두인 산업 다각화의 선봉 기업으로 주목 받는다. 2006~2007년 사우디의 모든 수출품 가운데 비석유 부문 수출품(주로 화학제품과 플라스틱 같은 석유 기반 건축자재)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서 12.4%로 늘었다. 사빅의 화학제품은 풍부한 석유 부산물을 원료로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값이 싸다. 또 플라스틱을 근본 재료로 삼는 물건이면 궁극적으론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컴퓨터와 MP3의 외피라든가, 자동차의 범퍼와 타이어 같은 제품이다. 이런 ‘하류 부문 제조업(downstream manufacturing)’을 발달시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안정된 중산층을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리야드 소재 투자기관인 파이잘라 그룹의 사장 모하메드 K A 알-파이잘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소니 같은 전자회사의 공장을 설립해 워크맨이나 TV의 외피를 생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회사의 입장에서도 우리의 저렴한 원료를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사빅은 1976년에 설립된 후 다년간 석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천연가스를 이용해 비료를 만들어 수출했다. 실적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사업 확장 노력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사빅은 CEO 모하메드 알마디의 주도 아래 기업 인수 등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덕분에 오늘날 사빅의 매출은 연간 330억 달러나 된다. 알마디는 자신의 웅장한 포부를 명확히 밝혀 왔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중동 전문가 장 프랑수아 세즈넥 교수는 “사빅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석유화학 회사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을 걸 만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알마디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비전이 있다. 그는 바스프를 따라가려 한다.” 바스프는 독일의 세계적인 화학제품 제조회사로 연간 매출이 890억 달러다. 바스프가 목표라면 사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2002년 알마디는 국영기업인 사빅을 세계화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화학회사 DSM을 22억 달러에 인수해 해외 진출의 첫 발판을 마련했다. 그 뒤 미국에 있는 영국 기업 헌츠먼 코프를 7억 달러에 매입했다. 지난해엔 제너럴일렉트릭(GE) 계열의 플라스틱 회사를 110억 달러에 사들였다. 중동 기업이 관련된 매입 규모론 사상 최대인 이 GE 계열사 인수 덕분에 사빅의 생산기반은 크게 확대됐다. 헥산옥탄 같은 복합 폴리에틸렌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복합 폴리에틸렌은 비닐백부터 러닝화까지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재질을 강화하는 분자구조를 갖춘 물질이다. GE 계열사 인수 이후 사빅은 폭동 진압용 방패와 콤팩트 디스크에 사용되는 폴리탄산에스테르도 생산한다. 이 GE 계열사는 방탄유리, 물병, 아이팟, 심지어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인들이 사용하는 안면 보호 헬멧도 만든다. “사빅의 사업 다각화는 사우디 정부의 기대에 부응한 것”이라고 미 워싱턴에 있는 PFC 에너지의 컨설턴트인 카를로 배러사는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화 추세에 부응해 회사의 가치도 높이고 있다. 매우 현명한 조치다.” GE 계열사 인수는 전 세계 화학산업에서 사빅이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GE는 벤젠 가격 상승으로 시장에서 밀려났다. 석유 파생물인 벤젠이 GE 제품의 핵심 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빅은 세계 최대 산유국의 가장 저렴한 석유 파생물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 모든 경쟁사가 시샘할 수밖에 없는 위상이다. 사빅의 유럽 경쟁사들에 따르면 그것은 불공정한 경쟁이다.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유럽연합(EU) 가입 문제로 협상할 때였다. EU는 사빅이 사우디 아람코(국영 석유 회사)로부터 구입하는 원료에 대해 국가 보조금을 받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결국 사우디 아람코는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들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2중 가격 구조(수출품은 내수용품보다 30% 정도 비싸다)를 유지해도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무역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가 그런 판정을 받은 배후에는 동맹국인 사우디를 위해 집요한 로비활동을 벌인 미국의 노력이 있었다. 걸프 지역의 여타 국가들은 다른 전략을 취한다. 경제 규모가 작아 중공업을 발전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두바이는 미래 성장 산업으로 금융업에 치중한다. 약간 낙후된 아부다비는 고등교육의 중심지로 변신 중이다. 어떤 전략을 취하든 모든 걸프 지역 나라가 1970년대보다는 오일달러를 훨씬 더 잘 활용하는 듯하다. “과거엔 자본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흘러 들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라고 투자관리 회사인 두바이 그룹의 수드 바알라위 회장이 말했다. “우리는 그 점을 활용해야 한다.” 유가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그런 노력도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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