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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라인강 기적

제2의 라인강 기적

독일이 환경 보호에서 유럽 국가 중 가장 뒤처졌을 때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70년대 라인강은 중공업 폐수로 오염돼 악취가 진동했다. 독일 관리들은 아황산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를 금지하라는 미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다. 업계 로비스트와 노조들은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오염 효과를 입증할 만한 더 많은 연구를 촉구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환경 재난(산성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독성 물질의 라인강 유입)이 잇따르면서 환경운동이 급성장했고, 녹색당이 세계 최초의 주요 정당으로 떠오르자 독일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렸다. 국민 정서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독일은 오랜 관행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독일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나라일지 모른다. 꼭 연어가 라인강에 돌아와서만은 아니다. 예일-컬럼비아대가 평가한 EPI 전체 순위에서 독일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나라가 여럿 있다. 또 독일은 아직도 야생생물의 서식지를 보호하거나, 휘발유를 많이 먹는 자동차를 줄이는 항목에서 점수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철저한 계획에 의해 스스로를 친환경적으로 만든 나라로서는 1위”라고 예일대의 대니얼 에스티가 말했다. 독일의 대대적인 변화는 환경을 깨끗이 보존하고, 에너지 사용을 경제 성장과 연계하지 않으며,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독일이 경제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더욱 푸르게 만드는 정책과 기술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가 세계 경제를 계속 좌우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이익을 독일만큼 많이 누릴 나라는 없는 듯하다. 독일은 먼저 국내에서, 그 다음은 유럽연합(EU)에서, 이제는 세계 전체에서 환경 의제를 밀어붙였다. 그 성공은 처음부터 산업계를 적대시하지 않고 같은 배를 탄 동반자로서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 독일의 초대 환경장관 클라우스 퇴퍼는 보수주의자였지만 그가 만든 80년대의 환경 정책의 청사진이 지금도 유효하다. 퇴퍼는 청정기술이 독일의 금속공업 기반 경제를 현대화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더 높은 환경 기준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장과 기업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였다”고 베를린 소재 생태학연구소의 안드레아스 크래머 소장이 말했다. “또 다른 역점 사항은 장기 계획을 세워 업계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때가 무르익자 오염, 폐기물, 재활용에 대한 규제 강화가 결국 산업과 경제의 완전한 개조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독일 기업들은 에너지와 자원을 더욱 절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과정에서 기업 경쟁력이 더 강해졌다. 또 독일은 환경 정책을 국가의 주요 의제로 만든 모델이다. 현 환경장관 시그마르 가브리엘은 “환경 정책이란 결국 바람직한 산업 정책”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독일 기업들을 환경 기술과 청정 에너지가 이끄는 ‘제3의 산업혁명’에서 선두주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 정부 전체가 그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연구부는 R&D 자금을 대고, 경제부는 독일의 환경 기술을 해외에 판촉한다. 재정부는 국영 재건신용청을 통해 전 세계에서 실시되는 독일의 재생가능 에너지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한편 개발부는 독일의 환경 기술을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 전파한다. “물론 환경 정책이지만 독일의 경제적 이익을 기초로 한다”고 베를린의 사샤 뮐러-크래너 자연보호위원장이 말했다. 독일은 처음부터 EU 회원국들이 비슷한 환경 기준을 채택하도록 압박했다. 물론 독일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예를 들어 헬무트 콜이 총리였던 1983년 독일 정부는 전력회사들이 석탄을 이용한 발전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 배출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도록 했다. 바로 1년 뒤에는 그 규제가 EU 전체에 적용되도록 밀어붙였다. 더욱 환경친화적이지만 영향력이 작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달리 독일은 이웃나라의 환경 의제까지 설정할 만큼 힘 있는 나라라고 베를린 자유대학의 환경정책 전문가 미란다 슈뢰스가 말했다. FIT(feed-in tariff: 재생가능에너지의 고정가격구매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전력회사가 전기를 생산한 누구에게서나 미리 정해진 가격에 그 에너지를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하는 제도다. 덴마크에서 처음 고안됐지만 독일이 채택하자 곧바로 세계 최대의 풍력·태양력 에너지 시장이 형성됐다. 그 이후 브라질로부터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수십 개 국가가 유사한 제도를 마련했다. 독일을 본보기로 세계가 채택한 FIT 덕분에 세계 시장이 확장되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 분야에서 독일의 주도적인 역할이 가져온 파급효과는 상당히 크다. 또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 제조업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통념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중국은 2007년 위험 물질을 금지하고 가전제품의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EU의 원칙을 채택했다. 그런 조치는 제품 안전성을 무시하기로 유명한 중국 기업들을 자체적으로 단속할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중국 제품이 EU의 4억9000만 소비자(미국은 3억)에게 수출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슈뢰스가 말했다. 단일 기준에 따라 제조하는 것이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아시아 회사들은 더 엄격한 독일이나 EU의 표준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써 독일 기업들은 환경 기준에 부합하는 기술 개발 분야에서 어떤 나라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입지를 확보했다. EU가 1980년대에 독일의 아황산가스 표준을 채택했을 때 지멘스 같은 회사들은 이미 유럽 대륙의 석탄 화력발전소에 적용할 수 있는 오염 정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독일 기업들은 광전지, 풍력터빈, 폐기물 재활용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컨설팅 그룹 로란트 베르거의 2007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친화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 기업들은 1500억 유로의 연간 매출을 올리며, 매출 증가율도 1년에 평균 8%나 됐다. 아울러 그 보고서는 환경친화 기술이 2020년까지 독일의 최대 산업으로 발돋움하며 2030년엔 독일 GDP의 16%를 담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를 작성한 트로스텐 헨절만은 독일이 “녹색 경제기적”의 문턱에 있다고 말했다. 이제 독일은 환경 리더십을 유럽 너머로까지 확산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엔이 주관한 발리 기후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20년까지 독일 단독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1990년 수준보다 36%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또 메르켈은 EU 전체로서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20% 줄이는 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회원국 간의 합의가 이뤄지면 감축 비율을 30%로 높일 계획이다. 지난 5월 독일은 개도국이 산림과 야생생물 서식지를 보호하는 데 5억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올 들어 EU가 회원국들에 이산화탄소 배출 인증서를 경매하도록 허용했을 때도 독일은 그 수익이 일반 예산이 아니라 환경 기술 프로젝트에 사용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중 3분의 1(올해는 1억2000만 유로이지만 경매가 활발해지면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은 개도국의 재생가능 에너지 프로젝트를 지원하게 된다. 그동안 독일도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생물종의 다양성에서 EPI 점수가 아주 좋지 않았다. 또한 농어민에 대한 후한 보조금으로 많은 폐해가 따랐다. 독일은 브라질 사람들에게 토종 동식물을 보호하라고 조언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위선적이기도 하다. 지난해 야생곰이 근 100년 만에 처음 독일 알프스에 돌아오자 히스테리가 발작해 산림감시대원들이 그 ‘침입자’들을 사살했다. 또 독일은 2030년까지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과거의 협정을 고수하고 있다. 이 역시 위선일지 모른다. 지금은 핵이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재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환경 정책이 반드시 효율성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비용이 납세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을 때가 그렇다. 일부 정책은 완전히 터무니없다. 일반 가정의 쓰레기 재활용은 여섯 가지로 분류돼야 한다. 요즘의 재활용 공장이 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쓰레기를 분류하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쓰레기 수거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에너지와 자원의 낭비다. 이처럼 가끔은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독일의 기여는 크다. 특히 환경 보존과 경제 성장이 상호배타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약간은 운이 따른 결과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낮게 유지됐다면 이처럼 독일에 유리한 여건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환경 산업이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간파한 점에선 독일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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