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인하가 비난 받을 짓인가”
증권업계 ‘백전노장’ 김지완(63) 하나대투증권 사장이 또다시 칼을 빼 들었다. 지난 4월 온라인 주식거래수수료(0.015%)를 대폭 낮춰 시장에 수수료 인하경쟁을 일으킨 지 꼭 석 달 만이다. 이번엔 펀드 보수에 칼을 댔다. 인하 폭은 가히 파격, 그 이상이다. 7월 16일 여의도 하나대투증권 본사 사장실에서 만난 김지완 사장은 “7월 말 총 보수가 연 0.15%인 온라인 인덱스펀드(피가로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빈 메모지에 ‘0.15%’란 숫자를 몇 번씩 쓰면서 말하는 김 사장의 얼굴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펀드 출시 이후 자신에게 쏟아질 시장의 비난을 의식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주식형 펀드의 평균 보수는 연 2.5%다. 지수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인덱스펀드의 보수도 연 1.0~1.5%에 달한다. 즉 김 사장이 결정한 0.15%란 펀드 보수는 동종펀드에 비해서도 최고 10분의 1이나 싼 가격이다. 예를 들어 한 투자자가 1억원을 하나대투증권의 피가로펀드에 투자할 경우 여타 펀드보다 연간 최고 135만원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펀드 보수 인하에 인색했던 증권 및 자산운용업계로서는 펀드 보수 전쟁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셈이다. 지난 4월 김 사장이 온라인 주식거래수수료를 업계 최저보다 절반가량 싼 0.015%로 인하했을 때, 증권업계는 ‘출혈경쟁’ ‘자포자기’라며 맹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증권사는 온라인 주식거래수수료를 똑같이 0.015%로 내렸다. 증권업계에 펀드 보수는 주식거래수수료 다음으로 큰 수익원이다. 2007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 증권사들은 주식거래수수료와 펀드 보수로만 7조8000억원이 넘는 영업수익을 올렸다. 증권업계가 수수료나 보수 인하 이야기만 나오면 호들갑을 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가로펀드가 출시되면 김 사장은 또 한 번 시장의 몰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미 피가로펀드 출시를 감지한 일부 증권사는 “갈 때까지 가자는 것이냐”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스스로 비난의 과녁이 되려는 이유를 묻자 김 사장은 “보수 인하가 왜 비난 받을 짓이냐”고 반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덱스펀드는 지수를 따라가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달리 펀드 운용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지 않죠.” 오히려 비싼 것이 이상하다는 뜻이다. 이어 그는 “이번 펀드 보수 인하는 출혈경쟁이 아닌 가격 현실화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수가 너무 낮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그렇다고 많이 남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0.15%로 내렸을까. 답은 마케팅을 위해서다. 김 사장은 “하나대투증권의 온라인 주식거래수수료가 0.015%라 펀드 보수도 0.15%로 하면 고객이 쉽게 기억하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싸고 좋은 물건이라도 불경기엔 파리 날리기 십상이다. 펀드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던 새로운 펀드들이 최근 뜸한 것도 이 때문.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시장이 어렵다고 상품 만들기를 포기하면 금융회사가 아니다. 증시 침체기일수록 고객을 위로하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상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피가로펀드의 출시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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